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동안 준비한 여행은 신혼여행이 되었다.
24년도 1월에 ‘어서 와요 퀴어부부 잔칫날’이라는 잔치를 열어 10년 동안 꾸준히 기족이 되어온, 앞으로도 서로의 가족으로 살아갈 것을 축하하고 축하받았다.(우린 잔치라 썼고, 모두는 결혼식이라고 불렀다.)
우리 부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신혼여행이 우리가 만든 캠핑카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하는 유라시아 횡단 여행임을 다 알고 있었고, 오가다 만나는 친구들은 결혼식보다 신혼여행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긴 신혼여행을 앞둔 마음이 어때?”
“음…. 무사히.. 7개월 동안 여행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쉬고 싶어.”
“너는 여행을 가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구나...?!”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여행을 곧 떠나는 나에게 어떤 담대함이나 긴 준비 끝에 결국 떠나는 여행에 대한 설렘 같은 대답을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에게 7개월간의 유라시아 횡단 신혼여행은 설렘과 기대보단 걱정과 불안한 마음이 더 컸고, 떠나고 싶은 마음보다 집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혼식 준비는 짝꿍이, 나는 신혼여행 준비를 담당했다. 조금은 불리한 입장이었던 것이 결혼식은 도와주는 웨딩플래너가 있었지만 난 혼자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혼식 준비보다 신혼여행 준비가 나에겐 더 쉬웠다. 나는 군말 없이 캠핑카 레디의 소모품 교체와 스노타이어 교체, 정비 및 하체보강 등을 해나갔다.
노란 얼굴이 매력인 레디는 캠핑카로 변신하기 전엔 로젠택배차였고, 서울 구로 도심을 구석구석 누비며 열심히 택배를 실어 날랐다. 너무 열심히 노동을 한 탓에 여기저기 골병이 들어있던 레디를 수리하는 데에만 많은 돈이 들었지만,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든 것은 오랜 정비일로 비만 오면 쑤시는 내 몸뚱이랑 처지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결혼식 이후 신혼여행까지 남은 시간은 40일이었다. 차량 정비 말고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캠핑카 일시반출입 신고, 차량 영문등록증발급, 국제운전면허증발급, 살고 있는 집 정리 및 단기임대, 짐 싸기 등.
살고 있는 집은 여행기간 동안 친한 지인이 단기로 임대해 살기로 했고, 타고 다니던 차는 또 다른 친한 지인에게 보험료만 내고 타고 다니라고 했다.
또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는 배를 운영하는 선사 측에서는 캠핑카를 배에 실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면 차 안에 부착되어 있는 것 말고는 짐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캠핑카 안에 있는 모든 짐을 꺼내어 가져갈 것과 말 것을 분리해 최대한 가볍게 짐을 싸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또한 지인에게 임대해 줄 집에 있는 짐들도 어느 정도 비워줘야 해서 짐 싸는 일만 일주일 넘게 걸렸다.
하지만 더 큰일은 출발 3일 전인 토요일 저녁 히터코어에서 냉각수 누수를 발견한 것이었다. 수리할 수 있는 시간은 월요일 하루뿐이었고, 5시간이 넘는 긴 수리시간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이 작업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정비사 선배뿐이었다.
우리 부부 결혼식에도 왔던 선배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리자 이미 정비예약된 차량이 많지만 일단 오라고 했다.
월요일엔 시골 부모님 댁에 들러 인사를 드리려 했지만 못 가게 되었다고 전화를 드렸다. 엄마는 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려 어차피 오지 말라고 전화하려던 참이었다며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오후 2시쯤 시작된 작업은 밤 8시가 다 되어 끝이 났고 다음날 아침 10시 동해항에 차량을 선적하기 위해 근처 숙소까지 밤새 운전해 갔다.
3월 5일 화요일 아침 10시, 동해항에 도착해 차에서 짐을 다 내리고 캠핑카를 동해항 세관에 입고시켜 놓는 것으로 출국절차는 시작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블리다보스토크로 가는 배에 올라타 있었다.
다행히도 떠나기 전에 큰 고장을 발견해 수리했지만 긴 여행 중 또 어떤 고장이 날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을 갖고 24시간 후인 3월 6일 오후 3시 블라디보스토크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