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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Feb 18. 2024

공모전 탈락선 / 2024 동아신춘문예


등단.

모든 연단에 오르는 일이 그러하겠으나 도전하면 할수록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사실 단건의 응모만으로도 난이도에 대한 감정의 변화가 널뛰듯 극심하다. 응모할 글의 마지막 온점을 찍고 나면 할머니가 퍼 준 손주 밥처럼 후하디후한 감정이 차오른다. 올해는 분명히. 이런 걸작을 써냈으니, 올해만큼은 분명히. 진득하고 성급한 취기가 오른지 하루 이틀 그리고. 공모 수상자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이제는 수정할 수 없는, 심사위원이 손에 쥐고 있을 내 글을 반복해서 읽을수록, 이런 쓰레기를 쓴 내 손을 잘라내고 싶은 심정이 취기를 가라앉힌다. 아, 비통하다. 그 핑계로 소주도 몇잔, 다른 취기가 오르고. 글쓰기는 게으르게. 드디어 발표일. 역시나 다른 작품이 수상했다. 능력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같은 경쟁자의 입장에서 수상자가 미울 법도 하지만 수상작을 읽고 나면 금세 납득해 버린다. 나 같아도 이걸 뽑았겠다 하며. 하지만 좌절할건 없다. 아니 해서는 안된다. 역시 잘썼네... 좋다. 그리고 끝. 어차피 할 일은 이것뿐 아닌가. 내 차례가 아니었구나 하고 다시 쓸 뿐이다. 모니터 화면 가득한 글자들 사이를 이리저리 옭아맨 흰 격자를 보고 있자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이 보인다. 그물에 갇혀있다. 빠져나갈 수 없다면 안간힘을 써서 무얼하나. 받아들일 뿐이다. 앞으로 몇 개의 공모전에 탈락하게 되려나... 모르겠다. 대수롭지않다 여겨야 한다. 단상에 오르지 못한 곳에도 내일이 오니까 오늘을 살아야지. 기왕 수없이 많이 다가올 탈락이라면 어떻게든 써먹자는 마음으로




공모전 탈락선




2024 동아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뜬장


이곳의 개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사람이 지나가면 뜬장 구석에 잔뜩 웅크린 채 사람의 눈치만 보는 개와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맹렬히 짖어대는 개. 민다는 두 부류 모두 사람을 두려워해서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던 내가 개 번식장에서 일하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 때문이었다. 나는 4년 차 공무원 수험생이었다. 하루아침에 내게 남은 것은 늙고 병든 할머니와 역시 늙고 병든 엄마 그리고 잔뜩 쌓인 문제집들뿐이었다. 31살이라는 나이를 가진 내가 이 집안의 가장이 돼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다.

엄마는 당장 나가야 하는 돈이 삼백이 넘는다느니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어디를 다녀왔다느니 편의점에 소주를 사러 갔다가 여기 직원은 안 뽑느냐고 물어봤다느니 하며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사실 일을 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이 늙은 어미가 이 나이 들어 일하려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지는 않겠지"

"30년 넘게 키워준 은혜가 있는데 말이야. 공무원? 그것도 4년이나 떨어졌으면 더 이상 안 된다는 거 저도 알 거야"

라는 본심을 속에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피해망상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엄마가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한 것들이니까. 내가 진탕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을 들어온 날 아침, 내가 집에 있는지 모르고 당신 친구와 통화를 하며 뱉은 말들이었다. 그 덕에 나는 방안에 갇혀 한 시간 넘게 소변을 참아야 했다.

할머니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거실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두툼하고 갈라진 손으로 가슴께를 쿵쿵 쳐가며 이해가 가지 않는 말들을 주기적으로 중얼거렸다.

"개 먹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느이 아빠가 내 말을 안 들어서 저리됐다. 망할 놈이 즈그 형들 팔자 따라가려고. 종석이도, 종길이도 다 개 먹자마자 논두렁에 자빠져 죽고 간땡이가 부어서 죽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오 내 팔자야"

아빠는 과연 개를 먹어서 죽은 것일까. 내 생각은 다르다. 생전 술과 보신탕을 좋아하던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본인이 개를 잡아먹은 것과 한밤중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빠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을 먹여 살리려면 적지 않은 임금을 주는 곳을 찾아야 했다. 집에서 출퇴근하긴 싫었기에 집으로부터 가능한 먼 곳에 있는 직장을 구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나오고 싶었으니까.


