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빌라촌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불을 밝힌
오리가 있다
오리가 잘하는 것은 새벽 네 시
홀로 불을 밝히는 것인데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물으면
걷고 수영하고 나는 것이라 하겠다
참으로 다재다능하다 감탄하면
괜스레 목을 긁어 울어대며 항의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걸을 수야 있으나 아장거릴 뿐이고
수영할 수야 있으나 버둥거릴 뿐이고
날 수야 있으나 퍼덕거릴 뿐이고
가진 모든 것이 반푼이야
네게 솔직히 밝히진 않겠지만
오리는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난다
오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걸 잘한다
오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려 일찍 자는 걸 잘한다
그게 다야
그게 다
마침표로 끝나면 낙담이고 물음표로 끝나면 실망인데
오리는 무엇으로 끝날까
검정만이 가득한 밤에 일어나
걷고 수영하고 나는
모든 이들이 잠든 땅을
넓적한 물갈퀴로 밟고 서 있는
오리의
이유
존재
불 꺼진 빌라촌
불 밝힌 골방에서 바라본
또 다른 불 켜진 방에
그곳엔 무엇이 일어나 있나
무엇이 일어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