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시비 털리는 게 일상
상상은 점점 격해져서 가끔은 쇠몽둥이 같은 것으로 목 위에 쓸모도 없이 달려있는 저 장식품을 땅땅 때리는 것으로 발전했다. 어금니를 으득으득 갈아대도 마음이 풀리지가 않아서다. 아니면 내가 <툼 레이더>의 여전사 같은 어마어마한 인간 병기가 되어 날름거리는 저 혀가 움직이지도 못하게 뽑거나.
몸집이 작아서일까, 혹시 내가 좀 만만해 보이는 건가, 집 밖을 나설 때 전신 거울에 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근육이 엄청나고 싸움을 잘해 보였으면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진 않지 않을까.
"헤이 꼬로나!"
오늘도 어김없이 지나가는 내 귀에다 대고 성큼 다가와 바락 소리를 질렀다.
저 덜떨어진 장난은 코로나 이전에도, 코로나 이후에도 항상 있었다. 이전에는 '니하오, 칭챙총' 코로나 이후에는 '차이나, 코로나'. 가끔은 단어가 아닌 그냥 '왁'소리를 지르고는 화들짝 놀라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처음엔 놀랐고 이제는 화가 난다. 저런 족속에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하루살이 인생들은 법이 두렵지 않겠지. 놀랍게도 하루에 걷는 순간마다 시비를 털리는 때가 있었다. 지금은 일주 일에 두세 번 정도.
저들도 혼자서는 시비를 걸지 않는다. 왜냐하면 작정하고 화내기 시작하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할 일 없이 한량처럼 득실득실 모여 다닐 때 힘과 용기가 충전되는지 시시덕거리다가 우당탕 뛰어와서 소리를 지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나에게 그런 짓을 한 이들은 모두 이민자의 생김새로 그런 짓을 한다. 그 얼굴로, '니네 나라에 돌아가'라는 소리를 한다. 한 번은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넌 어느 나라 사람인데?"
"니네 나라로 돌아가!"
"넌 독일인이야?"
돌고 도는 돌림노래 같은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꼬리를 말고 도망가면서도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바락 지르고는 낄낄 웃으며 갔다. 다 같이 남의 나라에 사는 입장이면서 뭘 가라 마라 한단 말인가. 독일인이 그런 소리를 하면 괜찮냐고? 그건 또 아니다. 멀쩡하게 비자받고 경제활동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무슨 자격으로 개인이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저 내 궁금증은 대체 너네들은 '왜' 그러는 지다.
인종차별. 당하기 전에는 그 분노를 몰랐다. 나는 그냥 살고 있을 뿐이었는데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조롱, 놀림을 당해야 하나? 내 이름도 모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제는 청소년 즈음의 무리들이 득실득실 몰려있는 것은 보면 몸이 좀 굳는다. 종종 뉴스에도 나온다. 한국까지 소식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철 안에서 폭행당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때로는 두세 명이 한 사람을 때리고 때로는 정신 나간 사람이 으르렁 거리면서 시비를 건다. 독일에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네트워크에서도 이런 일은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나도 얼마간은 인종차별 주의자가 되고야 말았다. 독일 내에서 자행되는 은근한 인종차별도, 대놓고 신랄하게 괴롭혀대는 이민자들의 인종차별을 먹고 자라 나 또한 인종차별 주의자로 거듭났다.
그래서 한동안은 모든 이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봤다. 너는 이래서 안돼, 너는 그래서 별로야, 너가 그러면 그렇지.
이 잣대는 이제 같은 나라 사람에게까지 번졌다. 그냥 나 외의 모든 사람을 틀렸다고 말하는 수준에 이르러서야 그만둘 수 있었다. 내로남불, 당시의 나는 그 단어로 만들어진 사람으로 보일게 틀림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간은 모두 명 암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어떤 사회든지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강약약강의 인간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하는 감상을 느끼는 것으로 꽤나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이해가 되는데 막상 그런 일을 겪으면 또 눈에서 불이 튄다. 그래서 그런 짜증들이 폭발하는 어느 날은 반 미치광이가 되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물론 주변을 살피고.
내가 '무슨 일'이든 당하게 되면 막아줄 사람이 있는지, 증인이 되어 줄 사람들이 있는지. 내가 소리를 내면 누군가는 나서서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줬다. 대신 사과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앞을 막아서면서 먼저 몸을 피하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때론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과 아주 닮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나 어떤 모양으로든 존재하는 차별이 더 뼈아프게 녹아드는 건 아마 홀로 서는 삶이라 매일 잔뜩 지쳐있기 때문일 거다. 마음을 다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의 행동거지만 봐도 '아 시비를 털겠구나'하는 촉이 온다. 95% 정도 맞추는 걸 보니 이것도 경험치가 되었다. 그 히히덕거리는 풀린 눈을 마주하고 기어코 한 소리를 들으면 가던 길을 잘 걸어가면서 저 머리통을 땅땅 깨부수는 상상을 한다. 잘근잘근 밟아놓는 상상도 한다. 그러면 누군가는 또 '복수할 거야'하면서 나에게 달려드는 상상을 하겠지. 결국 폭력이 폭력을 낳고, 또 폭력이 되돌이표 되는 삶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신고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마다 착실하게 고발하고 있다. 사기를 치려고 하거나, 뜬금없이 욕을 했는데 기록이 남거나 하는 것들을 모아다가 경찰에 넘긴다. 법이 멀게 느껴져도 나도 그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으니, 가까운 폭력은 상상으로 끝내야 한다.
"헤이 꼬로나!"
이딴 소리를 듣는게 일상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