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재혼한 지 얼마 안 된 고3 때, 돌연 자퇴를 결심한 적이 있다. 지금 보면 참 얌전한 것 같다가도 은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방지축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교문에 학주 선생님들 서는 시간 피하려고 등교를 굉장히 이른 시간에 했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버스를 6시에 탔었나. 그런 열정으로 다른 걸 했었다면 뭐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또 드네.
그날도 친구랑 같이 첫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그땐 무슨 심정이었는지 육교를 건넌 뒤 그대로 반대편 정류장으로 가 집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서 잤다. 갑자기 학교에 들어가는 거 자체가 너무 싫었다. 친구랑 우리 집에서 그냥 다 집어치우자는 심정으로 교복 입은 채로 자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담임선생님이었다. 아침에 정류장에서 하필 같은 반 남자애를 만나서 인사까지 나누는 바람에 다 들켜버렸다.
다시 학교로 갔다. 교무실로 불려 갔다. 왜 다시 집으로 갔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유가 없었다. 그냥 학교 가기 싫었는데요? 응. 엉덩이 70대. 나눠서 맞을래, 한 번에 맞을래 하시길래 한 번에 맞겠다고 했고 한큐에 끝냈다. 크. 선생님이 매질을 하시다가 되려 당황하셨는지 ‘어쭈, 맷집 봐라.’ 하며 감탄하셨다. 다행히 맞고 자란 적은 없는데요. 그냥 쓸데없이 자존심만 센 것 같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담임 선생님께 자퇴하고 싶다 이실직고 말씀드렸고 그 말을 듣자마자 담임 선생님은 지체 없이 바로 엄마 아빠를 학교로 소환하셨다. 일하다 갑자기 불려 나와 커플로 공장유니폼을 입고 매우 심란한 얼굴을 하고 왔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엄마 아빠의 표정. 그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반항을 하거나 속을 썩인다거나 엇나간 적이 없다. 말했다시피 나는 버스 하차벨도 못 누르는 매우 소심한 아이였다. 아마 처음으로 딸에게서 들은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 자퇴를 하고 싶냐는 말에 그냥 나도 공장 들어가서 돈 벌고 싶다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버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그 이유였다. 집에 돈이 없는 게 싫었다. 내 말을 듣고는 담임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너 자퇴하면 중졸인 건데 나중에 사회 나갔을 때 그나마 고졸인 게 낫지 중졸은 사람 취급도 안 해준다고. 엄마 아빠 공장유니폼 입고 계신 거 보고 생각 좀 잘해보라며 어떻게 해서든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하고 그 뒤에 열심히 잘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 소동 후에도 집에 돈이 없다는 원망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하루 이틀정도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알바 뛰는 게 유행처럼 있었는데 옷을 사고 싶다거나 친구들이랑 놀러 갈 돈 등 급전이 필요한 10대 고딩들에게는 그만한 일이 없었다. 그때 집으로 빠꾸해 같이 잠이나 퍼질러 잔 친구의 친구가 그 일을 했었고 어찌어찌 물어물어 연결연결해서 친구한테 하루만 같이 일 해보자고 거의 반 강제로 조르고 졸랐었다. 다음날 바로 같이 일 하기로 약속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았다. 번뜩 싸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첫차 타는 친군데 못 일어날리가 없다. 계속 걸었다. 계속 안 받았다. 이상했다. 이 정도면 일부러 안 받는 거라는 생각에 열이 받은 나는 미친 사람처럼 친구에게 40~50통이 넘게 전화를 걸어댔다. 친구는 끝까지 받지 않았고 급기야 나는 내 스스로 손등을 뜯어 피를 냈다.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냥 얘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정도를 넘은 분노가 내 속에서 들끓었다. 집에서, 엄마한테, 친구들한테 나는 한 번도 내 감정을 표출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속에서 나도 모르게 곪아왔던 분노와 원망이 그날 끝까지 내 전화를 받지 않은 친구로 인해 터져 버렸다. 그날 아침에 나는 좁은 방바닥에 겹겹이 깔린 이불속에서 미친 듯이 울었다. 그때 낸 손등에 흉터는 아직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