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집을 찾아다니다 급하게 이삿날이 잡혔다. 이사업체에도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집을 나갈 때도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집에서 마무리만 남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실은 제일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집주인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순순히 보증금 전부를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보증금을 다 못 받고 이 집을 나가게 되면 남은 돈에 대한 권리를 잃게 되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 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이러한 경우에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기 위한 장치로 ‘임차권등기’라는 게 있었다. 법원에 임차권 등기를 해달라고 신청하는 제도인데 임차인을 보호하는 취지로 만든 절차이기에 별도의 방문 없이 서류 상으로 타당하면 인용을 해준다고 했다.
남편에게 만약을 위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자고 설득했다. 집이 남편의 명의로 계약되어 있었기에 신청 역시 남편이 움직여야 했다. 법원에 직접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법원 전자소송을 통해 신청할 수 있었지만 남편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애가 탔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아등바등하는데 도와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다. 마지막까지 참았던 말을 결국 꺼냈다.
“그래, 그만두자. 당신은 홀로 평온한데 나 혼자 뭐 이렇게 고생하는지 모르겠어.”
어쩌자고 결혼해서 이런 고생과 수모를 겪을까 싶었다. 설움이 쏟아져 내렸다. 그저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남편 앞에서 펑펑 울었다. 노트북을 덮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남편을 보니 서늘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냉랭하게 대할 때도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하게 상대했지만 이제는 다 그만두고 싶었다. 남편을 쳐다보지도 않고 아이들만 겨우 챙겨서 유치원에 보냈다.
출근해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간의 일을 곱씹었다.
‘나 혼자 분주하면 뭐해. 됐어, 안될 일이야. 그만두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이사 잔금은 보증금을 받아야 치를 수 있는데... 집주인이 보증금 일부만 돌려주면 어쩌지.’
남편은 아무 생각 없는데 나 혼자 우리 집의 고민을 짊어지는 것 같아 슬그머니 분한 마음이 들었다.
‘됐어. 알아서 하라고 하자. 계약의 주체는 남편이잖아? 내가 그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
점심시간이 지나고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볼 일이 있어 회사 근처까지 왔다며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인근 카페로 갔다. 남편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곧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더니 임차권 등기 신청을 하자고 했다.
속으로 이게 뭐지 싶었다. 임차권 등기 신청에 필요한 서류가 집에 있기에 카페에서 후다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집에서 찬찬히 살펴보자고 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남편과 모처럼 안부를 나누었다.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다사다난이 이런 걸까.
남편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까먹은 탓에 이사 나가기 전까지 남은 날짜가 얼마 없었다.
꼭 제출하기로 마음 먹은 날, 첫째가 아팠다. 평소 건강한 아이인데 그날은 뭘 잘못 먹었는지 몇 번이고 토를 했다. 등을 두드려주고 기운 없어하는 아이를 안아주며 겨우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을 마쳤다.
2주쯤 지나니 법원에서 보정 명령이 나왔다. 빠뜨리거나 착오 기재된 내용이 있으니 추가로 소명하라는 뜻이었다. 간단히 바로 잡으면 됐지만 처음 받았을 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법률용어는 평소에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들이 많았고 같은 말도 어려운 한자어로 쓰여 있었다.
흠 결 사 항
1.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 상 계약일자가 신청취지와 상이하므로 착오 기재라면 신청취지에 기재된 계약일자를 정정하시기 바랍니다.
계약서에 쓰인 날짜와 임차권 등기 명령 신청서에 작성한 계약날짜가 달랐다. 잘못 쓴 내용이므로 신청서의 계약날짜를 바로 잡았다. (제출하기 전에 몇 번을 살폈는데도 처음이라 그랬는지..)
2. 신청취지에 기재한 차임을 소명하시기 바랍니다
'차임'은 월세를 말했다. [보증금 100원, 차임 1원] 이런 식으로 기재하거나 월세가 없는 경우 '차임 없음'이라고 쓰면 되었다.
얼마 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모님도 그만두시게 되었다. 이럴 때 이사를 해도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을 한편에 남겨두고 임차권등기명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떻게 하는지 실무 방법이 알고싶다면? '실전! 보증금 지키기' 바로가기!
소송 신청하기, 서류 작성 꿀팁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