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18화
영업제한이 풀려도 분위기는 여전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사소한 일로 남편과 자주 부딪혔고 남편은 안쪽 사무실에, 나는 카페 홀에서 각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길었다. 어쩌면 종일 같이 붙어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했던 그때 남편의 판단을 후회하던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고요한데 음악은 열심히 흐르는 이 아이러니한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답답함에 몸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나아지는 건 없이 점점 반복되는 일들에 사소한 것에도 신경질이 났고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게 끔찍했다. 스트레스가 점점 극에 달해 급기야는 텅 빈 카페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가 증폭된 데에는 오로지 손님이 끊긴 카페 때문만이 아니었다.
카페 오픈 후 처음 가졌던 가족모임이 지나고 며칠 뒤 아버님께서 혼자 카페로 오셨다. 먼저 남편과 30분가량 1:1로 대화를 하시곤 곧이어 나를 부르셨다. 다른 건 다 기억이 안 난다. 카페를 열지 않는 일요일에 내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고 나는 단박에 싫다고 했다. 아버님 비전 그런 거 난 관심도 없다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더 말을 하겠다 하면 정말 온갖 많은 말들을 쏟아낼 수 있을 정도로 목구멍까지 한 가득 차올랐지만 구구절절하기는 더 싫었고 빨리 이 1:1 대화를 벗어나고 싶어 그냥 모든 걸 저 한마디에 꾹꾹 담아 던져버렸다.
카페는 운영하지 않았지만 공간을 필요로 하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이 매주 일요일이면 그곳을 쓰기 위해 나오셨고 카페 오픈 후 초반에는 나도 몇 번 같이 나갔다가 나중엔 남편 혼자서만 나갔었다. 이 카페도 결국 가족회사니까 아버님은 나도 같이 뭐라도 했으면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카페 문을 여는 것으로 함께 참여하길 바라셨던 거다.
그냥 모든 게 지겨웠다. 그때는 다 필요 없고 카페 문 여는 게 뭐라고 이렇게 또 1:1로 앉혀놓기까지 해서 길게 이야기할 일인가 싶었고 굳이 문을 왜 나한테 열라고 하는 건지 다 듣기 싫었다. 마치 아버님께서 갖고 계신 비전을 놓고 아버님 혼자 그리고 있는 퍼즐에 어떻게든 맞춰 끼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오래전부터 '함께, 같이'를 꾸준히 강조하시면서 늘 그런 뉘앙스로 말씀하시곤 했다. 그저 답답만 했고 짜증이 나서 아버님께 좋은 투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계에 다 다른 듯 대화가 끝나자마자 남편에게 가서 말했다.
나는 도저히 못 하겠으니 그 가족회사니 뭐니 같이 해줄 아버님 맘에 들만한 다른 며느리 찾으라고.
그러고 며칠 뒤엔 어머님께로부터 연락이 왔다. 밥 먹고 이야기 좀 하자고. 왜 연락을 주셨는지 대충 감이 왔다. 역시나 그날 나의 대답에 아버님은 크게 실망하셨는지 이번엔 어머님이 3시간이 넘도록 김가네에 대해, 아버님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말미에는 아버님이 많이 서운해하니 사과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이걸 위해 3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역시나 어머님도 내 마음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으셨다. 나는 고민 없이 바로 사과할 맘 없다고 대답했다. 올라오는 답답함을 주먹으로 내려쳐가며 꾸역꾸역 밀어 넣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모르겠다. 어머님은 결혼 후 며느리인 나에게만은 시종일관 한결같이 차분하셨고 조심스러우셨다. 그리고 이날도 여전히 그러셨지만 나는 전혀 차분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남편은 아버님 댁으로 가 한바탕 하고 왔다고 했다. 조카도 있는 자리에서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버님의 혹은 아빠의 모든 말들, 나 때문에 빚은 갈등들, 그간 앓고 있던 온갖 정신적 스트레스들을 전부 토해냈다. 그리고 그 뒤로 아버님과 1:1로 대화하는 일은 없었다.
카페에서 같이 일하는 동안에도 정말 많은 갈등과 싸움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 어느 날은 오픈 준비를 마치자마자 꽁꽁 감춰놨던 감정들이 또 폭발해 카페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싸우다 또다시 이혼을 말했고 그날 남편은 진심으로 그러고 싶냐며 무거운 마음으로 되물었다. 정작 뱉어버린 난 남편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몇 분 동안 울기만 했다. 진짜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감당 안 되는 답답함에 더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자꾸 튀어나와 버렸고 우리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계속 원점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카페 문은 끝내 열지 못한 채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양쪽 다 지인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고 우리 둘은 어쩌면 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