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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Jan 23. 2024

미뤄 둔 숙제

언제부터 기르냐의 문제일까..?

일주일에 한 번, 딸을 학원에 바래다주고 있다.

학원을 마치고 오는 길에 작은 빌라 주차장을 지난다. 


어느 날 보니 주차장 주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고양이는 가만히 엎드려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듯했다. 자연스러운 모습에 여간해서는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다.


“은서 바로 옆에 고양이 있네.”

무덤덤한 모습이 신기해서 나온 말이었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있는 고양이를 보자 화들짝 놀랐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미동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우리를 지켜봤다.


아이는 놀란 가슴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지나쳤다. 

한참을 걷더니 딸이 말했다.

“엄마, 아까 그 고양이 좀 크더라.”

“응 덩치로는 개인데… 생긴 게 너무 고양이긴 하다.”

생김새는 틀림없는 고양이인데 덩치는 중형견 수준이라 우리는 ‘개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얼마 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개냥이를 다시 만나자, 아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찬바람 부는 날씨였지만 걸음을 멈추고 개냥이와 눈을 맞췄다.


아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개냥이는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아이의 다리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어쭈?’


함께 놀자는 뜻인가?

고양이를 기른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왠지 딸에게 플러팅(?) 하는 느낌이었다.


개냥이는 길고양이면서도 집고양이처럼 붙임성이 있었다.

아이도 피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조심스레 고양이의 털을 만졌다.

“엄마, 털이 되게 부드러워.” 

딸은 활짝 웃었다.


생각해 보면 길고양이를 만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동네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날에 들리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그 가게 담벼락에 고양이가 살았다. 물그릇도 있고 먹이통도 있는 걸로 보아 주변 사람들이 먹이를 주나 싶었다. 


아이들은 고양이가 귀엽다는 뜻으로 ‘앙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앙지는 아이들이 강아지풀을 꺾어와 살살 흔들면 귀를 쫑긋 세우고는 관심 있게 다가가서 아이들과 한참을 놀았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했다.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고 조금 친해지면 쓰다듬고 보듬었다.



아이가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


그때는 두 아이 모두 한참 어리고 회사일로 쫓겼을 때였다.

흘려보내듯 대답했던 것 같다.

“응, 너희 먼저 키우고.”


거절의 뜻은 아니었다. 잠시 미뤄둔 숙제랄까.  할 일 목록에서 지우지 못하고 우선순위 밑으로 내려 둔.


그러고 보니 나도 어렸을 때 강아지를 길렀다. 언제부터 인가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떼를 썼다. 키우게 되면 목욕도 시켜주고 산책도 자주 나가고 밥도 잘 줄 거라고 했다. 


몇 달을 조르다가 결국 부모님은 강아지 한 마리를 기르게 해 주셨다. 갈색 털을 가진 포메라니안이었다. 털을 빗기면 모습이 뽀송뽀송하게 보여서 뽀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약속대로 목욕도 시키고 산책도 바지런히 나갔다. 외식하다가도 돼지다리뼈(a.k.a. 족발)가 보이면 집에 챙겨 와서 뽀송이를 주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산책 나가는 횟수도 점차 줄었다. 뽀송이도 나이가 들면서 집에서 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상이 바뀌었다. 그래도 뽀송이는 우리 가족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에 온 뽀송이는 천수를 다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얼마 전부터 아이들이 책방에서 고양이 만화를 빌려오기 시작했다. 작가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만화로 연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고양이가 사람처럼 질투하고 먹성 부리고 토라지는 모습을 보며 낄낄거렸다.


그렇게 좋을까? 하면서도 털을 빗겨주고 동네를 함께 산책하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도 이렇게 좋아하는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우리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길러야 하나? 

미루어 두었던 숙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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