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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Sep 13. 2024

남자 어른

2. 외삼촌

2. 외삼촌


    외할머니 집에는 막내 외삼촌도 같이 살았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였고 우리 엄마가 30대 초반이었으니까 외삼촌 나이는 아마 20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젊었을 때 외삼촌은 늘 자신감 넘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남자답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우악스러운 면이 좀 있었지만 장난기도 많고 항상 밝았다. 무튼 내가 좀 더 어렸을 땐 동네에서 같이 산책도 해주고 삼촌이 오토바이를 즐겨 탈 때는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집에서 좀 떨어진 산 골짝에서 같이 가재도 잡고 놀았다.


    건너편에 있는 다른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는 그 학원 선생님이랑 삼촌이랑 잘 되게 해주고 싶어서 한 번은 삼촌더러 선생님 집에 데려다주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선생님께도 그렇게 슬쩍 이야기했더니 싫지 않은 눈치여서 어쩌다 삼촌 차에 셋이 같이 타게 됐었다. 심지어 나는 차에 타기 전에 삼촌한테 너무 부담스럽게 하지 말라고 조언까지 했었다. 어린 조카가 삼촌한테 연애 조언이라니 가만히 들어준 삼촌도 웃기다. 가는 내내 셋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그 차 안의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둘이 잘 되진 않았다. 기억을 헤집어보니 삼촌과도 재밌는 추억이 있었다. 근데 그랬던 삼촌이 어느 날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기억으로는 삼촌이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친구랑 무슨 일 때문인지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부터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 일도 자주 그만두고 사람이 점점 망가져갔다. 엄마도 삼촌 이야기를 하면 그때를 얘기하곤 한다. 그 시점이 맞는 것 같다. 술에 잔뜩 취해서 헤어진 전 여자친구 집 앞에 찾아가 온갖 진상을 부리고 집에 와서는 할머니도 밀치고 집안 물건을 이리저리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동네에 소문이 다 날 정도였다. 술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건지 본성을 드러내게 하는 건지 삼촌은 그렇게 엉망이 되어갔다.


    일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자리를 못 잡고 있을 때 막내 이모네 간판가게에서도 잠깐 일을 했었다. 그때도 문제가 많았다. 막내 이모네랑 우리 세 가족이랑 한 건물에 같이 살 때의 일이다. 새벽에 삼촌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와 고래고래 쌍욕부터 시작해 막내 이모부 이름을 막 불러대며 소란을 피웠고 결국 경찰들까지 와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몇 번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더 큰일이 터졌다.







    때는 할머니 생신날, 영동에 사는 큰 이모 큰 이모부, 둘째 이모 이모부, 막내이모 이모부 그리고 자식들까지 우글우글 전부 할머니 집에 모여 생일잔치를 했다. 그날도 술에 거하게 취한 삼촌은 막내이모한테 돈 이야기를 하며 점점 얼굴빛이 어두워져 갔다. 가족들은 외면했다. 술 마시면 자주 그랬어서 빨리 정리하고 집에 가려는 듯 보였다. 다들 그런 삼촌이 무섭고 지겨워서 상대하기를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신발장에 앉아서 삼촌 눈치를 살살 보면서 신발을 신었다. 많이 보던 시한폭탄이다. 곧 터질 것 같아서 무서웠다. 역시나 시한폭탄은 터졌고 나는 얼른 도망쳤다.


    문 밖으로 들리는 고함소리, 물건이 바닥에 내던져지면서 빠개지는 소리. 지긋지긋한 소리. 마치 도망치는 내 뒤로 큰 폭탄이 터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옆동 2층 복도로 올라가서 쭈그려 앉아 귀 막고 울면서 기도했다. 우리 집 좀 제발 그만 싸우게 해달라고. 그날 밤 우리 동네에는 삼촌과 막내이모의 찢어질 듯한 고함소리로 가득했다. 나머지 가족들은 뜯어말리느라 시끄러웠다. 늦은 밤에 조용한 동네에서 ‘지금 우리 집 싸워요~’ 광고를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뒤 잠잠해졌을 때 내려가서 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거실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괴로워하며 울고 있었고 엄마랑 둘째 이모는 집에 널브러져 있는 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성한 물건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안은 거의 쓰레기장 수준으로 엉망이었다. 할머니 생일잔치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그 뒤로도 삼촌은 술을 달고 살았다. 취하기만 하면 언성이 높아지고 집은 엉망이 됐고 뒷정리는 언제나 우리 몫이었다. 심할 때는 할머니를 발로 차기도 했다. 꼭 친아빠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또 한쪽에 쭈그려 앉아서 겁에 질린 채 이 난장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도 안 계셨고 그런 삼촌이랑 마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나도 언제부턴가 삼촌을 보면 말을 안 하게 됐고 무서워서 같이 있기도 싫어졌다.


    할머니랑 같이 사는 동안 우리 엄마가 남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뿐이었다. 살다 보니 맘처럼 안 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 응어리가 생겨버린 걸까 괴로운 마음이 저도 모르게 불쑥 들 때마다 맨 정신으론 버틸 수 없어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 그런 행패를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건 옆에 있는 가족이고. 친아빠나 외삼촌이나. 술 마신 남자어른은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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