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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을 위한 빌드업

퀴어부부의 자작 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4탄

by 공구부치 Nov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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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당초 계획은 2021년도 캠핑카 완성 후 1년쯤 타고 다니며 캠핑카 이곳저곳을 수리하고 개선한 후에 2022년쯤엔 떠나는 것이었다.


2022년도가 왔지만 팬데믹은 끝날 기미가 안보였고,  심지어 러-우 전쟁이 발발해 언제쯤 떠날 수 있을지 계획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막막해하고만 있지 않고 유라시아 횡단 여행 준비를 철저히 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안정적이고 워라밸이 확실하지만 월급이 적고 미래도 안 보이던 회사를 그만두고 캠핑카제작 회사로 이직을 했다. 전문적으로 캠핑카를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고 우리 캠핑카 레디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취직한 곳은 화성에 위치한 카라반과 캠핑카를 판매, 제조, 수리를 하는 제법 큰 회사였고 월급은 이전 회사보다 조금 적었지만 기숙사와 점심, 저녁이 제공되는 곳이었다. 업계에서는 꽤 알려진 이름의 회사였지만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재정이 안 좋아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월급이 하루 이틀 늦어지거나, 풍족하게 쌓아둔 간식창고가 비워져 가는데도 신경을 안 써주거나 하면서 말이다.


회사는 아무 예고 없이 1년 유급휴가를 가라는 통보를 했다. 당장은 회사가 어려우니 지금은 쉬고 있다가 조금 회사가 나아지면 다시 나와 일하라는 것이었고 조건은 언제나 회사가 부르면 나와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날벼락같은 일이었지만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날 유급휴가계에 사인을 하고 바로 기숙사에 가서 짐을 싸 서울 집으로 왔다.


회사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회사가 망해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게 해 준 고마운 일터였다. 1년 넘게 일하면서 배운 기술로 틈틈이 레디의 이곳저곳을 개선했고 지금 생각하면 그 기간이 있었기에 무사히 유라시아 횡단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렇게 유급휴가에서 돌연 실직상태가 되어 실업급여를 받으며 맘 편히 쉬고 있던 어느 날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캠핑카를 가지고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시키로 배로 이동해 여행하는 영상이 나왔고 나는 바로 여객선사로 전화 걸어 취항여부를 알아보니 그동안 코로나로 막혀있던 노선이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유라시아 횡단 전지 훈련을 위해 이번 여름휴가는 일본 캠핑카 여행 가요! “

“갑자기?!”


퇴근하고 집에 온 짝꿍에게 다짜고짜 캠핑카 타고 일본 여행을 가자고 했고, 회사에서 이미 많이 털리고 집에 온 짝꿍은 별말 없이 그러자고 했다.

짝꿍은 회사에 일이 많은지 여행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고 나는 신나서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일본에서 운전을 하기 위해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 여객선사에서 요청한 여러 서류들을 작성해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구청에 가서 캠핑카 일시반출입 신고를 하고 자동차 영문 등록증을 발급받았다.


“먼저 가 있을게.”

짝꿍의 짧은 여름휴가를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내가 먼저 일본에 가있기로 했다.


나와 레디를 태울 배편은 부산에서 7월 24일 오후 3시에 출국준비를 하여 저녁 8시에 출발, 다음날 오전 7시에 시모노시키에 도착이었다.

만성 조급증을 앓고 있는 나는 굳이 23일 저녁 5시에 집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가까운 휴게소에서 차박을 하고 새벽같이 부산항에 도착해 출발 전까지 남은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다가 안전하게 배에 탔다.


잔잔한 바다를 건너 무사히 시모노시키항에 도착해 나와 캠핑카 레디는 내비게이션을 설정할 시간도 없이 일본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 내몰준비운동도 없이 운전을 시작했다.


‘직진만이 살길이다!‘


어디 잠깐 차를 세울 곳을 찾고 싶어도 긴장한 탓에 주변을 볼 여유조차 없었고 손에선 땀이 나서 핸들을 잡은 손이 미끄러지지 않을까 더욱 꽉 잡고 앞만 보고 직진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직진만 했던 것 같다. 겨우 용기 내어 좌회전을 하고 눈치껏 우회전도 시도해 작은 마을 관공같은 곳에 서서 잠시 쉴 수 있게 되었다. 역시나 가려던 방향이 아니었지만 천천히 운전한 덕에 길에서 멀리 이탈하진 않아 다시 네비를 설정하고 가려던 방향으로 출발했다.


가다 보니 우회전을 해야 할 때가 왔고 절망스럽게도 내가 맨 앞에 있었다.

뒤에는 나의 출발만을 기다리는 차들이 얌전히 한 줄로 서 있었고 나는 언제 가야 하는지 몰라 땀만 뻘뻘 흘리며 당황해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빨리 가라는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오토바이 한 대가 옆으로 오더니 따라오라는 수신호를 했고 나는 그 오토바이 덕분에 무사히 우회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와본 일본의 첫인상은 친절히 따라오라는 수신호를 보내던 오토바이 청년과 내 뒤에 얌전히 한 줄로 서 있던 일본 사람들이 되어주었다.


며칠이 지나 짝꿍은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로 왔고, 쿠마모토 - 아소산 - 가고시마 - 미야자키- 벳부 - 후쿠오카 8박 9일 여행이 시작되었다.

일본 캠핑카 여행의 재미는 국도 휴게소에 있었고 지역마다의 특색을 살린 인테리어와 음식들, 특히나 아침에 지역 주민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도시락을 사서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문제는 아소산에서 가고시마를 가는 길에서 일어났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목이 이전 태풍의 피해로 유실되거나 막혀 몆 번이나 우회를 해야 했고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짧은 일정에 시간이 낭비된다는 생각에 망할 조급증 증상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그래? 말을 해야 알지… ”

“….”


내가 짜증이 난 표면적인 이유는 우회를 거듭하며 내비게이션을 다시 설정하는 사이 짝꿍은 내가 저장해 놓은 (사실 저장해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저장되어 있지 않았었다.)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네비를 찍었고 한 동안 그것도 모르고 나는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이유였다.


내 조급증은 다음날 가고시마에 도착해서도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쾅!”


주차장들어가다 높이 2.5M 표시를 보지 못하고 차 위쪽을 박아 버린 것이다.

캠핑카 위에 달려있는 태양광 패널이 주차장 입구 지붕과 부딪히면서 태양광 패널을 고정시켜 놓은 브래킷이 떨어지며 난 소리였다.  


다시 고정하지 않고 주행하면 태양광 패널이 떨어져 아주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고 임시방편으로 가지고 있는 공구와 양면테이프 등으로 고정시키는데 2시간이 걸렸다.


나의 심술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불편함이 부주의로 이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뻔한 이 사건으로 2시간 동안 반성하면서 너덜너덜해진 태양광 패널 고정 브래킷을 수리했다.


일본에서의 전지훈련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며 너무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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