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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Aug 24. 2021

암내와 여름 냄새 그 사이 어딘가

혼탁한 에스반, 버스 그리고 우반

"치-익"

문이 열리는 육중한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간절하게 밖을 향했다.

제발 신선한 바람이 한줄기라도 들어오길, 아니 그게 안 된다면 내 앞에서 땀 흘리는 얘, 쟤, 그리고 저기 쨰 등등 다들 내려주길.

그러나 문 밖에는 바람 한점 불지 않았고, 애, 쟤 그 외 등등 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한가득 엉겨 들어왔다.


"오-우, My Gott..."

차에 성큼 올라탄 땀냄새 덩어리 중 한 명이 코를 찡긋거리며 마음의 소리를 내뱉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외마디 비명으로 쏠렸다. 그러자 그는 얼른 돌아서서는 간절한 시선으로 창문을 바라본다. 제발 제발 시원한 바람이 어디서든 들어오길.


그러나 작열하는 태양을 뜨겁게 받으며 달려 나가는 S-Bahn(에스반)에 인간의 위대한 문물 중 하나인 에어컨의 은혜가 내려오는 일은 절대 없었다.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는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에게는 본연의 냄새가 있다. 체취.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난 그게 그저 한 사람이 가지는 그런 독특한 체향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에서 여름을 나기 전 까지는.

한국에서는 어떤 '향'에 과하게 코가 시큰거려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대부분 향수도 은은-하게, 땀냄새도 은은-하게 코를 스치고는 흘러가 버린다. 사람들이 체구가 서양인들에 비해 작은 편이고, 먹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아니 사실은 우리나라는 장마와 습도로 얼룩진 여름을 가지고 있어서 어디서나 에어컨이 열심히 일을 한다. 그 덕분에 그나마 쾌적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독일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베를린은 에어컨이 참 없다.

'독일은 그렇-게 안 더워, 그늘 가면 또 금방 서늘하고 바짝 더운 건 한 2주 정도지.'

라고 에어컨의 유무를 묻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대답했다. 혹은

'이게 바로 여름이야, 더울 땐 더워야 해'

라는 지론을 펼치는 친구도 있었다. 응, 그래 근데 그렇게 말할 거면 그 재킷을 벗고 땀을 좀 식히면서 말하는 건 어떨까.


땀, 그리고 땀자국. 그것에 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게 과연 좀 더 상식적인 태도인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종종 개그 소재로 쓰이는 '겨땀'은 여기서는 그냥 인간이니까 당연히 흐르는 땀 정도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한국에서 가치관 형성이 다 된 상태에서 여길 오니, 회색 티가 새카맣게 변해가는 걸 보면서 포옹하며 인사하기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나 그 냄새, 코를 타고 들어가 뇌를 찌르는 것 같은 냄새를 맡을 때면,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와장창 뛰어내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예의를 차리기 위해 재킷이라고 걸치고 오는 날이면 혀를 깨물면서 인상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리고 종종 고지식한 사람들은 아예 정장을 입는 경우도 있다. 폭포수 같은 땀을 흘리면서 진하게도 본인이 여기에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거기에 또 다른 예의로 향수를 쏟아붓듯이 했으면 잠시 영혼 홀로 맑은 공기를 찾아 나서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5월의 초입부터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 콤콤한 냄새가 올라온다. 특히 한국의 지하철 같은 U-Bahn (우반)은 좌석 간의 사이가 좁고 바람 하나 들어올 곳이 없어서 더 심하다. 그리고 위에 서술한 S-Bahn(에스 반)은 지상으로 다니는 도심 기차인데, 햇살이 내려쬐는 동안 열차는 더 달궈진다. 열린 창문으로 종종 바람이 들어오지만 그 바람은 열차 내의 암내를 고루고루 흩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당신 냄새납니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못 봤다. 종종 정장을 입어야 하는 서비스직의 직원이나, 오묘하게 더운 공기에 계속 노출되는 곳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이 엄청난 냄새를 풍기면 손님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는 것 정도는 보았다.

한 번은 나에게도 코를 찡긋거리며 직원의 냄새를 지적하는 행동을 공유하자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등 뒤로 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며 코를 찡긋거리고 눈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다 똑같았다.

그 일을 본 뒤로 격정적으로 데오드란트를 뿌렸다. 혹시나 나도 모르는 새 냄새 길을 만들고 다닐까 봐.

 


오늘도 올라탄 에스반은 여름 냄새와 암내 그 사이 어딘가의 공기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해가 뜨는 것은 좋고 암내는 싫은 이방인은 오늘도 숨을 참는다. 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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