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밥 짓기의 모든 것
최고의 음식, 현미
음식의 기준은 첫 번째 '영양'이다. 그 다음이 '맛'이다. 영양가 없는 음식은 단순한 소비일 뿐이다.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잠깐의 쾌락도 정말 잠시다. 곧 다시 음식을 찾게 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현미는 영양계의 top클라쓰다.
현미는 쌀의 겉껍질인 왕겨만을 벗겨 낸 쌀알이다. 씨눈이 그대로 살아있다. 이 씨눈에는 '배아(胚芽)'라고도 하는데 항암, 활성산소 억제, 지방흡수 억제 효과가 있고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효능도 있다. 뿐만 아니라 단백질, 지방, 미네랄, 비타민 B 등이 일반 흰쌀에 비해 더 많이 들어있으며, 특히 칼슘과 비타민이 5배나 흰쌀보다 더 들어있다.
이런 영양 조건을 갖춘 현미는 우리 식단에서는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될 식품이다. 현미만 잘 챙겨 먹어도 모든 영양제를 치우고 면역력을 잘 키울 수 있다. 덧붙여 유기농 현미라고 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유기농 현미는 한살림이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이제 주식을 '현미'로 정했으니 요리를 할 차례다.
간단한 현미밥 짓기를 몇 가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소개한다.
요리에 정석은 없다. 식재료의 특성과 주어진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현미밥을 지으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공개한다.
1. 밥 짓기의 잇템, '압력솥'
우리 집은 아내가 밥을 거의 매일 새로 짓는다. 주로 저녁에 짓는데 갓 지은 밥은 정말 맛있다. 마치 참기름을 두른 듯 밥의 표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른다. 여기에는 사실 다양한 반찬이 필요 없다. 뭐든 같이 먹으면 꿀맛이다. 이렇게 매일 밥을 지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압력밥솥 때문이다. 우리나라 압력밥솥은 우리나라 곡식에 최적화되어 있다. 20-30분이면 금방 밥을 지을 수 있다. 어렵지 않다. 특히 강한 압력을 이용해서 밥을 하기 때문에 껍질 때문에 딱딱한 현미밥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풍년 밥솥을 쓰는데 처음에는 10인용을 썼다. 그런데 10인용은 고구마나 감자를 찔 때는 편하지만 지금은 식사량도 많이 줄었고 또 밥솥 자체가 크고 무거워서 잘 안 쓰게 되었다. 그리고 자주 밥을 해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4인용으로 바꿨다. 작고 가볍다. 값은 일반 냄비에 비해 비싼 게 단점이지만 그만큼 활용도가 좋고 특히 밥이 너무 잘된다.
2. 현미밥 짓기 기본 루틴 (추천)
현미를 하루, 24시간을 불리면 좋다. 최소 하루에서 이틀까지 불리는데 이틀을 불리면 일반 흰쌀밥과 식감이 비슷해진다. 우리 집은 이틀 치 정도를 미리 불린다. 이때 생각날 때마다 주걱으로 쌀을 뒤적여 주는 게 좋다. (이건 아내가 경험에서 터득한 노하우다. 쌀이 더 잘 분다.) 쌀을 불릴 때는 큰 믹싱 볼에 담고 소분은 글라스락 같이 뚜껑이 있는 유리용기에 하면 좋다. 요즘은 쌀이 생산단계에서 잘 세척해 나와 꽤 깨끗하기 때문에 쌀 씻기 쉽다. 아주 약간의 시간 (5-10분)만 투자하면 충분히 쌀을 씻고 불릴 준비까지 할 수 있다. 우리 집은 주로 아내가 밥을 전담한다. 나는 주로 반찬을 담당하는데 이렇게 하면 한 사람이 밥을 관리하기 때문에 밥 짓는 일정을 잘 조정할 수 있다.
2-1 압력솥으로 현미밥 짓는 법
1. 깨끗이 씻어 하루 이상 불린 현미를 넣고 물을 넣는다. (일반 흰쌀로 밥을 하듯이 물을 맞춘다.)
2. 뚜껑을 닫고 센 불에서 추가 크게 흔들릴 때까지 끓인다
3. 추가 크게 흔들리면 불을 약불로 줄이고 약 12분 정도 끓인다
4. 다 끓이고 난 뒤 압력밸브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린다
5. 압력이 내려가 안전해지면 뚜껑을 열고 밥을 뒤적인다.
2-2 압력솥이 없을 때
무조건 하루 이상을 불려야 한다. 이틀이면 가장 좋다. 하루 이상 불린 현미를 냄비에 흰밥 밥 짓듯이 지으면 된다. 핵심은 '하루 이상 불리는 것'이다.
