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독일에서] 응급 콜이 곧 활성화 됩니다.

출근과 아침과 핸드폰 그리고 모닝콜

by 노란대문

세상 몸이 찌뿌둥해서 아침이 멀리서 오는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럼에도 유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잠에서 깨지 못해 문제가 생겼던 일은 없었다. 어쩌면 부모님의 따듯한 울타리 안에서 아침마다 게을렀던 것은 최후의 어리광이지 않았을까.




잠귀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사람. 공간과 상관없이 잘 자는 어린이. 그게 바로 나예요.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 엄마 목소리 모닝콜 외에는 알람시계도 핸드폰 벨소리도 심지어 집 초인종 소리도 나를 잠에서 깨우지 못했다.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닌데 약간 그 주파수가 있던 게 아니었을까? 유학길에 오르면서도 나의 최대의 고민은 내가 과연 잘 일어날 수 있을까? 잠들어서 학교에 못 가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었다.


그러나 고민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도착한 다음날부터 핸드폰 알람은 천둥처럼 들렸다. 벨소리로 해놓고 잠들면 당시 살던 집의 룸메이트들에게 방해가 될 까봐 진동으로 해놓고 잠들었는데도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오로지 혼자 책임져야 하는 공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이 무의식 속에 자리했던 것일까. 게다가 이케아에서 싼 값에 사다가 들여놓은 시계의 초침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둘째 날에는 시계를 뒤집어 배터리를 다 뺐다. 1초마다 울리는 또각또각 소리에 잠을 설쳐서. 그 뒤로 아날로그시계는 무소음 시계라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온통 퇴출당했다.


학교 수업이 없는 날에는 늦잠을 자기도 했었지만 평일에 늘어지는 낌새가 보이면 카카오 보이스 톡이 띠링띠링 울렸다. 그렇게 늦잠 자며 시간 죽일 거면 돌아오던지.라는 엄마의 벼락같은 이야기를 들을라치면 몸서리치면서도 정신을 깨우곤 했다. 남들 학교 가는 시간, 적어도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서 할 일을 하라. 는 충고가 그 당시에는 싫기도 하고 엄마가 뭘 알어! 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만서도 틀린 말씀이 하나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병아리 사회인이 되고부터 엄마는 쉬는 날에는 푹 쉬라는 이야기를 먼저 건네곤 했다. 아빠는 말할 것도 없이 잘 자고 쉴 때 쉬어야 몸이 탈 나지 않는다고 걱정 어린 이야기를 건넸고. 직장인이 된 지금은 쉬는 날은 아주 암막커튼까지 꼭꼭 쳐 놓고 해가 중천에 달해서야 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다 모든 사건은 어느 날 일어난다. 여느 때와 같이 핸드폰에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출근 세 시간 반 전부터 울리는 알람. 보통 그 알람을 듣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해서 마음껏 느믈럭 거리면서 일어난다. 그럼 잠자리에서 나름 여유도 부리면서 일어나는 기분이라 피곤하다는 생각이 좀 덜해지는 나만의 루틴이다.


그날따라 알람 전부터 정신이 깨어 있었고, 그날따라 소리가 시끄러웠다.

"띠리-"

알람소리가 채 이어지기도 전에 핸드폰을 낚아채 음량을 잔뜩 줄였다. 이러면 잠시 뒤에 또 알람이 울릴 테니 그때는 눈을 떠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근데 어째 소리가 줄어들지를 않는 것이다.

여전히 눈을 꼭 감은채 또 한 번 음량버튼을 꼭꼭 눌렀다.

'아 핸드폰 업그레이드 되더니 뭐가 또 설정이 바뀐 거야?'

아침 시간, 1분의 여유도 아쉬운 상황에서 귀를 울리는 알람과 쉬지 않는 진동. 내가 설정해 놓은 것이지만 잠시만 조용해지면 싶었다. 아 진짜. 한숨이 푹 나오며 다시 한번 음량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왜애애애애앵, 왜애애애애애앵"

귀를 찢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용수철이 튕겨지는 모양새로 펄쩍 튀어 올랐다. 마치 한 마리의 연어 같았을까.


천근만근으로 내려앉던 눈꺼풀이 번쩍 떠졌다.


전원버튼을 다섯 번 연속으로 눌러 응급 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 청천변력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고 핸드폰은 미친 듯이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응급콜이 곧 활성화됩니다.


한동안 나빠졌던 시력이 2.0이 되는 것 같은 기적. 그날따라 작디작은 글자들이 눈앞으로 마구 밀려들어왔다.


응급 콜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마음이 다급해지니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안 보이고 8초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머릿속을 휘젓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벌금.


이게 활성화되면 집 아래로 소방차와 구조대가 몰려올 거고 벌금이 얼마나 나올까. 실수였다는 변명 따위 벌금으로 다시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겠지.


벌금.


독일 공 기관을 실수로 부른 사람의 벌금.


그 덕일까 눈이 더 번쩍 뜨여 취소 버튼을 간신히 찾아낸 게. 느낌상 개미 글씨처럼 쓰여있던 활성화 취소를 누르고 나서야 식은땀이 줄줄 나고 있던걸 알아차렸다. 와. 이게 뭐야.


안심도 잠시, 숨 한번 내쉬니 다시 사이렌이 진동을 한다.


응급콜이 곧 활성화됩니다.


아아악! 취소했잖아 취소!

그 와중에 바닥으로 추락한 핸드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3초를 가리키고 있었고,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두 번째 활성화 취소를 해냈다.

이후 화면에서도 정신없이 응급콜을 해제했고.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다리차가 동원된 소방차가 이대로 우리 집으로 왔다면 이 얼마나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이었을까. 아이폰 전원 버튼을 5번 누르면 응급콜이 엄청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계셨는지. 저는 이제 정말로 알게 되었어요.


알람소리가 시끄러워 시계역할만 하던 아날로그시계를 다시 방으로 데려왔다. 그래. 모닝콜은 또 이런 아날로그의 맛이지. 떨리는 손으로 잠시 핸드폰 전원을 꺼놓고 숨을 내쉬었다. 저놈의 응급 콜을 어쩐다. 계속 놔둬야 할까.


시계를 보니 해도 뜨기 전이다. 씻어야지. 비질비질 새어 나온 땀을 훔쳐내었다.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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