친구에게 하소연하기 위해 가진 술자리에서 지금의 일자리를 소개받게 되었다.

"할머니는 아빠를 낳았고 아빠 엄마는 나를 낳았지. 당신들은 선택했으니까, 책임도 져야 했던 거야. 근데 나는? 내가 이 인생에 동의한 적 있냐? 근데 왜 창창한 나이 서른에 어른 두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비극을 겪어야 하나 이거야. 응?"

술에 절어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나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일자리 하나 구해주면 돼?"

하나, 집과 멀고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한다. 둘, 시급이 세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내가 내건 단출한 조건들이었다. 사료 회사에서 일하던 친구는 잠시 핸드폰 화면을 올리고 내리더니 "너 개 번식장에서 일할 수 있어?" 했고, 나는 불콰한 얼굴로 "하지 뭐 그까짓 거"했다.

흔쾌히 동의해 놓고 '생각해 보니 무서워서 못 하겠다'라고 말할 순 없었기에 다음날 의사를 재차 묻는 친구에게 준비가 되었다고 알렸다.

"다 얘기 해놨으니까 전화해서 이름만 이야기하면 알 거야"

033으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는 10초 남짓 동안 이대로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저, 그, 일하기로 한, 저, 민선욱이라고 합니다"

"민선… 아, 예예 최 대리님 소개로 연락해 주신 분?"

"네, 맞습니다"

"그래요. 준비는 다 됐어요? 날짜가… 내일이죠?"

"네 29일"

"어차피 우리 직원들이 서울 나갈 일이 있으니까 3시까지 동서울터미널에서 봅시다. 직원 연락처는 내가 줄게요"


동서울터미널은 세련된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홀로 낡아 가고 있었다. 무거운 곰팡내를 맡으며 건물을 통과해 주차장으로 나가자 수없이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22번 옆이랬는데.

"어이! 민선욱?"

흙과 먼지 그리고 시간을 잔뜩 뒤집어쓴 승합차와 함께 두 명의 남성이 서 있었다. 희끗한 머리카락, 수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얼굴의 남성과 다소 어두운 피부의 이국적인 생김새를 가진 남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개 번식장…"

"어 그래 맞아. 어서 타 늦겄다"

나는 이국적 외모의 남성과 함께 차에 올랐다. 희끗한 머리의 남성은 늦었다 말해놓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민, 내 이름하고 비슷해. 내 이름 민다. 저 사람, 박 차장님"

나와 함께 차에 탄 남성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민다는 스리랑카에서 왔다고 했다.

“어휴, 날이 벌써 추워졌어. 둘이 인사 나눴어? 나이도 비슷하지 아마?”

우리는 휴게소에 두 번 들렀고 차창 너머로 바다도 보았다. 잘 닦인 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린 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하자 운전을 하던 박 차장은 다 왔으니 준비하라고 알리며 잠든 우리를 깨웠다.


"그래그래 우리가 최 대리한테 신세 많이 지지. 어서 와요"

나중에 박 차장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대표는 인근 주민들에게 김 교수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개 번식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많아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돌아보면 알겠지만, 우리만큼 인도적으로 기르는 데가 없어요. 보통은 뜬장을 2층이고 3층이고 쌓아버린다고. 그러면 어떻게 돼? 위층에서 떨어지는 똥오줌을 막 맞으면서 사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어때? 다 한 층이잖아"

뜬장은 사방 벽은 물론 천장과 바닥까지 얇은 철조망으로 되어있는 동물 우리를 뜻했다. 말 그대로 떠 있는 장. 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기에 안에 있는 동물들은 얇은 철선에 발을 딛고 서야 했고 적지 않은 체중을 가진 큰 개들은 발바닥이 파이고 갈라지기도 했다. 관절에 좋지 못한 것은 물론 염증이 생겨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발이 철조망 간격보다 작은 개들은 발을 구멍에 빠트릴 때마다 머리를 바닥에 찧어야 했다. 비바람을 막을 수도 없고 더위와 추위, 벌레에도 취약했다. 그런데도 뜬장을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인간이 배설물을 치우기가 편해서였다.

