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착각일까 2) 껌도둑 3) 대일밴드
1) 착각일까
외할머니집에서 같이 사는 동안 나는 할머니가 내 동생이랑 막내이모 아들내미랑 차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둘은 동갑이었고 울보 내 동생은 많이 지고 살았다. 어릴 땐 누나누나 하면서 나를 잘 따랐고 나한테 잘 맞기도 했다. (미안) 내 동생이니까, 나는 괴롭혀도 되지만 다른 사람은 안된다.
외할머니가 내 동생을 차별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같은 행동을 해도 내 동생은 맘에 안 들었는지 밥 먹다가도 동생 손을 톡 치고 괜히 더 쏘아붙여서 잔소리를 했다. 이모 아들내미한테는 항상 오냐오냐하는 투로 말하고 내 동생한테는 늘 퉁명스러웠다. 분명히 그랬다. 막내이모 아들내미가 할머니집에 놀러 올 때면 항상 우쭈쭈 하며 반겨줬고 그날은 어딘지 모르게 할머니의 기운이 달라진다.
어린 나이었는데도 피해의식 같은 게 생긴 건지 쓸데없이 그런 눈치만 는 건지 나는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처지여서 우릴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짜증 나서 엄마한테 일렀다. 할머니가 내 동생을 차별하는 것 같다고. 엄마는 또 바로 할머니한테 말했다. 할머니는 그런 게 아니라고 웃으며 나한테 말했지만 난 아직까지도 반은 안 믿는다.
2) 껌 도둑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었다. 할머니 집에 살 때 매일 붙어 다녔던 그 분신 같은 친구 한 명이랑 자주 가던 슈퍼가 있었다. 바로 옆에 문구점도 붙어있어서 거기서 게임도 하고 스티커도 사고 불량식품도 사 먹고 또 옆에 슈퍼로 넘어가서 빵도 사 먹고 그 구역이 우리의 주 활동지였다.
자주 가던 그 슈퍼는 입구가 성인 기준으로 딱 한 사람이 지나서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였다. 그 좁은 통로 양 옆 매대엔 각종 야채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길 따라 쭉 몇 걸음 가다 보면 중앙 기둥을 중심으로 카운터가 있고 마주 보고 있는 기둥 우측 상단엔 티비가, 그것도 꽤 높이 달려있었다.
카운터 자리 테이블도 꽤 높았어서 초등학생이 그 코 앞에 까지 가면 아예 안 보이는 그런 구조였다. 그리고 그 높은 카운터 테이블 벽면 아래쪽엔 껌, 사탕들이 잔뜩 기대어 진열되어 있었고 슈퍼 주인아줌마는 티비를 자주 보고 계셨었다.
그날은 심심했는지 이상한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주인아줌마가 티비에 정신이 팔려있는 틈을 타 슈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카운터 코앞까지 갔다. 낮은 포복으로 바짝 붙어 있으니 이 카운터가 어찌나 높던지 이 껌들을 죄다 가져가도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바지 주머니에 챙길 수 있는 대로 껌들을 꽉꽉 욱여넣었다. 아줌마는 계속 티비를 보고 계셨다. 우리는 그대로 슈퍼를 빠져나와 각자 집으로 달려갔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날 저녁에 옷도 안 갈아입고 주머니에 껌이 빵빵하게 들어있는 채 그대로 엄마 다리에 기대 누워 천하태평하게 티비를 보고 있었다. 한참 정신 팔려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주머니에 뭐가 이렇게 들었냐며 손을 쑥 넣었다. 아뿔싸. 엄마 손 위로 온갖 껌이 와르르 딸려 나왔다. 엄마는 이 많은 껌들을 어디서 났냐며 추궁했고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슈퍼에서 산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안 믿었다. 바로 엄마랑 손잡고 그 슈퍼로 다시 갔다. 나 대신 엄마가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드리고 껌도 다시 드리고 나왔다.
3) 대일밴드
할머니 집에서 살 때 친아빠에 대한 다른 기억이 하나 있다. 낮에 할머니랑 둘이 집에 있을 때 할머니는 베란다를 청소하고 있었고 나는 그 옆 창문에 기대 서서 창틀에서 10cm짜리 자에 붙어있는 스티커 이름표를 떼려고 커터칼로 꾸역꾸역 건드리다 왼손 엄지손가락 안쪽을 푹 찔러버렸다. 꽤 깊게 베여서 살이 벌어지고 피가 철철 났다.
놀란 할머니가 친아빠한테 전화했고 그때 마침 근처에 있었는지 금방 와서는 나란히 앉아 피를 닦아주고 대일밴드를 붙여줬다. 병원 데려가라는 할머니 말에 친아빠는 그럴 시간이 없었는지 마음이 없었는지 괜찮을 거라고 했다.
어린 내가 봐도 이 상처는 대일밴드 하나로 될 일이 아닐 것 같았지만 어찌 됐든 나중에서야 그냥 이런 일도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깊게 베인 흉터는 아직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