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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변만화 Nov 21. 2024

소녀, 쓰다; 열여섯 지금 이 순간의 길

영혼과  詩


열여섯, 지금 이 순간의 길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데

임은 나 보고 그 길을 가라 하네

나 홀로이 그 길을 만들어 가라 하네

보이지도 않는 그 길을

가시 무덤 무성히 솟았을 그 길을

돌무더기 굽이칠 그 길을

날 위해 펼쳐 놓았다

날 위해 파헤쳐 놓았다며

그 길을 임의 자비 아래 걸어가라 하네

목적지도 동무도 없을 그 길을

무심히 가라만 하네

임은 기꺼이 나의 은혜로운 등불이 되어줄 것인가!

임의 손 아래 불붙여 놓은 이 생은

어느 날 피었다가 지는

무수한 꽃과 다르지 않다며

그 길을 계속 가라만 하네

어느 누가 지금 눈 뜨고 서 있는

이 육신의 허락도 없이

세상이란 무지 아래 던져놓았단 말인가!

... ...난 아직 길이 보이지 않네

울음도 나도 서로 지쳐

멍하니 서 있다가 보면

혹시나마 스치는 바람결에라도

임의 자비 만나려나, 붙잡으려나

난 그 바람을 타고 흘러가려나......     




2001년도 作


열여섯의 소녀가 무엇이 그리 힘들었냐고
물으면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불혹을 눈앞에 둔 지금, 안다.
내가 누군가를 붙잡고 혹은 누군가를 향해
무어라고 입을 열던 시절과
마음을 바치던 시절은
차라리 내가 어리고 젊었던 시절임을.

이 시는 부처님을 향해 쓴 시이다.
부처님은 아실 거 같았다.
뱃속에서부터 쉬지 않고 믿기지 않도록
지난한... 내 운명을.

헌데 어린 그때도 내 영혼은 알았던가 보다.
부질없이 무상(無常)한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하느니
차라리 하늘에 대고, 바람에 대고, 달에 대고
토로함이
유의미함을
무해함을
유익함을
.
.
.
.
.
.






少女, 쓰다.

영혼과; 詩



1986년 4월의 마지막 날 태어난 저의 어린 날의 시들입니다. 첫 시를 11살 즈음에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인생 시의 80%는 한 대상을 중심으로 16세~17세에 쓰였습니다. 시상이 폭발하던 때였습니다. 쓰지 않고는 살 수 없고
견딜 수 없던 때였습니다.
어릴 적, 시를 쓴 노트를 도둑맞기도 하고 써놓은 글들을 살며 잃어버리기도 하고 소각하기도 하고 웹 상에서 지우기도 했던
그 글들에 대한 죄책감과 사죄의 마음을 늘 기억하며 삽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영혼이 미천하고 남루하고 부끄러워 서랍 속에 감춰 둔 그 글들에게도 말입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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