박 차장은 뿌듯한 표정의 대표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1층짜리 뜬장. 그게 이 번식장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인 듯했다.

"요즘 청년들은 이런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우리 선욱 씨는 참 기특하네. 이런 일이 자꾸 사장되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가 다 사라지는 거라고. 자네같이 젊은 청년들이 문화 산업을 이어가야지. 안 그래?"

박 차장은 역시 끄덕였고 이번엔 나도 함께 "예…"하는 소리를 내며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시급은 만 오천 원이었다. 개 번식장은 열악한 곳이 많다고 한다. 특히 애완동물 가게에서 강아지를 구입하는 것보다 입양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문화가 자리 잡음에 따라 애견용 번식장들은 줄줄이 도산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처음부터 죽을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개들을 기르고 있는 곳이었다. 식용견이라고 불리는 개들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곳. 한국은 아직도 보신탕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고 대표가 워낙 사업 수완이 좋기도 했으며 이곳에서 자란 개를 먹고 무릎이 나아졌다는 이야기가 퍼지게 되면서 여전히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

대표는 업체 미팅이 있다며 차를 타고 떠났다. 박 차장은 대표가 허세가 좀 있는 편이니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말한 뒤 장화를 챙겨 신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민다와 나는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잔뜩 녹슬어 갈색으로 변한 뜬장들이 기차처럼 줄 세워져 있었다. 뜬장 안에 있는 개들은 종을 알 수 없는 대형견이 대다수였고 갈색의 짧은 털을 가진 녀석이 많았다. 가끔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긴 털을 갖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민다는 그들이 이 번식장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개들이라고 했다. 털이 긴 개는 도축이 번거롭고 살이 질기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바람에 퐁실퐁실 날리는, 윤기 넘치는 흰 털을 가졌을 테지만 뜬장 안에서 살게 된 녀석은 잔뜩 떡지고 갈색의 무언가로 뒤엉켜 있는 털을 갖게 되었다.

"민, 아이들한테 마음 주지 않는 게 좋아. 여기에 무엇을 하려 온 건지 잘 기억해"

나도 모르는 사이 표정이 굳어진 건지 민다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건넸다.


나와 민다의 업무는 간단했다. 백여 마리 개들의 배설물을 하루에 한 번 갈아주고 사료와 물을 하루에 두 번 갈아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배설물이 가득 담긴 50리터짜리 양철 페인트 통을 하루에 10통씩 꽉 채우고 이리저리 날라야 했다. 그러고 나면 역시 비슷한 무게의 사료통을 끌고 밀며 백 개가 넘는 밥그릇을 채워야 했다. 물도 마찬가지. 물조리개에 수돗물을 가득 채우고 또 비우느라 수돗가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밥 주고 물주고 똥 치우는 게 뭐가 힘들다고?"

첫날 일을 한 뒤 근육통 때문에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고 말하자 엄마가 내게 한 말이었다. 소리를 빽 지른 뒤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으나 민다와 박 차장이 한 방에 있어 참고 말았다.

"어머니가 뭐라시냐? 아들내미 고생한다고 슬퍼하시지?"

박 차장은 퇴근 후 마른 멸치와 소주를 마시는 걸 좋아했다.

"근데 어떡하냐. 너 앞으로 더 고생해야 해. 내일부터 교배시즌이라 다들 죽어날 거다. 야근도 해야 할걸"

"그럼, 돈도 더 받나요?"

"돈? 그래, 돈이야 많이 벌지"

박 차장과 민다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갔다.

"민, 내가 한 말 잘 기억해"

민다는 내 어깨를 꼭 쥐며 말했다.

"민다가 뭐라 그랬는데?"

"아, 그냥 개들한테 마음 쓰지 말라고…"

박차장은 소주를 마신 후 “크”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민다 얘가 마음이 참 여려. 바람피운 마누라랑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겠다고, 자기네 나라에선 선생님 소리 듣는 놈이, 한국 와서 개 잡는 일이나 하고…"

"차장님 술 많이 마셨다"

속사정이 궁금해지는 이야기였으나 민다가 너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바람에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충전기에 꽂아놓은 핸드폰으로 다가가 지금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핸드폰에는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아들 이번 달 생활비가 이백 정도 나올 것 같아'


교배 날. 아침부터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10시까지 모든 배설물 판 교체를 끝낸 뒤 사무실로 모였다. 늘 자리에 없던 대표도 오늘만큼은 함께 일을 할 것으로 보였다.

