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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Aug 30. 2021

실례지만 그건 제 까-까 입니다

신입의 과욕이 부른 대참사

"이건 고기야, 닭고기! 그림도 그렇게 그려져 있잖아!"

머리를 질끈 묶고 목까지 단추를 야무지게 채운 검사관이 말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쨍한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신경질이 묻어 나왔다.

"근데 저 사람은 이게 고기가 아니라고 하잖아. 진정해봐 성분 표를 읽어보자고!"

"아니! 이건 수입 금지 품목이잖아!"

그러더니 기어코 나에게 불똥이 튄다.

"당신! 이쪽으로 와 봐!"


아니, 그냥 둘이 마저 싸워. 나한테 이러지 말고. 눈물을 머금고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지 머리를 감쌌다.




해외에 살면서 한 번씩 닥쳐오는 견디기 힘든 순간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폭발 직전까지 가는 순간을 다잡을 때 가장 좋은 것은 '맛있는 것 먹기'이다. 하지만 독일까지 수입되어 들어오는 한식은 정해져 있고, 특히나 메인 음식이 아닌 주전부리일 경우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진다. 그러니 한국에 잠시 다녀오는 이들의 캐리어는 먹을 것으로 그득그득 들어차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먹고 싶다고 매번 한국행 비행기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래서 정말 필요한 물건을 한국에서 받을 때, 택배 상자 한 구석에는 과자들도 꽁꽁 포장되어 온다. 사실 몇 년 살아서 이곳이 익숙해지면 여러 가지 시도도 하게 되고, 이런저런 지식도 늘어나면서 '식'에 대한 지유가 생긴다.


그러나 처음 해외 생활을 하던 나는 홈런볼과 닭다리 과자가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온갖 아시아 마켓을 돌아다녀도 찾지 못한 과자에 대한 아쉬움이 쌓이고 있을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부모님께서 입던 옷을 택배로 부치면서 '너가 좋아하던 과자도 몇 개 넣었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때부터 오매불망 택배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 예정일이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은 택배는 가벼운 종이 한 장이 되어 도착했다.

"너의 택배는 우리 세관에서 압류했다. 찾으러 오도록!"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싼 배송비 내고 택배를 부치면 뭘 하나. 매번 이렇게 세관(쫄 암트)에 갇혀 버리는데. 벌써 세 번째였다. 기숙사로 이사 온 후, 내 이전 세입자가 무슨 사고를 친 건지 한동안 경고의 문구가 담긴 편지가 한가득이 왔었다. 당연히 내 편지인 줄 알고 무심결에 뜯어본 내용 중 하나는, '돈 빨리 안내면 다음에는 벌금이 이만큼 더 붙을 것이다'라는 경고문구였다. 재빠르게 '나는 새로운 세입자다'라고 반송시켜 보냈다.


여튼, 이 집으로 이사 온 후에 받는 모든 택배가 세관으로 흘러갔다. 어떤 옵션을 선택해서 발송하든지 마찬가지였다. 착실하게 보내는 물품을 다 작성해도 마주하는 것은 세관 엔딩. 부모님의 사랑을 미처 다 담지 못한 30Kg의 택배는 결국 내 가녀린 팔 위에 올라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막상 세관에 가면 뭘 하느냐 하면, 누가 이것을 보낸 건지,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물어본다. 가끔은 뜯어보라는 경우도 있지만 칼을 받아 상자의 봉인을 해제하면 대충 휘휘 살펴보고는 '그래 가져가'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한국에서 보낸 선물이야', 혹은 '내가 한국에서 쓰던 물건이야.'라고 하면 이렇게 쿨하게 날 보내줬었다.


이번에도 그럴 터였다. 이번 택배는 목도리를 비롯한 장갑, 여기에도 많다고 말했지만 항상 반가운 고추참치, 등등의 가벼운 것들이었다. 엄마, 아빠가 꾹꾹 눌러쓴 편지도.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닭다리 과자. 이 과자를 넣었으니 맛나게 먹으라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그래서 택배를 들고 오기 위해 편안한 옷과 운동화, 장갑까지 야무지게 챙겨서는 세관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세무직원은 나른한 얼굴로 내 택배 옆에 서 있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그 전과 동일했는데 한 가지 다른 것은 그의 옆에 누가 봐도 '신입'딱지를 붙은 한 사람이 더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금발머리를 높게 묶고는 다른 검사관들과는 달리 제복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차려입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내 이름과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누가 말릴세라 손수 칼을 들어 내 택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다른 검사관에서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다.

"그걸 왜 네가 열어!"


맞다. 그걸 왜 당신이 여나.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무슨 원칙인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모든 택배는 그 주인이 열게 되어있었다. 마음이 앞선 신입의 커다란 첫 실수였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소리로 조그맣게 중얼대더니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다른 검사관이 나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서는 마저 열어달라며 칼을 넘겼다.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살짝 들어 보이고는 나머지 부분을 잘라 상자를 개봉했다. 나른한 얼굴의 검사관은 대충 휘휘 둘러보더니 이제 됐다며 내 신분증만 복사해서 돌아오겠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가 떠나자마자 갑자기 손 하나가 내 상자로 돌진했다. 그러더니 마구잡이로 그것들을 헤집기 시작했다.

