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고등학교는 졸업을 했고 대학생이 됐다. 그저그런 대학이라 캠퍼스 로망같은 건 없었다. 그냥 사복입고 다닐 생각에 설렜다. 고3 때 버릇 그대로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기도 했고 등교 도중에 갑자기 수업보다 영화 한 편을 보는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역시 뼛속까지 예술인. 이 아니고 그냥 공부 하기 싫고 학교 가기 싫은 지멋대로인 20살이었다.
미성년자 딱지 떼자마자 술도 마셨다. 19살 12월 31일 밤 11시,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어른스럽게 꾸미고 친구들을 만나 중앙동으로 향했다. 그때 당시 제일 핫하다는 술집 문앞에서 줄 서있다가 12시 땡 되자마자 당당히 신분증을 확인시켜주고 입장했다.
갓 스무살이 된, 아니 스무살이 된 지 30분도 안 된 여자애들 8명이서 소주며 맥주며 맛있어 보이는 안주들을 잔뜩 시켜놓고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화려한 술집 분위기에 홀라당 취해 미친듯이 마셔댔고 나도 홀라당 취해버렸다.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취하면 우는구나. 그때 그 술집이 얼마나 핫했던지 거기서 교회 친구까지 만났다. 20살이 된 나는 그냥 개판이었다.
21살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이유는 돈때문이었다. 대학생활에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 밥값에 교통비에 전공책, 교양책, 건축 수업에 필요한 용품들 등 또 친구들이랑 있다보면 그 외로 드는 돈들. 처음엔 엄마 아빠가 월 30만원씩 용돈도 줬었다. 이정도면 충분 할 줄 알았는데 항상 부족해서 더 달라고 해야했다. 그때 엄마가 많이 버거워했다.
더이상은 힘들다는 엄마의 말에 주말 알바를 시작했고 가끔은 수업 마치고 평일 저녁에도 나가서 일했다. 호프집에서 6~7시간 내내 맥주 나르고 청소하고 밤 12시 넘어서 퇴근을 하다보니 과제는 점점 더 산더미가 되고 학교 가서는 내내 졸았다. 그래도 1학년 때는 수업에 재미를 조금 붙였어서 A, A+도 자주 받았다.
2학년이 되고는 학교보다 알바를 더 열심히 다녔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고 그러다 점점 아예 안 가는 날이 잦아졌다. 학점보다 돈이 없는게 더 무서웠나보다. 이도저도 안 되는 것 같아 이럴바에 차라리 휴학을 하고 알바해서 돈 많이 모아놓고 복학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휴학하고 시간이 널널해져 호프집 알바 근무 시간을 더 늘렸다. 그리고 주말엔 술마시러 다녔다.
돈을 많이 모아놓기는 커녕 돈을 더 버니까 그만큼 더 쓰고 더 놀았다. 불금 불토는 무조건 술마시는 날이었다. 밤 11시든 12시든 알바 끝나면 집이 아닌 중앙동으로 퇴근했다. 그놈의 중앙동.
밤새 친구들이랑 술퍼마시며 놀고 아침에 해 뜨면 그제서야 주섬주섬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엄마 아빠 몰래 들어가야해서 첫차 시간은 꼬박꼬박 칼같이 지켰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누가봐도 밤새 놀고 그제서야 집에 기어들어가는 술에 쩔은 21살짜리 여자애 하나. 조심조심 집에 들어가 술이 덜 깬 와중에도 꼭 씻고 누웠다. 참 자랑이다.
술보다 쇼핑을 더 중독적으로 했다. 참 잘하는 짓이다. 한번은 택배 10개 정도가 하루 한 날에 몰려서 온 적이 있다. 그날 하필 아빠도 집에 있었고 나는 아빠랑은 어색하니까 내 방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래서 그날 내 택배를 아빠가 다 받았고 10개 째엔 한숨을 크게 쉬며 바닥에 내던졌다. 아빠 혼자 그럴 동안 방에 쳐박혀서 안 나온 나도 참 한심하다. 불효녀도 이런 불효녀가 없겠지. 그래서 아빠가 ‘엄마한테 잘 해’ 를 입에 달고 살았었나보다.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난 여전히 쇼핑에 미쳐있었다. 그래야 친구들 만나는게 더 즐거웠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알바해서 버는 족족 옷을 사고 술을 마시고 돈을 그냥 생각없이 펑펑 쓰는 맛에 살았다. 내가 벌어서 내가 쓰겠다는데 엄마 아빠도 더 편한 거 아닌가? 이게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다. 6살 때부터 잘만 다니던 교회도 그 때는 아예 안 나갔고 쌍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20대 초반의 나는 정말 정말 개판이었다.
하다하다 가출까지 했었다. 알바하던 호프집 사장님이랑 대판 싸우고 돈 안 주겠다 협박하는 사장님한테 단단히 열이 받은 나는 엉뚱한데에 불똥이 튀었다. 이게 다 돈 없는 우리 집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라며 나 찾지 말라는 분노의 쪽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새벽에 집을 나와 휴대폰도 꺼 놓은 채 친구집에서 4일간 지냈다. 그와중에 배는 고파서 새벽에 친구랑 롯데리아 가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그때 통장 잔고에 12만원 남짓 있었던 것 같다. 밤새 친구랑 호프집 사장님 욕을 하다가 잤다. 다음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휴대폰을 켜봤다. 엄마한테서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수두룩 와 있었다. 답장은 하나도 안 하고 다시 휴대폰을 껐다. 친구집에서 밥먹고 씻고 친구 잠옷을 입고 그렇게 4일간 집 밖에서 살았었다.
2013년 4월 22살에 대학가 어느 빵집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주 5일 9시간 정규직 근무였고 월 150을 벌며 일할 수 있었다. 몇 개월 뒤 160만 원, 170만 원, 그러다 180만 원까지 벌었었다. 알바로 벌었던 것보다 2배는 더 넘게 벌게 되니 내 맘대로 쓸 돈, 모으는 돈 이렇게 나눠도 남았고 심지어 집에 좀 보태기도 했었다. 돈 쓰는 기계에서 돈 좀 보태주는 사람으로 발전했으니 엄마 아빠도 조금은 편안해 보였고 학교는 생각도 안 났다.
일하는 환경도 너무 좋았다. 호프집에서처럼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할 일도 없고 하루종일 빵 향기 나는 곳에서 일하다가 퇴근 때는 빵도 잔뜩 챙겨주셨다. 게다가 사장님이 일본에서 빵을 공부하셨어서 그랬는지 빵집들 좀 탐방하고 오라며 무려 일본여행까지 보내주셨다. 직원 복지가 어마어마한 미친 빵집이었다. 이대로 쭉 일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