“애들 다 굶겼죠?”

교배 날이 되면 개들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 대표 말에 의하면 ‘배부른 개들은 일을 하질 않기 때문’이었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애들만 20두입니다"

교배는 아무 때나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암컷 개, 즉 종빈견이 발정기가 와야 한다. 이 발정기는 1년에 한 번, 많게는 두 번 정도 찾아오고 한번 시작되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속된다. 즉 오늘 교배시키지 않으면 발정기가 끝나버리고 1년간 새끼를 밸 수 없는 개들의 수가 20마리라는 것이었다.

"발정 온 애들, 더 안 돼요?"

대표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박 차장을 바라보았다. 박 차장 역시 같은 표정으로 대표의 말을 받았다.

"20두도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여기서 더요?"

"그, 좀, 예, 그렇게 됐어요"

박 차장은 무슨 이유인지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발정 온 지 1년 넘은 애들이 몇 있긴 한데, 좀 돌려보면 몇 마리 정도는 어떻게 될 겁니다"

'돌린다'는 말에 옆에 앉아있던 민다의 표정도 안 좋아졌다. 나는 가만히 앉아 대표와 박 차장 그리고 민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해봅시다. 민다랑 선욱 씨는 교배 작업 바로 시작하면 되고 나는 박 차장님이 뽑아주시는 애들 좀 돌려보고"

"담배 하나 피우고 시작하시죠"

"예 예, 바쁘니까 서둘러주시고"

대표는 밝아진 얼굴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모습을 뒤로한 채 박 차장과 민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개들만 불쌍하게 됐네"

"대표님 돈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누군 안 그러냐?"

박 차장이 반쯤 열린 담뱃갑을 내게 건넸다.

"아 괜찮습니다"

"너 여기서 일하면서 술담배 안 하면 못 버틴다"

"왜요?"

"오늘 일 해보면 알 거야"


"민, 얘네는 잡아야겠어"

교배할 때만큼은 개들도 두 평 남짓한 실내 견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탄탄하고 평평한 콘크리트 바닥을 가진 아늑한 견사. 발정기가 온 암컷을 먼저 각 견사에 차례대로 배치한다. 한 견사에 한 마리씩. 이후 수컷을 데려와 암컷이 있는 견사에 집어넣고 문을 닫는다. 문 위편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어 문밖에 있는 사람이 내부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 각 견사에 암컷과 수컷이 짝지어 배치되면 복도의 직원들은 문마다 돌아다니며 그들을 훔쳐봐야 했다. 교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발정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컷을 받아들이지 않는 암컷들이 있다. 암컷의 거부가 지속되고 수컷이 지쳐버리면 사람들이 들어가 암컷을 붙잡아 줘야 했다.

"똑바로 붙잡아야지"

민다와 나는 한 암컷을 양쪽에서 붙잡아 바로 세웠다. 사람의 손길이 닿자 금세 꼬리를 흔드는 암컷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수컷은 암컷에게 올라탔고 암컷은 잠시 반항하다 방법이 없음을 알아차리곤 가만히 선 채로 숨을 뿜어댔다. 내 머릿속의 한 부분이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쇳소리가 섞인 듯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암컷이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갈색의 옅은 눈동자와 잠시간 마주하게 되었다. 손에 힘이 빠진다. 구역질이 나기 시작한다.

"민! 잘 잡아!"

내 힘이 빠지는 것을 알아차린 암컷이 또다시 발버둥 치기 시작했고 민다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

이후 세 마리의 암컷을 더 붙잡았다. 처음 붙잡은 암컷보다 훨씬 더 거세게 반항하는 개도 있었다. 온몸에 개털이 비벼지고 개의 체액이 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물이 묻었다.

이후 교배가 끝난 견사에서 수컷을 빼내어 뜬장으로 옮겼다. 수컷들은 목줄을 걸려는 내게 완강히 저항했고 문을 연 순간 수컷은 물론 암컷까지 튀어 나가려 애썼다. 나와 민다 두 명이 달라붙어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우리는 복도에 있는 등유 난로 앞에 섰다. 몸에 묻은 썩은 내가 코를 찔러왔다. 그 불쾌하고 끈적한 냄새는 몇 번을 씻어내도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지독했다. 양옆으로 견사 문이 늘어서 있는 복도를 개 짖는 소리가 가득 메운다.

