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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Dec 08. 2021

독일에서 사랑니를 뽑으면 일어나는 일 #2

네모네모가 되어버린 나의 턱이여.

매복 사랑니 발치를 기념하는 최후의 만찬은 탕수육이었다. 외식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내게 한식당에서의 탕수육은 꽤나 사치였다. 사실 말만 이렇지 정말 야무지게도 챙겨먹었다.


한 번은 나의 작은 위가 '진짜? 진짜 또먹는다고?' 하고 물었으며 나는'그래! 나는 또 먹을거야, 너가 할 일은 소화시키는 일 뿐이다!' 하며 와아악 하고 음식을 밀어넣는 꿈을 꾸었다.  뭐라? 뻥같다고? 맞다. 뻥이다. 눈치가 빠르군.

하지만 이 실없는 농담을 할 정도로 먹어댔다. 왜냐하면 동료 하나가 나처럼 두개의 매복 사랑니를 뽑은 뒤 장장 5KG가 빠지며 골골대는 꼴을 봤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말라가는지 묻자 그는 '너가 뽑아봐. 그럼 알게돼' 라며 파리한 얼굴로 푸딩을 밀어 넣었다. 그 참혹한 현장이란.




즐거운 식사는 이제 끝났다. 앞으로 한달간 나에게 허락된 것은 부드럽고, 또 부드러우며 자극없는 음식들 뿐이었다. 뱃 속에 야금야금 저장해둔 지방도 걱정없었다. 내 동료가 나도 엄청 살이 빠질거라며 내 지방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었다. 11시 40분 예약이라  여유롭게 30분쯤 도착하게 갔다. 엘레이터 안에서 보이지 않는 두개의 사랑니를 기념하며 사진도 한장 찍었다.


치과는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웠다. 대기실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나는 앉을 자리도 없었다. 손 소독제로 손을 닦아가며 대기실 앞쪽에서 서성거리자 간호사가 다가와 보호자들은 다 나가달라고 했다. 그러자 두세사람이 일어나며 앉을 자리가 생겼다.


엉덩이를 붙이자 마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이렇게 재빨리 들어가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왜 하필 가장 떨리는 순간에. 온 몸을 사시나부 떨듯 떨어가며 안쪽으로 향했다. 발랄하게 다가온 의사는 '좋은 하루' 라는 상큼한 인사를 건네며 의자를 위잉위잉 조정했다.


기분이 어떤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었고 나의 긍정적인 대답이 꽤나 맘에 들은 모양이었다. 모든게 완벽하다며 혼자 잠시 기뻐하더니 마취주사와 함께 돌아왔다. 여기저기 꾹꾹 눌러보다가 주사를 놓기 시작하는데, 한 쪽당 다서 여섯방을 와다다 놔 주었다. 흡사 벌떼들이 쏘고 가는 것 처럼. 생각보더 너무 아파서 마지막에 으어엉 하는 소리는 내자, 잘 참았다고 엄지를 착 올려붙여주었다.


잠시 뒤에 올게! 하고는 또 사라졌다. 멀뚱하니 진료실 의자에 앉아 이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혀뿌리부터 시작해서 마취가 점점 올라오는데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이러다가 마취가 다 풀릴 즈음에 들어오는게 아닌가 하는 끔찍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번 진료실 밖으로 나가봐야 하나, 아니면 얌전히 기다려야 하나'를 고민하며, 나를 진짜로 잊은게 아닌가 싶을 무렵 의사와 간호사 둘이 들어와 어느쪽 부터 뽑는게 좋을지 상의했다.


그리고 그회의에 뜬금없는 참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자꾸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 치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엑스레이를 다시 촥 보여주며 말했다.

 

"자, 정리하자면 우리는 이렇게-저렇게 수술할 생각이야. 너 생각은 어때?"

나? 내 생각? 왜? 내가 결정권이 있나? 지식이 없는데?  

"좋은 거 같은데?"

