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9탄
“Go straight for 2078km and then turn left”
2078킬로를 직진하라니… 역시 러시아구나!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운전면허를 땄지만 내가 운전을 시작한 나이는 30살부터였다.
면허를 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아버지와 단 둘이 친척집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운전 한번 해볼래?“
“네!”
.
.
“신발은 …왜 벗어?! “
“엑셀을 얼마나 밟는지 느껴야 할 것 같아서요”
“내려…”
신을 벗으며 운전석에 타자마자 엑셀 한번 밟아보지도 못한채 다시 신을 신어 조수석에 올라탄 뒤로 아버진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으셨다.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자동차 정비를 하겠다고 하였을 때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친언니에게 부탁해 언니의 차로 인적이 드문 동네 길에서 연습을 몇 번 정도 했다.
“언니 나 운전해서 짝꿍 만나고 올래 차 빌려줘 “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뭘 믿고 차 키를 줬는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순순히 나에게 차키를 내어줬고 저녁 8시쯤 경기도에서 출발해 사당을 지나 홍대에 있는 짝꿍을 만나러 갔던 기억이 내 첫 도로주행으로 기억한다.
자동차 정비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첫 차 LPG 구형 싼타페를 100만 원에 사서 이름을 “쓰붕”이라고 짓고 본격적으로 짝꿍과 이곳저곳을 여행 다녔다.
당연히 신발은 안 벗고 운전한다. 그리고 난 제법 운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 아무리 멀리 달리려 해도 500km가 안 되는 사실상 섬 같은 나라에서 살다가 달려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시베리아를 달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 차로 아무리 멀리 달려도 500km도 못 가고 멈춰야 했는데 2000km 직진이라니! ’
육로로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행자라면 치타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 비슷한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약간의 신기함과 설렘, 그리고 겨울 시베리아의 두려움..
이 구간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핸드폰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나마 사람이 살 것 같은 작은 마을들이 보이면 조금 터지다가 금세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데이터에 의존해 다음 주유소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어디서 먹을지, 잠을 잘지.. 등등 검색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인터넷이 안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심지어 낮에도 영하 10도 이하인 이런 길에 눈이라도 내리면…이라는 걱정이 들자 되도록이면 빨리 이 구간을 지나 큰 도시인 치타에 도착하고 싶어졌다.
데이터가 안되니 스트리밍으로 듣던 노래도 틀 수 없게 되었고 대신 우린 수다쟁이가 되어 끊임없이 대화 주제가 나왔고 깔깔 웃기도, 심각해지기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단조롭기만 할 것 같았던 시베리아 길에는 도로를 점령한 귀여운 소들과 소련시대부터 그대로 있었을 것 같은 작고 낡은 마을의 특색 있는 집들을 종종 만나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작나무숲과 드 넓은 평야의 지평선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달리다 보면 우린 평생 한 번도 하기 힘든 시베리아 횡단을 수시로 하는 화물차들을 제일 많이 만난다.
몇 번이고 지났을 이 길이 익숙해서인지 이들은 비포장 도로에서도, 눈길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가 조금만 천천히 달린다 싶으면 겁도 없이 추월해 갔다.
그래서 그런지 심심치 않게 화물차들의 사고를 목격할 수 있다.
조금 높은 산맥을 오르는 구간이었다. 눈까지 오는 오르막길에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이러다 도로가 얼어버리면 위험해질 텐데..’라고 걱정하고 있는데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내 뒤에 있던 차들이 추월해 가기 시작했다.
나도 눈치껏 추월해 앞으로 나갔다.
“여보! 반대편에서 큰 화물차라도 오면 어쩌려고 그래”
“흠… 그렇긴 한데 도로가 얼어버릴까 봐 그래.. 안전하게 추월해 볼게.”
몇 번의 추월 후에 막히는 도로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눈길에 큰 화물차들이 바퀴가 헛돌며 오르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화물차를 추월해 막히는 구간을 벗어나는가 하면 금세 또 막히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차가 막히면 추월하는 것이 익숙해져 갈 때쯤 러시아라는 것을 망각하고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조금은 대범하게 추월을 시도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끼어들 수 있게 다들 비켜 주던데…뭘..’
핸들을 꺾고 엑셀을 발아 느리게 달리는 3대의 차를 앞지른던 그때 커브가 나왔고 커브의 끝에 큰 화물차의 앞 대가리가 보일 때쯤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나의 거리는 위험할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순간 반대편 화물차 기사와 눈이 마추졌고 그분의 눈은 놀란 듯 보였다.
‘헉!’
사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나도 놀랐다.
다행히 나의 옆에서 서행하던 차가 멈추며 내가 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었고 간만의 차이로 숨어 들어갈 수 있었다.
방금 사고 날 뻔했던 화물기 사는 나를 스쳐 지나가며 짧은 경적을 ”빵“하며 울렸고 마치 내 이마에 꿀밤을 준 것같이 느껴졌다.
너무 미안했고. 고마웠다.
다행히 짝꿍은 주유소를 검색하느라 내가 옆 차선으로 끼어드는 순간 고개를 들어 얼마나 긴박했는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안전하지 않을 때는 절대 추월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시 만나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하겠지만 마음속으로나마 미안하다는 말을 100번 넘게 했고, 나를 피할 수 있게 비켜준 차주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속으로 100번 넘게 말한 것 같다.
그리고 고이 자고 있는 짝꿍을 보며 ‘다신 안 그럴게.. 불안하게 느끼게 운전하지 않을게 ‘라고 100번 되뇌었다.
하지만…. 개버릇 남 못준다고.. 험하게 운전하는 나의 운전습관은 스멀스멀 올라왔고..
짝꿍은 그럴 때마다
”여보! 나 불안하게 운전 안 한다며! “
라며 눈을 부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