그때 복도 끝의 거대한 양철 문이 열리며 차가운 공기가 훅 불어왔다.

"여기 다 끝났어?"

" 수컷은 다 뺐고 암컷들은 아직이요"

"그럼 애들 돌리는 데부터 가자.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차를 두 대 써야겠어"


우리는 번식장 부지를 벗어나 인근의 한갓진 공터로 향했다. 널찍한 공터를 한 트럭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트럭의 뒤편에 개가 한 마리 묶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개는 지쳐버린 듯 트럭의 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했고 거의 끌려다니다시피 트럭을 따라가고 있었다.

"속도 느리게!"

박 차장이 두 손을 입 앞에 모아 트럭을 향해 소리쳤다. 대표는 창밖으로 고개를 죽 빼고 박 차장을 한번 쳐다본 뒤 차량을 멈췄다.

"꽤 돌았어. 한번 확인해 봐요"

"어, 하네 하네 다행이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개 번식업자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발정해야 할 때를 놓친 암컷 개가 있으면 차량 뒤에 묶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뛰게 만든다. 개가 죽음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무리하게 운동을 시키면 죽기 전에 종족을 번식해야 한다는 본능에 의해 발정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기력을 쏟아낸 듯 바닥에 널브러진 털 뭉치의 혓바닥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녀석의 숨소리에는 거친 쇳소리가 섞여 들어가 있다. 두통이 오고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민다, 선욱, 이거 교배장으로"

옆에 놓인 다섯 개의 켄넬이 연신 덜커덩거린다.


"야 이것 좀 먹어봐라."

저녁을 먹지 못한 내가 걱정되었는지 박 차장이 홀로 시내까지 나가 양념치킨을 사 왔다.

"와, 치킨!"

민다가 화장실에서 젖은 머리를 털며 나왔다.

"어휴 아들래미 손 많이 간다"

박 차장이 내려놓은 치킨 봉지에서 달큰하고 고소한 튀김 냄새가 새어 나온다. 그는 봉지를 내려놓은 뒤 냉장고에서 소주를 두 병 꺼낸다.

"오늘 같은 날은 마셔줘야 하니까"

"저도 먹어요"

"이야 민다! 오케이 좋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상차림을 도왔다.

모두가 지친 하루였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박 차장은 그 지친 몸을 이끌고 나를 위해 직접 시내까지 나가 치킨을 사 왔다. 속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먹지 않겠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 차장이 선심 쓰듯 건네준 닭 다리를 보란 듯이 한입 깨물었다.

"오늘 좀 무리하긴 했지만 보통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교배시키진 않아. 대표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이해해라"

박 차장은 나를 어르고 달래기에 바빴다. 아들뻘인 나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겨우 구한 신입이 빠져버리면 제 몫의 일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박 차장은 민다와 술잔을 부딪친 뒤 한입에 털어 넣고 “크”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저 양반이 딸내미가 좀 아파. 얼마 전부터 무슨 수술 이야기를 하더니만 그거 돈 구하느라 이번에 무리를 좀 했는갑다. 다섯 마리만 임신해도 새끼가 오십 두는 더 나올 테니까"

"민, 대표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다 사정이 있는 거지"

"이야 한국말 잘하는 거 봐라? 민다 너도 한국 사람 다 됐다. 어?"

민다는 수줍게 미소 지었고 박 차장은 으하하 호탕한 웃음을 뱉었다. 나는 입을 양쪽으로 죽 당긴 채 아무 말 없이 치킨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주머니 속에서 부르르 진동이 울린다. 손에 묻은 양념을 휴지로 대충 훔쳐낸 뒤 핸드폰을 꺼낸다.

