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언제나 엄마

자체로 그리움

by seoul

엄마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그리움이다.

나는 여전히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른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를 붙든다.

문득 생각한다.
엄마는 얼마나 지쳤을까.

아이도 그렇다.
하루 종일 “엄마, 엄마”를 부른다.

어느 순간
“그만 좀 불러”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바로
멈춘다.

아, 이게 엄마였구나.

엄마는 딸이 넷이었다.
나는 하나도 버거운데
엄마는 네 배의 에너지를 썼다.

저절로 살아지는 삶이 아닌데,
고단함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의 하루는
설명되지 않는 피로였을 것이다.

어제
이호선 상담소에서
늦게 엄마를 찾은 사람의 사연을 봤다.

“본 적도 없고 받은 것도 없는 엄마를
왜 찾으세요?
왜 기대하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아빠는요?”

명절마다
자전거라도 하나 사주고
조금이라도 챙겨줬던 아빠.

그런데도
찾지 않는다.

왜일까.

그 순간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 단어에
온도차가 있다는 걸 느꼈다.

엄마는
존재하지 않아도 그리운 사람이고,

아빠는
존재했어도 외면되는 사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엄마는
판타지가 되고,

곁에 있었던 아빠는
볼품없는 현실이 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엄마를 그리워하고,
조금이라도 해준 아빠를 외면하는 일.

그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의 문제 아닐까.

엄마는
따뜻해야 하고,
포근해야 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한다는
이상한 기준.

그 기준에 맞춰
우리는 ‘엄마’를 상상한다.

그래서
엄마 없이 자란 사람은
결핍을 느끼고,

그 결핍을
더 크게 만들어낸다.

어쩌면
실제보다 더 부풀려진
거짓 결핍일지도 모른다.

그 사연 속 사람은
엄마를 상상했다.

여리여리하고
긴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막상 만났을 때
실망했다.

자신과 닮은
평범한 얼굴의 사람이라서.

그건
엄마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판타지를
깨뜨린 일이었다.

나는
엄마를 많이 찾는다.

지금도
더 받고 싶고,
더 듣고 싶고,
더 확인받고 싶다.

어릴 때
조용하고 얌전했던 나는
엄마를 덜 불렀고,
엄마는 나를 그냥 두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더 요구한다.

더 달라고.
더 보고 싶다고.

엄마와 아빠는
같은 시간을 살았는데

나는
엄마를 더 찾고
아빠를 덜 찾았다.

참 이상하다.

엄마도
무뚝뚝했고,
냉정했고,
엄격했던 사람이었는데

아빠는
더 극단적인 사람으로 남았다.

아마도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를
너무 과하게 포장해버린 것 같다.

신처럼.

그래서
엄마가 인간일 때
실망하고,
엄마가 부족할 때
결핍을 만들어낸다.

나는 안다.

엄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냥
노귀자라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도 나는
엄마를 부른다.

여전히.

엄마, 엄마, 엄마.

그게
그리움이니까.

내 꿈은, 여전히 노귀자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엄마보다

아빠가 더 표현했고,

더 다정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seoul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삶 속에서 복원을 위한 나를 지키는 기록."

11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6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6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5화처음이자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