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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처럼 안 되는 것들

<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17화

by 이봄



어쩌다 같이 카페를 하게 됐고 오픈을 앞둔 9월이 다가왔다. 팬데믹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듦과 동시에 그래도 같이 카페 준비한답시고 몇 달은 여기에 신경을 정신없이 쏟았던 덕에 다른 스트레스들은 잠시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전국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카페는 오픈하자마자 좋은 성과를 냈다. 10년 가까이 이곳저곳에서 알바를 많이 해왔어서 그런지 새로운 곳이어도 낯설지 않게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오픈 후 두 달 동은 ‘됐다’ 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던 찰나. 11월에 들어서자마자 정부로부터 더 강력한 영업제한이 떨어졌다.


‘자영업자 홀 영업 금지’



우리 카페는 손님이 이용할 수 있는 자리가 10~11 테이블 정도 됐었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아니고서야 홀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카페나 혹은 식당에 손님을 앉힐 수 없다는 건 자영업자들에게 너무나 큰 치명타였다. 영업 제한이 더 강해질수록 사람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도로며 골목이며 배달 오토바이만 우후죽순 늘어갔다. 밖에 나가도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모두가 자연스레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바로 저번달까지만 해도 북적했던 카페는 빈 공간으로 가득해 음악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했고 손님이 이용해야 할 테이블은 먼지만 앉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똑같이 카페는 열었다. 오픈하고 몇 시간 뒤 오후 3시쯤은 돼야 첫 손님이 들어왔고 오는 손님들 마다 진짜 홀 이용 못하냐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확인사살을 하고 갔다. 포스기에 찍힌 반의 반 토박이 나버린 매출을 보면 한숨만 푹푹 나왔다. 너무 황당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갈수록 더 하면 더 했지 나아지지 않았다. 홀 영업이 금지된 마당에 매출에 반전을 일으킬 만한 마땅한 대책도 없었고 그렇다고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 책도 읽어보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영화 한 편을 봐도 아무 무리가 없었다. 카페에서 온갖 취미 생활이 가능한 정도였다.




이미 정신적으로 온갖 스트레스를 안고 살던 때라 이 정도는 무리 없이 넘기겠거니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새로운 상황에 놓여지니 그냥 기존 스트레스 위에 또 다른 스트레스가 얹어져 더 증폭되는 듯했다. 몇 날 며칠을 텅 빈 카페에 있다가 퇴근하는 패턴으로 살았다. 똑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카페로 출근해 매일 새로운 빵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오픈을 했고 밤에는 그대로 남아버린 빵을 모조리 버리고 퇴근했다. 마치 옷 가게 때처럼 나가는 돈만 있고 들어오는 돈은 없는 상황. 홀 영업 금지라고 해서 아예 카페 문까지 닫아버리고 장사를 중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언제 나아질지 모르는 성과 없는 날들을 반복하면서 살았고 그렇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았다.





그런 상황에 우린 이곳에서 또 다른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말했다시피 이 카페는 단순히 카페를 위한 카페가 아니라 엄연히 가족회사였고 아버님의 비전과 맞물려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 이 카페에서 같이 일하자고 의견이 모아진 데에는 나의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 가장 컸고 그걸 극복하자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버님의 비전에, 가족회사에 함께 하려는 마음에서 카페를 같이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답답하게 얽히고설킨 이 모든 문제들을 가족 모두에게 일일이 공유할 수는 없으니 그냥 ‘같이 카페를 할 것이다’라고만 얘기했었다. 그래서 이 아주 복잡하고도 심난한 뒷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아버님은 그저, '가족사업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셨다. 이 가족회사를 위해, 비전을 위해 드디어 함께 나아간다고만 여기셨다. 그리하여 역시나 아버님은 함께 하는 모습에 마냥 기분이 좋으셨고 심지어는 카페 오픈 후 첫 가족회의 때는 직접 노트북에 향후 가족 비전에 대한 PPT까지 작성해 발표하셨다.





머리를 한 대 댕~ 맞은 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상대방 속도 모르고 마냥 신나는 듯 보이는 이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해, 내 속마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이지만, 나 포함 각 가족들을 사업 파트별로 배치해 아주 디테일하게 만들어 오신 아버님의 PPT를 본 순간 그냥 답답했다. 발표를 마치시고 어떻게 생각하냐며 한 사람 씩 의견을 물으셨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마자 나는 별생각 없다고 대답해 버렸다. 마침 그때도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다행이다. 어찌어찌 그날 가족모임은 마무리가 됐고 며칠 후 아버님께서 혼자 카페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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