'엄마'

부르르 부르르 핸드폰은 쉴 새 없이 나를 부른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어? 그래. 야! 잘 생각했어. 내가 얘기했지? 이 일은 술로 몸이랑 마음 싹 씻어내면서 해야 오래 할 수 있는 거야"

비누 거품을 잔뜩 내어 아무리 문질러도 사라지지 않던 썩은 내가 독한 알코올 냄새에 흐릿해진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숙소 바깥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눈을 떴다. 큰일을 하고 난 다음 날은 늦게까지 자도 되니 편하게 일어나라던 박 차장의 목소리였다. 무겁고 진득한 숙취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다는 문가에 선 채 바깥의 목소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쉿"

내가 인사를 건네자 민다는 검지손가락을 코끝에 가져다 댔다.

"그러게 미안하게 됐다잖아"

"어제 그 개고생한 건 뭐고?"

"원래 임신견들이 있어야 가격이 더 올라가는 거야. 자네들 퇴직금도 챙겨준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미리 알려줬어야 할 거 아냐! 우리도 다른 일을 구하려면 시간이 있어야지. 하루아침에 이렇게 통보하는 게 무슨 경우야?"

"이 사람아, 몇 번을 말해야 돼? 퇴직금 받고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일자리 찾아보면 되잖아. 그리고 막말로, 한국에 번식장이 여기 하나인 것도 아니잖아!"

대표도 박 차장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민다의 얼굴에는 새까만 그늘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애들은 어떻게 할 건데?"

"선욱 씨야 여기 말고도 일할 곳 많아! 젊은 나이인데 뭘 못해? 다 젊을 때 실패도 겪어보고 하는 거지 뭘"

"민다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표가 침묵을 지킨 것인지 아니면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한 것인지 방 안의 사람들은 알 길이 없었다.


"차장님이 미안한 거 아니에요"

"아니야, 내 잘못이야. 미안하다. 내가 빨리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대표와 대화를 나눈 뒤 씩씩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온 박 차장은 우리에게 잠시 바깥 공기를 쐬자고 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고 또 걷다가 개들이 매섭게 짖어대는 뜬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박 차장은 줄담배를 피워댔고 민다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사실 막막하다. 자식이고 마누라고 이제 무슨 돈으로 먹여 살리냐. 평생 해온 짓이 개 잡는 건데. 대표 말로는 어차피 이제 번식장 운영하기 어려울 거란다. 규제인지 뭔지 새로 생길 거라고. 그래서 자기도 넘긴 거래. 그, 동물 보호 단체인지 뭔지에다가"

"동물 보호 단체가 식육견은 왜 사는 거래요?"

박 차장 말에 의하면 동물보호단체는 번식장에 있는 모든 개를 구입하여 소유권을 넘겨받는 방식으로 합법적 구조를 진행한다고 했다. 그는 ‘합법적 구조’를 발음하며 잔뜩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민다가 말했다.

"뭐가"

"도축 전에 일이 끝나서요. 직업은 없어져도. 개들 살릴 수는 있어요"

박 차장은 아무 말 없이 하늘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오후에 다른 번식장 가보기로 했다. 너희들도 같이 갈래?"

박 차장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눈을 데그르 굴린 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야, 선욱이 너는 다른 일 해라. 젊은 놈이 이런 일 해봐야…"

박 차장은 말을 잇다 말고 입술을 씰룩였다.

"나나 대표처럼 되는 거야"

"저도 안 가요"

민다도 답을 내놓았다.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잠깐 사이 익숙해졌던 역한 뜬장 냄새가 바람을 타고 우리들 사이로 밀려 들어온다.


박 차장은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새로 찾은 번식장에 그날로 눌러앉았거나 그곳의 사람들과 진탕 술을 마신 것이리라. 민다의 공기는 내가 말을 걸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어두웠다. 어딘가로 전화를 몇 차례 걸었고 몇 번의 실패 끝에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한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스리랑카의 가족과 통화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말투는 거칠어졌다가 다정해졌다가를 오갔다.

민다가 통화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순간 아차 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엄마와 할머니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들이 주루룩 화면을 밝힌다.

"너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일이 좀 있어서… 왜요."

"너는 참 하여간… 너희 할머니가 멀쩡히 걷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단다. 그거 병원비 한두 푼 아닐 텐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멀리서부터 개들이 맹렬히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밤이 늦었음에도 열심히 목소리를 낸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뜬장 위에서 위태롭게 다리를 휘청거려 가며 온 힘을 다해 짖어대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듯. 이렇게 살아있다고 말하는 듯.

