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19화
우울증이었는지,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을 때 너무 놀라 얼굴을 더듬거릴 정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한없이 쳐진 입고리에 감정이라곤 조금도 없는 듯 눈빛은 시커멓고 영혼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이 어둑어둑했다. 툭 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톡 하고 터져버려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랬다. 자살 충동이 매일같이 있었으니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침대 끝자락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다가 난데없이 거울을 바닥에 내려쳐 깨진 조각으로 손목을 찍어버리고 싶은 충동도 뜬금없이 일어나곤 했었다. 그 시기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 진지하게 고민했고 적당한 곳을 찾으면 남편도 같이 다니면서 부부상담도 받아보자고 했었다.
감기에 걸리면 당연히 병원에 가듯 누구든 정신적으로도 감기 같은 게 찾아올 수도 있는 거라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왜인지 ‘정신과를 가본다’ 라는 것은 나 스스로 자신을 ‘나약한 사람’ 이라고 점을 찍어버리는 느낌이었고 그런 시선으로 비칠 것 같아 선뜻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마음이, 정신이 많이 지친 상태는 분명했지만 스스로 부정했었다.
겨우 이 정도로 정신과를 찾아도 괜찮은 걸까 하며 알아보긴 했지만 비용마저 어마어마했다. 뭐지? 정신이 아파 상담 좀 받고 싶다는데 비용까지 이래버리면 안 그래도 힘든 사람 더 힘들지 않을까? 뭐든 참 내 마음과 같지 않구나.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다니게 되면 정신이 더 아파올 것 같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래. 안 그래도 나가는 돈만 있는 마당에 무슨 정신과냐. 그럴 여유 없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정신을 갖고 시댁모임을 나가는 건 나에겐 거의 고문 같은 시간들이었다. 이대론 정말 안 되겠다 싶었을 땐 남편에게 나 당분간 시댁모임 못 나가겠다 선언하기도 했었다. 생일자가 있는 달이면 모임을 가졌는데 그게 거의 매 달이었고 한 달은 또 왜 이렇게 빠른지 늘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로 자리만 지키자는 생각으로 나갔었다. 매번 비교하고 막말하는 시아버지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시누이까지도 미워 보였고 자진해서 입을 열어 대화를 시도한다거나 영혼 없는 반응이라도 한다거나 웃는다거나 아무것도, 조금도 노력하고 싶지 않았고 말소리를 듣는 것도 눈을 마주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그 어느 하나 내게 즐거움이란 없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속이 안 좋았다.
시댁 모임 날이면 그날은 곧 남편과 한바탕 하는 날이었다. 또 비교하시는 거 들었냐며, 그 말 들었냐며. 물어봐도 남편은 모를 때가 많았고 제발 그런 것 좀 하나하나 신경 쓰지 말라며 되려 날 다그쳤다. 그럼 나는 또 남편의 그런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고 그렇게 싸움이 시작됐다.
내가 아버님한테 어떻게 말하는지는 귀 담아 들으면서 왜 아버님이 나한테 하는 말들은 하나도 기억을 못 하는지 그리고 자기 아빠한테 이 갈등을 놓고 몇 마디 하는 거에 대해서는 뭘 그렇게 몇 날 며칠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건지. 그저 답답하고 서운하기만 했고 그땐 모든 말들을 도저히 흘려들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역시 남편도 똑같다며 됐다고 다 필요 없다고 그냥 이번 생엔 내 편은 없는 거구나 생각하고 사는 게 오히려 속편했다. 그땐 관계에 있어서 지혜로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늘 이런 식이니 남편도 시댁모임이 즐겁지 않았고 가족들이랑 연을 끊어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고 했다.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곳은 남편이었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내 편이길 바랐었다. 하다 못해 남편의 가족보다도, 그리고 0촌이라는 아내인 내가 무조건 1순위여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했지만 남편의 저런 고민을 들었을 땐 어쩌다 그렇게 까지 된 건가 싶었다. 그때 남편은 꽤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가족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지만 결혼은 내가 선택을 한 거고 똑같은 문제로 몇 년 동안 똑같이 부딪힌다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 하나는 남편이 선택하지 않은 가족이었다.
정신이 멍했다. 머릿속이 정말 많이 복잡했다. 내가 한 가족을 망쳐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죄책감이 끝없이 밀려왔고 모든 게 너무 꼬여버린 것 같았다. 도대체 이 상황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남편에게는 정말 많이 미안했다. 나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안 겪어도 될 일이었을 텐데, 전부 다 내 탓으로 여겼고 어쩌면 정말로 남편과 내가 헤어지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이성적으로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