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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Oct 13. 2024

반짝임은 너와 나를 가른다

비린내 나는 바닷가 마을

구축 빌라 단지에도 아침은 온다

창문을 열어 어둠을 어둠으로 갈면

새벽에 깔려있던 아침이 푸르스름하게 떠오른다


해가 뜨고 나면

창밖에선 쓰레기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가 정녕 쓰레기 때문인지 보았느냐 묻는다면

쓰레기가 되어본 적 없느냐 되묻는다


구축 빌라의 창문에는 도둑이 제 발 저릴 정도로 굳센 창살이 달려있다

양손으로 창살을 붙잡고

단지 너머 반짝이는 여름을 바라보면

양손에는 검은 때가 묻고

방범의 방향은 도대체 어디일까

모르겠다


언젠가 네게 보통의 선은 직선이 아니냐며 물은 적 있다

그러자 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악을 갖고 있다 했다

직선은커녕 곡선도 되지 못한

펜을 떨어트려 실수로 흘린 선 같은

의도치 않은 내 존재는 네 불행을 바라기로 했다


네 병을 앓는다

네가 앓는 병이 아닌 네 병을 내가 앓는다

정오에도 그늘이 가득한 빌라 단지 그 너머에는

신장개업한 점포가 만국기를 휘날리고 있다

언제적 만국기야 대체

너였다면 그랬겠지


나라 하나하나마다 달린 은빛 술이 발광하며 빛에 취해 춤을 춘다

낮이라는 금기에 반한 오징어 떼 같아

만국을 가 본 사람은 너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반짝이는 것들은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 걸까


나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요지부동 암석도 종횡무진 쪽배도 아니기에

네가 파도로, 바람으로 나를 밀어내면

그대로 밀리고 흘러 떠나가 버린다고


한번 기억된 이는 잊히지 않기 위해 울고

알려졌던 이는 알아봐 줄 이를 찾아 나서는데

눈에 띈 적조차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세상에

남을 수 있을까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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