"나 좀 힘드니까 내일 얘기해요"

"아니 당장 병원비가 필요한데 어떻게 내일 얘기해"

"엄마"

"왜?"

"나도 힘들어"

아빠의 장례식 이후 온전히 아빠만을 떠올렸던 적이 있던가. 염습을 하고 입관을 하고 발인을 하였음에도 나는 아빠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아빠와 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가장이라는 자리로 떠밀리고 말았다. 허겁지겁 감정을 정리해야 했던 건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준비도 마치지 못한 채 뜬장 위에 들어서고 말았다. 얇은 줄이 발바닥을 파고들고 중심조차 잡기 어려운 뜬장 위로.

"그래, 미안하다"

엄마는 조용히 사과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내가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어서, 발이 아파서,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내가 역겨워서, 귓가를 떠나지 않는 개 짖는 소리가 너무나 시끄러워서 눈물이 새어 나온다.

그날 밤 나와 민다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등을 마주하고 잠을 청했다. 나는 꽤 늦은 시간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민다의 숨소리도 거칠고 축축하게 방안을 채웠다. 우리는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박 차장과 대표는 번식장에 오지 않았다. 나와 민다는 오전 내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멍하니 사각형 화면이 점멸하는 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10시쯤 되었을까, 슬슬 배가 고파 무언가 먹지 않겠냐며 민다에게 말을 꺼내는 순간.

"계십니까"

누군가 가볍게 숙소 문을 통통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부스스 엉겨 붙은 머리를 손으로 넘기고 눌러가며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아… 직원분들이신가요?"

나는 고개를 돌려 민다를 쳐다보았다. 민다도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문밖의 남성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동물보호단체에서 왔고요. 내일 정식 절차 진행하기 전에 사전 답사 하러 왔습니다"

내일이구나. 빠르기도 하지. 나는 난처한 얼굴로 민다를 쳐다봤다. 민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덤덤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두 분은 언제쯤 나가실 건가요? 아시겠지만, 대표님이 내일 오전까지는 모든 인원이 나가줄 거라고 약속하셔서…"

남성의 말에 등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민다의 표정도 급격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저희는 대표님에게 들은 말이 없어서요"

"아… 그럼, 연락을 한번 해보시겠어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대표도, 박 차장도. 내가 다섯번째로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자 민다는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로 동물보호단체에서 나왔다는 남성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퇴직금 받아야 해서 못 나가요. 대표님 지금 어디에 있어요?"

민다가 남성의 팔을 붙잡자, 그는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섰다.

"그건 저희가 모르고요. 계약은 며칠 전에 모두 끝난 상황입니다"

민다의 팔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줄이 끊겨버린 시계추처럼 미약하게 앞뒤로 두어 번 흔들리더니 움직임을 멈춘다.

“민다…”

민다는 땅에 시선을 처박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괜찮아 민, 걱정하지 마. 여기 사장 물건 많아. 이거 가지러 돌아올 수밖에 없어. 여기 집도 있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

“아니요…”

동물보호단체 직원이 민다의 말을 비집고 들어왔다.

“죄송한데, 이미 계약은 끝났습니다. 계약 내용은 강아지들, 미래 농장 부지, 그리고 부지 내 모든 재산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미래 농장. 미래라니. 이곳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일을 해왔다. ‘개 번식장’ 정도의 건조한 이름으로 불릴 줄 알았던 곳은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저기요. 이분이 사정이 있어요. 갈 곳도 없고요. 퇴직금 받을 때까지만 여기에 머물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는 안 됩니다. 내일 바로 퇴거해 주셔야 해요”

직원은 완강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시네요. 저희도 대표한테 당한 거라고요. 사람이 먼저 아니에요? 막말로 저희가 여기서 버티고 안 나가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직원은 한숨을 내뱉으며 허리춤에 오른손을 올렸다. 그는 내 알량한 협박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어본다는 듯, 올게 왔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해보세요"

"네?"

"해보시라고. 명도소송 청구하고 강제집행까지 진행하겠습니다. 버틸 수 있으면 버텨보세요. 그리고 여기 이분"

동물 보호 단체 직원은 성의 없이 손을 홱 던지듯 들어 올렸다 내리며 손가락으로 민다를 가리켰다. 그의 손이 민다의 옷자락을 때리듯 스친다. 직원은 아주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을 이었다.

