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로 도어락을? 이거 형사사건 아냐?

텅 빈 집, 못 받은 돈

by 마케터유정

이사 날이 밝았다.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밖을 내다보니 간간이 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이 어수선했다.


샤워를 마치고 수증기가 아직 서려있는 욕실 거울을 바라보며 오늘을 미리 그려보았다. 이사를 마치고 나면 집주인이 짐이 빠졌는지를 확인하고 보증금을 돌려주겠지. 얕보이고 싶지 않았다.


30분이나 일찍 이사업체가 도착했다. 이사 가는 집은 여기처럼 넓은 테라스가 없었기에 버리고 갈 짐이 꽤 되었다. 만 4년을 넘게 살면서 정리 없이 쌓아두기만 했던 짐들은 끝도 없이 쏟아졌다.


이사 가기 전부터 틈틈이 정리했지만 버릴 짐과 가져갈 짐을 나누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사 가는 집은 조금 손을 보고 들어가야 했기에 이사업체에 짐을 얼마 간 맡겨두게 되었다. 이삿짐을 보내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남편은 집주인과 마무리 지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그를 보면 감정이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래층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주인 부부는 올라와서 집안을 둘러보더니, “짐이 모두 빠졌네요.” 하고 말했다. 이에 집 보증금을 보내겠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 뒤 통장으로 보증금이 들어왔다.
전체 보증금에서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숨이 막히고 기가 찼다. 아 정말! 이 사람들이!


원래는 이사를 마치고 수리 비용 등 견적서를 토대로 집주인과 합의를 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증금 일부를 임의로 제외하고는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자리를 피해있던 나는 통장에 들어온 금액을 확인한 뒤 집주인을 찾아갔다.

“수리 금액이 그 정도나 되어요? 저희도 이사 갈 집 보증금은 치를 수 있게 해 줘야죠?”


이런 말을 하는데 너무 서러웠다. 이사라는 큰일이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기분이 참 암담했다.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나.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미리 부탁을 해두었는데.. 이렇게까지 부탁을 해야 하나 싶어서 집주인이 많이 원망스러웠다. 한없이 무너지는 마음이 슬펐다.


얼마 안 가 남편이 나를 찾았다. 집주인이 추가로 돈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 돈을 받고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그저 괘씸했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애써 밝은 목소리로 집주인에게 돈을 받아서 대출은 필요 없게 되었다고 했다.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집주인은 요청한 수리 상세 내역서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수리비용이라는 금액을 똑 내어지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 혹시나 싶어서 몇 가지 가재도구와 이불 한 채를 남겨두었다. 우리는 합의된 금액에 이를 때까지 집을 빼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나오자 집주인은 얼굴을 붉히며 아래 사무실로 내려가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곤 현관문의 도어락을 드릴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집주인도 성질이 날만큼 나있었다. 도어락이 현관문에서 빠지자 드릴과 함께 들고 내려가버렸다.




잠금장치가 없는 집에서 남편과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딘가 앉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바닥에 앉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가구가 놓여 있고 온기가 있던 집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집은 텅 빈, 황량한 느낌이었다.


남편은 말했다. 이 정도로 하자. 세상을 배웠다고 생각하자. 그때 도의적인 금액 얼마를 보냈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 했다. 나는 되물었다.

“과연 이 사람들이 인사치레 정도의 금액을 받고 물러섰을 것 같아? 여보는 여기서 무얼 배우고 있어?

나는 호구 잡히면 안 된다는 걸 배우는 중인데. 최선을 다해서 우리 의견을 한 번이라도 피력해봤을까 싶어. 결과를 떠나서 우리가 가진 최선을 다해야 배움이 있는 거잖아.


나는 아직 모르겠어. 그 돈을 그냥 준다고? 이 사람들 고마워하지도 않아.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 해보지도 않고 도망가고 싶지 않아.”


잠금장치를 떼어낸 집주인을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다. 남편은 머뭇거렸다. 동영상으로 남겨두었으니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경찰이 오면 본격적으로 일이 커질 텐데 남편은 사태가 커지는 걸 피하고 싶어 했다.


그랬다. 경찰에 신고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한 번은 뺑소니를 당한 적이 있었다. 뒤에서 쿵하고 부딪히더니 가해차량은 슬그머니 차를 돌려서 사라졌다. 당연히 내 연락처를 묻고 조치를 취할 줄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지 하며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지만 막상 112를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저찌 경찰과 통화하면서도 두서없이 얘기를 했다.


그동안 만나본 경찰이라곤 교통 순경뿐이었다. 우리가 피해자였음에도 이런 사건으로 전화를 하기가 손이 떨리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신고는 잠시 미룬 채 동영상을 몇 차례 돌려보며 남편과 나는 앞으로를 이야기했다. 남편은 이불 한채 남은 집에서 얼마간 지내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아이들이 있는 친정으로 갔다.




다음날 저녁, 퇴근하고 예전 집으로 간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1층 출입문 번호를 바꿔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주인에게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쫓겨나듯 이사를 한 셈이 되었다.


끝장을 보는구나.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우리가 신청한 임차권등기명령이 설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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