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소리에도 욕이 섞여 들렸다.
유럽 하면 왠지 자전거의 로망이 있지 않은가. 아니라고? 나는 있었다. 그것도 썰리지 않은 바게트 빵을 통째로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안에 신선한 야채와 계란 뭐 그런 것들을 예쁘게 담아서 돌아오는. 언젠가 CF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의를 잔뜩 담은 웃음을 건네주고.
썰리지 않은 바케트 빵부터 사실 할 말이 많은데 그건 다음 기회로 넘겨놓자. 자전거. 그래 이 자전거가 아주 색달랐다.
유럽, 더 작게는 독일에 대한 까막눈은 로망에 물을 주고 영양을 주어 쓸데없이 꽃을 피웠다. 여하튼 그런 마음으로 보게 된 자전거 족은 정말이지 '센세이션'이었다. 각종 장비들을 착용한 채 다들 재빠르게 발을 굴러 자전거를 내몰았다. 헬멧, 각종 헬멧을 쓴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다. 어른, 아이, 청소년, 청년 누구 할 것 없이 대부분 헬멧을 쓴다. 그것도 뒤통수에서 빨간불이 번쩍번쩍 나는 것도 쓴다. 멋을 위해서가 아닌 '내가 지금 여기서 자전거를 타는 중이니 조심해줘'의 의미이다. 그리고 손을 보호하기 위한 장갑도 낀다. 특히 출퇴근러들은 대부분 낀다. 그리고 자전거 복을 입고 타는 사람도 정말 많다.
자전거 뒤에 작은 수레 같은 차를 매달아 아이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애기들은 한 명 혹은 두어 명이 거기 앉아서 헬멧을 야무지게 쓴 다음, 나름대로 간식도 먹고 밖을 구경하거나 잠을 잔다. 한 번은 이리저리 목을 흔들어대며 꿀잠에 빠져있는 애기를 보았는데 어찌나 신선하던지.
더 어린아이들은 안장 근처에 자리가 생긴다. 앞쪽 혹은 뒤쪽에 작은 아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아크릴 판 같은 것이 핸들에 부착되어 바람을 막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자전거를 모는 부모님들은 항상, 완벽한 안전용품을 착용하고 운전한다. 그리고 어찌나 자전거가 튼튼하고 두툼한지.
내 로망 속의 자전거는 유희였는데, 독일인의 자전거는 교통수단이다.
수신호를 할 줄 모르면 도로에서 자전거 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도로 위의 민폐 쟁이가 되니까. 어떻게 알았냐면,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 핸들에서 손을 떼는 게 아니라고 배웠는데 왼쪽 오른쪽 커브 꺾기 전에 그걸 표시해 줘야 한다니! 심지어 차도에서도!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빛의 속도로 들었다 내리는 수신호는 운전자들의 눈앞을 그저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저 자전거는 직진을 할 것인가 커브를 꺾을 것인가'를 알지 못해 뒤의 차들이 움찔움찔 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바로 그만뒀다. 맞다. 내가 바로 민폐 쟁이였다. 혹시나 독일에서 자전거를 탈 생각이라면 수신호 정도는 연습하고 올라타시길.
상황이 이러하니 인도 위에, 차도 위에 자전거를 위한 길이 당연히 따로 만들어져 있다. 보통 예쁜 색깔로 칠해져 있다. 참 사람이 이상한 게 꼭 그런 도로로 걷고 싶음 욕망이 있다. 왠지 더 보들보들해 보이고, 더 새 거 같고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예쁜 아스팔트를 밟고 싶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는 내 속을 짐작해 보건대 아마 울퉁불퉁한 독일의 길을 걷다가 잘 닦여있는 아스팔트를 보면 좀 더 걷기가 편해서 인지 그 길로 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룰루 랄라 걷고 있으면 뒤에서 혹은 앞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자전거에게 욕을 듣는다.
"비켜!!!!!"
별별 소리를 다 들었다. 아마 자전거들 입장에서는 내가 차도 위를 룰루 랄라 걷는 것처럼 보였겠지. 근데 차 운전자는 창문을 열어서 목을 빼서 "야!"하고 소리 지르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면 자전거는 그냥 앉은자리에서 내뱉을 수 있다 보니 욕과 함께 다가왔다가 욕과 함께 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장해서 '욕'이라고 하는 것이지 사실은 괴성에 가깝다. 아니, 순화해서 '괴성'이라고 하는 것이지 사실은 욕에 가깝다. 격렬하게 울려대는 자전거의 벨소리에도 짜증이 힘껏 담겨 있다. 한 번은 "너는 눈이 없냐아아아"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독일어가 그렇게 찰지게 귀에 박힌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의식하지 못하고 예쁜 아스팔트로 올라가는 내 발걸음을 붙잡는 이성이 생겼다. 이제는 조금만다른 길이 있다 싶으면 앞 뒤로 자전거가 오는지 확인하면서 어디가 자전거 도로인지 구분하고 걷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자전거 도로 위로 무심코 올라가는 친구를 보면 살며시 끌어당긴다.
이런 일은 비단 이방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종종 버스의 승하차 공간과 자전거 도로가 섞여있는 부분이 있는데, 당연히 버스가 와서 문을 열면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이 잠시 멈추거나 아니면 알아서 피해서 간다. 근데 그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자전거 도로를 침범해서 서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쌩쌩 지나가는 자전거와 버스표를 보기 위해 자전거 길 위를 지나가던 두 행인이 격렬하게 말싸움하는 것도 봤다. 서로에게 '너 제정신이냐!'라고 소리 지는 모습이 마치 두 마리의 호랑이 같았다.
너무 독일인들을 발끈하는 '버럭이'처럼 묘사해놨는데 사실 이 나라 사람들, 내 경험에 따르면 감정표현에 굉장히 소극적이다. 특이나 제삼자에게는 더욱 그런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남에게도 큰 관심 없고, 나에게도 다른 사람이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자전거만 타면 한 마리의 맹수가 되니 놀라울 따름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경험한 작은 독일의 이야기지만 웬만하면 자전거 타는 독일인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정확히는 "자전거 길막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