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아저씨
1. 낯선 아저씨
띄엄띄엄해서 한 3년 정도 우리 세 가족은 와동 외할머니댁에 얹혀살았었다. 같은 동네 친구들이랑 놀이터 돌아다니면서 불량식품도 사 먹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풀떼기들 돌로 빻아서 소꿉놀이도 하고 할머니가 아침마다 쥐어주신 오백 원 하나로 많은 걸 할 수 있었던 때였다.
그때 매일같이 붙어 다닌 분신 같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아침에 눈뜨면 오백 원 하나 챙겨서 바로 옆 동 그 친구 집에 가서 ‘ㅇㅇ아~ 노올자~’ 하고 만나 밤새 놀던 그때 그 시절 단짝 친구였다. 걔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 나도 같이 다니고 싶어서 엄마한테 조르고 졸라 같이 다녔었다. 아쉽게도 피아노에는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었던 터라 바이엘 하권에서 때려치웠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 일이었다. 하루는 동네 친구들이 다들 어디 가고 없어서 대낮에 혼자 밖에서 금방울 빵이랑 초코우유를 먹고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조용했다. 봄 햇살 받으면서 나른하게 빵을 냐금냐금 먹고 있을 때 내쪽을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나한테 길을 물었다. 키가 작고 땅땅한 체구에 하늘색 셔츠를 입었고 타원형의 얇은 검은 테 안경을 쓴 아저씨였다. 어렸지만 이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
그냥 길을 묻고 지나가는 척하더니 우물쭈물거리다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적한 동네에 혼자 있는 여자아이를 성추행 하려고 했던 정신 나간 아저씨였다. 한 번만 만지게 해 주면 500원을 준다며 아저씨랑 같이 요 앞 건물 어두컴컴한 지하로 가자고, 나는 싫다고. 겁에 질려서 고개만 도리도리 저으면서 거부했다.
무서웠다. 대낮에 혼자 얌전히 빵 먹다가 별안간 변태아저씨를 마주쳤다. 그날따라 유독 고요했던 동네에 몇 분 동안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그 아저씨랑 나랑 둘만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아줌마 한 분이 내가 있는 쪽으로 지나가셔서 나도 그 틈에 후다닥 도망쳤다. 그 아줌마 옷 차림새 아직도 기억난다.
바로 옆 동 친구집으로 갔고 그때 마침 그 친구가 집에 있었다. 밖에 나가기 무서워서 친구집에 한참 있다가 엄마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할머니 집으로 갔다. 저 멀리서 퇴근하는 엄마를 보자마자 그날 일을 이야기했더니 화들짝 놀란 엄마는 집 신발장에 들어서자마자 주저앉아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때는 ‘엄마가 왜 미안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그 변태새끼가 아직도 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까 싶어 엄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동네를 순찰했지만 마주치진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했던 순간이고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