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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첫 경험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6탄

by 공구부치 Dec 05. 2024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여행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처리하느라 일주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바쁘게 지냈다. 지내던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도움이 컸다. 핸드폰을 개통하고,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만들고(그랬으면 현금 다발을 들고 다니며 도난을 걱정했을 것이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이것저것을 배웠다.


드디어 통관을 끝낸 레디를 찾아 다시 짐을 욱여넣고 출발했다.

일주일 동안 정든 게하 사장님은 출발 아침 새벽부터 만들어 주신 따신 밥과 미역국, 샐러드로 배웅해 주셨다.


가슴 벅찰 것만 같았던 러시아에서의 첫 주행은 한국의 어디 시골을 달리는 기분이기도 했다가 못 보던 차들이 지나가면(프르공이라고 풍뎅이 같이 생긴 차들이 많이 다닌다.) 신기하기도 했다가 비포장 도로가 나오면 역시 ‘시베리아인가!’라는 마음도 들기도 하며 벅차기보단 끝없이 이어져 있는 길을 달리는 것이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회중시계를 보며 늦었다며 뛰어가는 흰 토끼가 된 마냥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3월 초 시베리아 횡단 첫날 길은 눈이 많이 쌓여있진 않았지만 주변 들판은 얼어 있었다. 푸르름이 아닌 죽어있는 노란빛, 그것은 삭막하기도, 막막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우리의 첫 차박지는 우수리스크를 지나 하바롭스크로 가는 길가에 있는 허름한 트럭카페 주차장이었다.


망원동 집 작은 방 벽에 붙여있는 세계지도를 보며 시베리아 횡단 여행의 꿈을 키워갈 때 항상 손가락으로 제일 먼저 짚었던 ‘하바롭스크’. 그곳에 가면 아무르 강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무르강가’라는 러시아 민요를 들어달라던 친구의 부탁이 있는 그곳으로 우리는 가고 있었다.


짐을 정리할 겸 일찍 차를 세웠다. 도로 옆 트럭카페 마당은 얼어있는 진흙바닥이었고 조금 녹았을 때 트럭들이 지나다닌 흔적으로 울퉁불퉁했다. 조심스럽게 주차를 해 놓고 카페에 들어가 저녁을 이곳에서 먹는 조건으로 하룻 밤동안 주차를 허락받았다.


다시 짐 정리를 정식으로 할 요량으로 대충 정리를 마치고(이후 다시 짐정리는 하지 않았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뒤죽박죽인 채로 지냈다.) 감격적인 첫 트럭카페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뭐든 잘 먹고, 어디서든 잘 자는 짝꿍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맛있다며 잘 먹었지만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고, 입맛이 까다로운 나는 요거트 한 숟가락 얹은 토마토 수프를 겨우 한입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짝꿍은 시베리아에서 음식투정은 용납 못한다는 표정으로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썼다. 첫 음식은 러시아 대표음식 보르쉬다.


그렇게 감격적인 첫 트럭카페 이후 시베리아 횡단동안 살이 많이 빠진 것은 나의 예민함 때문도, 맛없는 러시아 음식도 아닌 나의 편견 때문이었다. (그해 가을 돌아오는 길에 먹은 러시아 음식은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첫날밤은 아무 이유 없이 무서웠다. 저녁을 먹고 캠핑카로 돌아와 무시동히터를 켜고 대충 씻고 벙커배드에 누워 짝꿍 모르게(왜 무서운지 말하기 시작하면 두배로 무서워질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우리의 위치를 전송했다.


“사장님 우리 여기 있어요. 내일도 연락드릴게요.. 생존신고입니다”

“넵! 얼마 못 가셨네요. 내일도 연락 주세요^^“


그렇게 한 명이라도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어야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무서웠던 것도 잠시, 첫 시베리아 운전이 긴장되었던 탓인지, 피곤했던 탓인지 금방 잠이 들었고 다음 날 밖이 시끄러워 잠에서 깼다.


우리가 주차한 곳은 카페 옆에 자동차 공업사 문 앞이었고 눈을 떠보니 이미 밖은 환했다.


“드르륵드르륵! 드드드드 “

“윙 윙“


이미 공업사는 성업 중이었고 우린 빨리 차를 빼줘야 했다.

공업사 문 앞에 주차된 차를 옮기려 대충 옷을 입고 운전석으로 가보니 앞, 옆 유리에는 성에가 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시동을 걸고 히터를 켜서 유리에 낀 성를 녹여야 했다.


“틱 틱“


밤새 밖이 너무 추웠던지 시동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얼른 캠핑카 안에 들어가 인산철 배터리와 시동배터리를 점프시켜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오늘은 시동이 걸렸지만 이제 점점 더 추워질 텐데 배터리에 무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과 불안, 무서움의 여행 첫날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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