3. 시간이 부족할 때 (압력솥이 필요하다.)
시간도 부족하고 현미도 불려 놓지 않았다면 임기응변처럼 사용할 수 있는 밥 짓기 기술이 있다. 나도 채식을 하며 이곳저곳 채식요리를 배우러 다녔는데 그때 배운 것이다. 이렇게 밥을 지으면 처음에 뚜껑을 열었을 때 수분이 많아서 질퍽한 느낌이 드는데 시간이 좀 지나서 수분이 날아가면 약간 진밥의 느낌이 난다. 먹기에 나쁘지 않다.
3-1. 급속으로 현미밥 짓는 법
1. 현미를 씻어서 물에 30분간 불린다. (이때 뜨거운 물을 이용하면 조금 더 많이 불릴 수 있다.)
2. 불린 현미를 압력솥에 넣고 물을 맞춘다. (물 양 = 현미 컵수 + 1과 1/2컵: 예) 현미 3컵이면 4와 1/2컵이 물의 양이다. 현미 n컵 + 1과 1/2컵)
3. 뚜껑을 연 채로 센 불에서 끓인다.
4.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닫는다 (계속 센불)
5. 추가 크게 흔들리면 '약불'로 줄여서 약 20분 끓인다.
6. 내부의 압력으로 튀어나온 압력밸브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둔다. (뜸 들이기)
7. 압력이 내려간 안전한 상태에서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밥을 뒤적인다.
4. 현미 초심자를 위해
식감이 불편하다면 편하게 즐기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오분도미'로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쌀의 구조를 보면 가장 바깥쪽이 왕겨, 그다음이 종피다. 종피를 얼마나 깎아내느냐에 따라서 쌀의 종류가 나뉜다. '오분도미'는 종피의 50%를 제거한 것이다. 현미에 비해 꽤 식감이 부드러워서 아이들도 잘 먹는다. 먹기에는 부드러운 편이지만 오분도미도 1시간 정도는 불려서 밥을 지어야 한다.
또는 '현미찹쌀'과 '현미'를 섞어서 밥을 짓는 방법도 있다. 현미로만 밥을 지으면 찰기가 덜하다. 쫀득한 식감이 떨어진다. 그럴 때 '현미찹쌀'을 섞으면 이런 부족한 식감을 보완할 수 있다. 내가 어느 순간 갓 지은 밥을 매우 칭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아내가 갓 지어준 밥에 감탄해왔지만) 아내의 말은 '현미찹쌀'을 밥에 섞기 시작할 때부터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현미를 조금 더 편안하게 즐기기 위해서 섞기도 하지만 집에 아이들이 있다면 알알이 겉도는 느낌의 밥보다는 찰기가 도는 맛있는 식감이 아이들이 먹기에 더 낫다. 물론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4:1 (현미:현미찹쌀)의 비율로 밥을 짓는데 가까운 지인은 1:1의 비율로 밥을 한다고 한다. 반 반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현미의 비율을 바꾸어 자신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식감을 찾는 게 좋겠다.
5. 밥을 자주 하기 어려울 경우
밥을 자주 하기 어려우면 많이 해서 '바로' 냉동시키면 좋다. 다만 해동할 때 전자레인지의 전자파가 신경이 쓰이면 자주 밥을 하는 수 밖에는 없다. 요즘에는 내열유리로 된 그릇이 많이 있다. 심지어 밥을 담는 전용 용기도 많이 있다. 플라스틱은 열을 가하면 어쨌든 무조건 유해물질이 나온다. 우리 집은 이런 사실 때문에 집안의 플라스틱 용기를 이사 오면서 다 없앴다. 이케아에 가면 내열유리로 된 식품용기가 많이 있다. 참고했으면 좋겠다.
현미를 다루는 일은 조금 번거로운 면이 있지만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다. 요즘에는 가성비로 비용 대비 '양'을 따지는 시대지만 음식은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양 음식이 물밀듯이 들어와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다. 모두 부드러운 음식들이다. 씹지 않아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 하지만 채식을 하면서 나는 몸에 좋은 음식들은 대부분 '먹기에 거칠다'는 진리를 발견했다. 감자, 당근, 연근 등의 뿌리채소가 그렇고 껍질째 먹는 과일이 그랬다. 현미도 그런 음식 중의 하나다. 그런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의 치아는 야생의 육식동물들처럼 음식물을 찢고 삼키게 하는 구조가 아닌 빻아서 잘게 부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의 몸이 스스로 필요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현미를 먹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