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매우 소심한 편이었다. 그게 어릴 때는 더 심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 때문에 버스를 처음 혼자 탄 적이 있다. 내릴 정류장인데 벨도 못 누르고 내리지를 못해서 종점까지 가서 그대로 울어버렸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내가 못 내려놓고 왜 울었을까? 또 버스 기사 아저씨는 혼자 울고 있는 초딩승객 하나를 보고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백미러로 나를 발견하시고 왜 안 내리고 울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죄송하지만 저는 할 말이 없어요. 엄마 닮아서 눈물이 많거든요..
기사 아저씨는 내 쪽으로 오셔서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시곤 차근차근 나를 달래주셨다. 아저씨 휴대폰으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고 감사하게도 엄마가 있는 곳으로 그 큰 버스를 다시 끌고 나가 데려다주셨다.
엄마는 그때 이야기를 하면 그냥 황당하기만 하다며 이놈의 딸이 버스를 잘 탔으면 분명 금방 내려야 할 거리인데 몇 시간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안 보여서 엄청 답답했다고 했다.
‘소심했던 나’ 하면 생각나는 웃픈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중학생 때 안산 선부동에서 안산 사동까지 버스 타고 1시간 거리인 도서관을 매일 다닌 적이 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멀리 다녔던 이유는 공부에 대한 열정도 뭣도 아닌, 친구랑 도서관에서 공부한답시고 그냥 같이 놀려고 갔다.
학교 마치고 1시간 버스여행 후 친구를 만나 도서관에 도착하면 먼저 좋은 자리를 탐색한 다음 교과서, 노트, 필통을 보기 좋게 배치해 둔 뒤 일단 건너편 편의점을 간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 소화시킬 겸 동네 산책 좀 해주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 거울보고 책 보고 빗질 한번, 필기 한번, 주변 구경도 한번 해주면서 쟤 어떠냐며 친구랑 쪽지를 신나게 주고받고 쉬는 시간(?)에 중간휴게실로 나가 수다를 떤다.
그게 도서관 가는 이유였다. 어떻게 그렇게 매일을 갔는지 그만한 열정으로 거기서 진짜 공부를 했었다면 지금쯤 뭐라도 됐겠지만 나는 그럴 위인은 안 됐기에 그때 도서관은 그냥 나에게 좀 많이 조용한 카페 같은 곳이었다.
아무튼, 그 도서관을 떠올리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그날은 진짜 완전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 내 뒤로 누가 지나가면서 가방으로 내 등을 툭 쳤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 가방주인을 제대로 째려봤다. 그렇게까지 한 나도 나지만 그 가방주인은 더 만만치 않았다. 나를 도서관 밖으로 따로 불러내는 것이었다. 섬뜩했다. 뭐지? 지금이라도 사과할까?
정신 차려보니 도서관 뒷마당이었다. 날도 어둑한 데다가 그쪽으로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으슥한 곳이었다. 교복을 보니 바로 옆 중학교 일진들이었고 한 둘도 아니고 여럿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날 그 중학교 일진들을 모두 마주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히 날 치고 지나가냐는 눈빛으로 째려봤던 그 센 척은 온데간데없이 잔뜩 쫄아서는 입에 풀 칠한 채 땅만 보고 서 있었다.
일진 여자애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몇 분 뒤 일진 남자애들까지 몇 명 와서 날 구경했다. 비겁하다 쪽수로 누르다니. 아까처럼 해보라며 몇 분 동안 계속 말로만 비아냥 거리다가 내가 몇 분 동안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열이 받았는지 내 배와 머리를 때렸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맞았다. 진짜로. 그것도 엄청 세게. 이게 그 학교폭력인가? 나 계속 맞는 건가? 뉴스에서나 봤던 학교폭력을 나도 지금 당하는 건가? 바닥에 뒹굴려서 밟히고 피날 때까지 맞으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들었다.
겁이 났다. 친구도 할 수 있는 거라곤 옆에서 최선을 다해 소심하게 말리는 것뿐이었다. 일진 여자애들은 아랑곳 않고 자기들끼리 시시덕 거리며 즐기듯이 계속 내 머리를 쳤다. 급기야는 내가 교복 위에 입고 있던 사복 조끼까지 벗기려고 했다. 무서웠으면 하라는 대로 했을 법도 한데 일진들도 내 똥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계속 실랑이를 하다가 뒤에 있던 일진 남자애가 말려주는 바람에 어찌어찌 마무리가 됐다. 다행히(?) 머리만 몇 대 맞고 끝났다.
사시나무 떨리듯 온몸을 벌벌 떨며 도서관 화장실로 들어가 꺼이꺼이 울었다. 무서웠다. 한참 다 울고 나왔더니 어떤 고등학생 언니 두 명이 다가와 나에게 괜찮냐며, 싸움이 더 커지면 경찰이라도 부르려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더랬다. 그냥 불러주지 그랬어요. 아무쪼록 감사합니다.. 어쨌거나 나는 그 뒤로 도서관을 못 가게 됐다.
는 게 예상 결말이지만 굴하지 않고 꾸역꾸역 갔다. 누구도 내 소소한 행복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일진들도 종종 마주쳤다. 어떻게 또 오냐며 자기들끼리 키득키득하더라. 웃기지? 나도 이런 내가 웃겨.
근데 더 웃긴 건 몇 년이 지나 그 일이 잊힐 때쯤 20대 때, 나를 때린 일진 여자애 한 명을 마주쳤는데 그곳이 교회였다는 게 정말 충격적이었다. 얘 뭐지? 니가 교회를 다닌다고? 회개는 했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었고 걔가 교회에 있다는 거 자체가 그냥 같잖아 보였다. 그땐 그랬다. 마주치자마자 날 알아볼까 봐 얼른 눈을 피했고 교회에 갈 때마다 또 마주칠까 봐 걱정도 됐다.
왜 내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심했던 나의 중학생 시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웃픈 에피소드다. 그땐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냥마냥 쪽팔린 경험이었지만 나는 누구 안 때리고 다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 이상 안 맞은 것도 다행이고.
그리고 야속하게도 세상은 참 좁았다. 아니 안산바닥이 좁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때 그 도서관 일진무리의 친구 한 명이랑 같은 반이 됐다. 고등학생 되자마자 이게 뭘까 싶었다. 그때 도서관에서 만났던 일진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친구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같은 반인 것도 모질라 같은 동네였고 어쩌다 셔틀버스도 같이 타게 됐다.
하굣길에 자꾸 나랑 같이 달려 나가서 셔틀버스를 타고 중앙동 같이 가자고 조르고 내 속도 모르고 그 일진 친구는 자꾸 내 옆에 붙어있었다.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정말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떻게 그 일을 알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교실 맨 뒷구석 커튼 안에서 그때 그 일진들을 대신해 나한테 직접 사과를 해줬다. 의외였다.
근데 그 뒤로도 계속 셔틀버스 같이 타자고 중앙동 같이 가자고. 친구야 나 살짝 불편했지만 그래도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