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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Nov 17. 2023

이래서 다들 '아이유' 하는구나

아이유 콘서트 재도전기

일 년 동안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유행한다는 드라마도 시큰둥했다.


출근-퇴근의 쳇바퀴를 한참 돌 때였다. 작게나마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게 노래였다. 일하면서 듣기에 알맞은 노래. 너무 감정이 격앙되지도 그렇다고 너무 희미하지도 않은 적절한 선에서.


나름의 기준을 두고 노래를 들어보면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갔다. 어느 정도 들어찬 리스트를 보니 아이유의 노래가 많이 담겨 있었다.


한 곡씩 찾아가며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아껴가며 한없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점심시간에 산책하면서. 출장 가는 택시나 ktx 안에서도 하염없이 들었다. 노래가 귓가에 들리면 몸은 현실에 있었지만 마음은 노래 가사처럼 시공간의 경계 없이 자유로웠다.


예전처럼 테이프였다면(20세기엔 그랬답니다ㅠ.ㅠ) 늘어났다는 표현이 알맞겠지만 디지털로 옮겨간 음악은 스트리밍 앱에서 똑같은 소리가 끝없이 재생되었다. 노래가 귀에 익으면 셔플로 돌려 듣고, 뒤에서부터 듣고 등등 한참의 변화를 치르고도 지루해질 때쯤이면 아이유의 신곡이 나왔다. 새로운 노래들도 하나 같이 귀에 감겼다. 아이유는 오랫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의 상위권이었다.


조금씩 삶의 여유가 생길 때쯤 문득 아이유가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호기심에 찾아보니 아이유는 이미 2014년 이래로 매년 크고 작은 콘서트를 열고 있었다. 앵콜에 앵앵콜까지 더해 장장 4-5시간에 달하는 콘서트 러닝타임으로 이미 ‘콘서트의 장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이런 뒷북..)


코로나가 잦아들고 안정화되자 다시 시작되는 콘서트. 그것도 잠실 주경기장 단독이었다. 방법을 찾아 예매를 하려 했지만 부족한 정보와 서투른 준비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33만 번째에 줄을 서는 좌절을 겪으며 나의 첫 콘서트 도전기는 어이없이 끝이 났다.  (슬픈 이야기는 여기에.. https://brunch.co.kr/@rachnomad/72)


한 번의 좌절을 겪으니 더 가고 싶어 졌다. 콘서트에 다녀온 사람들은 얼마나 재밌었을까. 짧게 편집된 콘서트 영상을 보니 내가 콘서트장에 서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왜 가고 싶은 걸까. 내가 그녀의 콘서트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뭐였을지 궁금해졌다.


갈 방법을 궁리했다. 좌절한 나에게 달린 친절한 댓글을 실마리 삼아 하나씩 방법을 찾아갔다. 이런저런 내용을 찾아보며 팬클럽에 가입하면 일반보다 하루 먼저 콘서트를 예매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 콘서트를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콘서트를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단계였다.


올해 초, 난생 처음으로 가수의 팬클럽에 (중고등학생 때도 안 했던) 가입했다. 오로지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 그리고 기다렸다.


더운 바람에 가끔씩 시원한 공기가 실려오는 늦은 여름, 드디어 콘서트 소식이 들렸다. 퇴근길에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다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콘서트를 예매하는 방법을 찾아 반복해서 읽으며 공부했다. 먼저 팝업창을 허용해 놓고 본인 인증을 하고. 혹시 모르니 핸드폰과 컴퓨터로 동시 접속하여 진행한다. 숙지완료!


예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시뮬레이션도 해보았다. 정시가 되면 활성화된 녹색 버튼을 누른다. 누르고 나서 대기에서 기다렸다가 이후 링크에 접속되면 콘서트 날짜, 좌석, 결제까지 빠르게 진행한다. 오키!


드디어 정시가 되고 티켓팅이 시작되었다. 눈앞에서 많은 표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좌석을 클릭하면 이미 누군가 선택했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침착하자.


몇 번의 실패를 반복한 끝에 가까스로 좌석 하나를 잡았다. 1층 무대 가까운 좌석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2층이었다. 휴우.



기다리던 콘서트 날이 왔다.


콘서트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리자 여기저기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아이유를 보러 온 것이리라.

사람들은 익숙한 듯 편한 복장에 하나 같이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상기된 표정으로 삼삼오오 무리 지어 발걸음을 옮겼다.


콘서트장에 들어서니 이미 객석이 가득 차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구나.

이윽고 장내 조명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숨죽인 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 등장할까.


노래 시작과 함께 아이유는 천장에서 천천히 내려오면서 오프닝 곡으로 celebrity를 불렀다. 그의 모습이 모이는 순간 사람들은 환호했다. 오프닝 곡에 이은 무대 인사를 하자 관객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호응했다.

 

공연 전(왼쪽) 공연 직후(오른쪽). 만 오천여명 관객으로 꽉찬 KSPO 돔 (올림픽 체조경기장)

 

여러 곡이 지나가고 어느덧 귀에 익은 간주가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공연 중 가장 큰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블루밍'이라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2019년 콘서트에서 부른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8000만 회를 넘으며 전설의 라이브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응원법(이라는 게 있습니다..)에 맞춰 함께 공연을 즐겼다. 아니 공연에 참가했다.  

전설의 '8000만 뷰' 블루밍  (출처: 아이유 유튜브 채널)



공연 중 가장 아이유스러운 모습으로 코스프레를 하고 온 팬을 가리는 순서가 있었다. 방송 쪽에서 일한다는 한 관객은 헤어스타일부터 분장, 그리고 양말에 신발까지 아이유와 똑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객석에 앉아 있었다.


아이유가 관객에게 물었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언니가 좋아서요."



굳이 덧붙일 것도 없이 아이유는 노래를 참 잘하는 가수였다. 노래와 무대 세팅도 좋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팬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일반 콘서트보다 노래를 많이 부른 것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무대 위에 모습을 보이자 열광했고 멘트 한마디에 호응했다. 360도 오픈형 무대에서 아이유가 관객석으로 얼굴을 보이면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렇게 3시간 동안 만 오천여 명의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녀의 매력은 무엇일까.


멘트의 비중이 높았던 팬콘서트였던 만큼 그녀는 공연 사이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최근 소식도 전했다. 콘서트를 준비하는 동안 드라마 촬영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꽤 오래전부터 시작한 앨범작업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공연 중 얼핏 보이는 약간의 노곤함에서 토크의 비중을 높인 팬콘서트를 개최한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 아이유는 가수뿐 아니라 배우로도 뛰어난 작품 활동을 보이는 올라운더가 되어 있었다. 작년에도 영화, 콘서트, 광고, 유튜브 콘텐츠 등등 전방위에서 활동했던 그녀이기에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낼까 싶었다. 더욱이 딱 일 년 전 잠실 주 경기장에서 단독콘서트를 했기에 올해는 콘서트 소식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콘서트라는 묘안을 들고 와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선 것이다.


정성과 의지 없이는 하지 못했을 이번 공연이라는 생각에 그저 고마웠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겠지. 이래서 다들 아이유 콘서트에 가고 싶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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