"비자는 있으시고?"

민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간다. 여기까지구나. 이 사람은 처음부터 우리가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온몸의 힘을 짜내어 쏟아낸 나의 목소리가 수그러들고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을 듯 비틀거리자, 직원은 이후의 절차를 형식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민다도 나도 그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개 짖는 소리가 열린 문틈 사이로 썩은 내를 불어넣는다.


"민다 씨는 스리랑카로 돌아가실 건가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민다는 아주 느린 속도로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 너는?"

"저는… 집으로 돌아가야죠"

나에겐 돌아갈 수 있으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이 있다. 민다에게는 돌아가고 싶으나 돌아갈 수 없는 집이 있다.

“나는 잠깐 걷다 올게”

해가 지고 달이 세상을 푸르게 식히면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몸속을 빠져나간다. 불 꺼진 방 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다. 나는 전화를 집어 들고 숙소 문을 열었다. 2층 숙소로 올라오는 계단 난간에 기대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엄마”

“응”

목에 걸린 말을 뱉어내기 위해 잔뜩 힘을 주어 목소리를 낸다.

"나 집에 가려고. 내일 올라갈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만이 침묵의 사이사이로 젖어 들어갈 뿐이었다.

"그래 선욱아 고생 많았다"

엄마가 어떤 대답을 할까 잔뜩 긴장했던 나는 뜻밖의 말이 들려오자 눈 밑으로부터 뜨끈한 이물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네 아빠가"

엄마도 나와 같은 듯 말을 멈추고 호흡을 정리했다.

"네 아빠도 너 일하는 거 봤으면 참 기특해했을 거야"

나는 이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빠의 입에 쌀을 넣을 때도 아빠가 담긴 따끈한 항아리를 끌어안을 때도 이토록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일 몇 시쯤 올 건데?"

나는 잠시 대답을 미룬 채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에 몇 가닥 실려 오는 냄새를 콧속에 넣으며 미래 농장의 경관을 한눈에 담았다.

그때 숙소 앞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들개인가? 아니, 뜬장에서 빠져나온 건가? 하지만 어떻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앞서 와 있던 회색 털의 개에게 갈색 털을 가진 개가 다가와 겅중겅중 뛰어논다. 나는 즉시 뜬장들이 올라앉아 있는 언덕으로 시선을 옮긴다. 어두운 밤이었으나 개들을 감시하기 위해 켜놓은 조명 사이로 검은 점들이 연신 흘러나온다. 뜬장 안에 평생을 갇혀있던 개들이 죽을힘을 다해 언덕을 뛰어 내려오고 있다.

어둠에 가라앉은 뜬장들을 누렇게 밝히고 있는 조명 아래 한 남자가 서 있다. 개들은 그 남자 주위를 폴짝 뛰어오르며 돌기도 하고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 미래 농장을 벗어나기도 한다. 남자는 개들이 달려 나가는 미래 농장의 정문을 향해 서 있다. 나는 손을 힘껏 들어 올려 남자를 향해 마구 흔들었다. 내 인사가 그 남자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온몸의 힘을 짜내서. 잠시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도 팔을 들어 올려 내게 흔들더니 터벅터벅 개들이 향하는 정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농장 안 모든 것들이 미래의 너머로 향한다.

"선욱아, 안 들리니? 여보세요?"

"어 엄마"

"내일 언제쯤 오는데?"

"미안해요. 이제 보니 며칠 더 걸릴 것 같아"

"일 계속해 보려고?"

"아니요. 일은 그만뒀어요"

"그러면 왜?"

"아빠랑 인사 좀 하려고"

엄마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말을 고르는듯했다.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고 대중교통을 검색한다. 허공을 돌아다니던 개 짖는 소리가 점점 묽어진다. 농장에 남아있는 개는 더 이상 없다. 대표도, 박 차장도, 민다도, 그리고 나 또한 곧. 오랜 시간이 지나 농장에 가득 가라앉았던 어둠과 냄새가 사라지면 모두가 이곳에 머물렀음을 잊게 될까. 달빛이 뜬장을 지나 바닥 가득 격자의 구획을 그린다. 은빛 철망을 디딘 발바닥이 시리게 아려오고 철망의 문이 열려 꺼떡꺼떡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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