지식은 없으나 결정권이 있던 환자는 의미없는 대답을 내뱉었다. 내 입만 바라보던 두 의료인은 그제서야 끄덕끄덕 만족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과정이지. 여기서 다른 의견을 내는 환자가 있을까?

나는 그저 마취의 감각이 풀릴까 어서 빨리 수술을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내가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어떤 쪽 부터 뽑을 것인지, 그것을 결정해야했다. 의사는 이제 수술도구를 눈앞에 보여주며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오른쪽은 이걸 이용해서 치아를 부술거고."

오마이갓, 저걸 내 입 속에 넣는다고.

"왼쪽은 이걸 이용해서 뺴낼거야"

눈이 질끈 감겼다. 실눈을 뜨니 내가 왜 이러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의 의사가 '혹시 마취 한 곳이 불편한지'물어왔다.


아냐, 그냥 마음이 불편 할 뿐이야.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홀로 토닥거렸다.

"아냐, 불편하지 않아. 조금 떨려서 그래."

"아하! 걱정마! 괜찮을거야! 그럼 내가 생각한대로 시작할까?"

매일매일 환자의 치아와 씨름하는 의사는 여전히 밝았고 태어나 처음 사랑니를 뽑는 환자는 약간의 넋을 놨다.


의사가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그래서 먼저 뽑을까 한다고 말한 쪽은 왼쪽이었다. 치아가 좀 커서 힘들거라고. 그러나 수술도구까지 본 마당에 그냥 그동안 아파왔던 쪽 부터 뽑아달라는 의견을 전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



마침내 의자가 눕혀지고 내 목 까지 초록색 수술가운이 덮혔다. 한국은 사진을 보니 종종 얼굴도 다 가리고 입만 내 놓을 수 있는 가운을 덮어주던데 여기는 눈을 알아서 감으라는 듯 했다. 의사는 여기저기 찔러보고는 느낌이 있는지 확일하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이제 수술을 시작할건데 당겨지거나 힘이 가해지는건 당연하지만 아픈 느낌이 들면 재빨리 손을 들으라고. 그 이야기를 두번이나 강조해서 하고는 시작했다.


이제는 드디어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입을 크게 벌리기. 무슨 소리가 어떻게 들려도 입만 아아- 벌리고 있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 위잉이잉 하면서 입 안에서 난리가 났는데 아까 봤던 수술도구들이 떠올라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어 속으로 아는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종종 '이제 잇몸을 쨸거야.' '이제 이빨을 부술거야' 이제 하나를 뺄거야'하면서 진행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러다 자른 이빨 반쪽을 꺼낸다음 나를 툭툭쳐서 눈을 뜨게 했다. 왜 그러지? 하고 쳐다보니 그렇게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으면 기절한것 같으니 조금 움직이던가 아님 대답이라도 해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으엉'이라고 대답한 뒤 속으로 열창중인 노래에 맞춰 발을 쉬지 않고 까닥거렸다.


오늘의 선곡은 '혁오의 위잉위잉'


상대적으로 쉬울 거라 생각했던 쪽을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는지 결국 간호사 하나가 더 투입되었다. 중간중간 찌릿찌릿하는 느낌이 들어서 손을 들까말까 고민하는 사이 한 쪽이 다 끝났다. 의사는 누워져있는 의자를 조금 일으켜 한쪽이 잘 끝났다는 이야기를 하며 잠시 쉬고싶냐고 물었다.


눈부신 빛이 얼굴에서 잠시 치워지자 내 잇몸속에 옹송그리고 있었을게 분면한 치아가 저기 피떡이 되어 누워있는게 보였다. 아아 주여.. 의사는 내 시선을 쫒더니 씨익 웃으며 입 속에서 꺼낸 내 치아를 자랑하려는 눈치였다.




안돼! 자랑하지마!