"너 뭐해?"

내 질문에 그녀는

"일"

하고 단답으로 대답했다. 오우 이런 친절한 사람 같으니라고. 이거 또 상사한데 혼날 각인데. 지금까지 세관에서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이 사람과 큰 소리를 내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으니 다른 검사관을 찾아 목을 길게 뺐다. 그는 저 뒤에서 신분증 복사본을 들고 천천히 걸어오다가 내가 어깨를 들썩이는 제스처를 취하자 재빠르게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내 상자에 코를 박고 있던 신입을 본 상사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이걸! 왜! 네가!"

버럭 소리가 터졌다. 이야, 일 났잖아. 난 게걸음으로 그들 앞에서 조금 벗어났다. 것봐. 그거 아니라니까.


엄마가 곱게 포장해줬을게 분명한 내 식료품들과 목도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그녀는 고개를 바짝 들며 한마디를 했다.

"여기! 고기가 있잖아! 이건 금지 품목이야."

그녀가 손에 달랑 들며 외친 그것, 그건 내 닭다리 과자였다.



이제 둘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이미 자기가 오케이 한 상자를 허락 없이 뒤졌다는 것에 화가 잔뜩 난 상태였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오케이 하면 어떡하냐는 입장이었다. 언성이 높아지자 대기실 쪽 직원이 얼굴을 쓱 내밀어 확인하고는 뒷사람이 못 들어가게 막았다. 이제 이 검사소에는 나와 수많은 검사관들 뿐이었다.


다른 직원이 다가와서는 나에게 조금 더 물러나 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한 사람은 웃으며 언성이 높아지는 두 사람을 말리기 시작했다. 내게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결국 두 마리의 호랑이 앞으로 다시 호출당했다.


"이건 닭다리 맛이 나는 과자야."

한 세 번 쯤 반복해서 했던 말을 이제 수많은 검사원들 앞에서 또 했다. 독일어를 할 줄 알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유치원생 같은 어휘라도 최소한의 하고자 하는 말은 전할 수 있으니.


또 다른 젊은 직원과 나이 지긋한 직원 하나가 널브러져 있는 내 짐들을 차곡차곡 상자 안에 정리해줬다. 그들은 서로 '쟤들 왜 저러는 거야'하는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나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어댔다. 나 역시도 으쓱하는 어깨로 대답했다. 닭다리 과자는 여전히 그 여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심지어 조금 구겨졌다. 이제 내가 문제가 아니라 저들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얼마 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모두가 나에게 상자를 들려서 보내고 싶어 하는데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시간을 보니 여기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비싼 배송비 내고 보낸 택배가 의미 없이 세관으로 흘러들어 간 것도 한두 번이지 나도 슬슬 화가 올라왔다. 저 과자를 해결을 해야 나갈 수가 있을 터였다.


"그거 이리 줘."

결국 한숨과 함께 내 과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집 가서 아끼다가 진짜 짜증이 올라올 때 먹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뭐라고?"

쨍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리 달라고. 여기서 보여줄게."

어쩜 저렇게 실감 나게 닭다리처럼 그림을 그려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십니까. 이름 모를 디자이너님.

씩씩 거리는 신입의 손에서 그 과자 상자를 빼앗듯이 해서 넘겨준 건 내 택배 상자를 정리해준 나이 지긋한 검사관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과자 해체 쇼를 펼쳤다.


도르륵- 하면서 뜯어진 과자 상자, 그 안에 들어있는 번쩍이는 비닐을 꺼냈다. 부러 더 바스락 거리며 그 여자를 쳐다보고는 눈을 굴리며 '찌익'하고 비닐을 개봉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며 과자 한 개를 꺼내 입안으로 넣었다.

"바삭, 바삭"

조용한 검사소 안에 내가 과자 씹는 소리만 들렸다.


"풋-"

누군지 모를 이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에휴. 그래 기분이다.


"너도 먹을래?"

그 여자에게 과자를 권했다.

그녀는 얼빠진 얼굴로 가만히 그것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대신 과자를 빼앗아 넘겨준 아저씨가 하나만 달라고 했다.


그의 두툼한 손에 과자 한 개를 넘겨주고 나머지 택배를 안전하게 받았다. 상자를 추스르며 출구로 향하는데 웬일인지 누군가 뒤따라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좋은 하루 보내, 안녕'하고 인사도 해 준다. 홀낏 뒤돌아보니 손을 흔들어주는 몇 사람이 보였다.


별별 일이 다 있는 하루였다. 뻐근한 어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제 택배는 안 보내주셔도 될 것 같다, 독일도 사람 사는 곳이니 여기서 사는 것으로 이젠 충분하다'며 안부와 감사를 전했다.  

이렇게 까까 하나로 한 뼘 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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