난 정말 이 마취가 풀릴까 무서워졌다. 나는 입만 벌리고 있어서 힘들지 않으니 그냥 빨리 서둘러서 끝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간호사와 둘이서 잠시 깔깔 웃고는 반대쪽을 시작했다. 오히려 의사가 힘겨울거라 생각했던 쪽은 더 빨리 끝났다. 실이 입 안으로 왔다갔다하는 느낌이 나더니 이제 드디어 다 끝났다고 날 일으켜 줬다.


영원과도 같았던 시간이었다. 간호사는 재빨리 얼음팩이 두개 들어있는 붕대를 가져와서 얼굴에 단단히 고정시켜주고는 입 안에는 통통한 거즈를 물려주었다. 의사는 일주일 뒤에 테어민(예약)을 잡고 와서 실밥을 뽑자고 했다.


얼음팩이 들어있는 붕대를 둘둘 두르고 나가니 모두가 날 안쓰러워하는게 느껴졌다. 엉엉 울던 애기도 날 보던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다. 시간을 보니 어언 한시간이 지나있었다. 후끈후끈한 볼을 부여잡고 처방받은 항생제와 진통제를 사서 집으로 갔다. 약사가 어찌나 침통한 표정으로 진통제를 넘겨주는지 앞으로 닥칠 고난의 예고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마취가 서서히 풀려가는게 느껴졌다. 내 입에 바느질을 해 놓은 그 부분이 정말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취가 다 풀리면 엄청 아플거라는 이야기들을 봐서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자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었다. 약간 욱신 거렸던 쪽이 목이 심하게 부어서 물을 삼키는것도, 침이 넘어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다음날이 되니 열감은 더 올라왔고 얼굴은 말도 못하게 부었는데 목은 거의 가라앉았다. 시원한 물을 꼴딱꼴딱 삼키며 잠시 기뻐했다가 거울을 보고는 비명을 삼켰다. 내 사진을 본 엄마는 영 다른 사람같다면서 '얼굴이 그렇게도 부을 수도 있니'라는 걱정을 던져주셨다. 나 또한 거울보면서 하던 생각이 그거였다. 초코우유랑 물, 그리고 친절한 룸메이트가 사다 준 푸딩으로 하루를 연명했다. 배고프다.


둘째날, 얼굴이 진짜 터질것 처럼 부풀었다. 이제는 냉찜질을 안해도 심하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다만 하루에 3번 먹으라는 진통제는 먹기만 하면 졸려져서 하루의 반을 잠만자면서 보내게 되는 것 같다. 시간도 아깝고, 무료하다. 뭔가를 먹고싶어서 전자레인지로 계란찜을 만들어서 식혀먹었다. 생각보다 술술 들어가서 기뻤다. 저녁에는 파스타를 먹어볼까 싶어서 왕창 불게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직 이 정도는 아니었나보다 하면서 반 이상을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켰다.


셋째날. 푸딩도 질렸고, 우유도 지워져버렸다. 다른 룸메가 안쓰러운 얼굴로 레트로트 쌀국수를 주었다. 푹 익혀서 먹으면 파스타면 보다 나을거라고. 아침에 먹었던 요플레는 입에 자꾸 들러뭍어서 세 입도 못 먹고 버려야했다. 잔뜩 우울해 있다가 입에 넣기만 하면 으깨지는 쌀국수를 먹으며 기분이 좀 발랄해졌다.


인간에게 먹는 것은 참 큰 기쁨이다. 이번을 통해 뼛속 깊이 느꼈다. 퉁퉁 부어있는 얼굴로 멍하지 앉아있자니 시간이 안간다. 무료해서 기절할 지경이다. 얼굴은 여전히 네모나게 부어있다. 보는 사람마다 웃음을 참기 바쁘다. 휴. 얼굴만으로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다니.




그 뒤로는 서서히 회복했지만 얼굴이 부은 것이 가라앉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실밥을 뽑고 나서도 딱딱한 음식은 당분간 주의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남들보다 흉이 잘 지는 체질인 나는 입안의 살도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사랑니, 정말 쉽지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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