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우는 모습을 많이 봤다. 엄마 휴대폰을 막내이모랑 이모부가 바꿔준 적이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연보라색의 작은 폴더폰이었는데 엄마가 퇴근 때 회사 통근버스에서 내리다가 외투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똑 떨어졌고 그 타이밍에 버스가 밟고 지나가버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났다. 바꾼 지 일주일도 안 됐었던 새 휴대폰이었다.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고 나랑 동생도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하는 와중에 휴대폰 바꾸는 것까지 해결하기는 벅차서 여동생에게 손을 벌렸던 건데 그게 일주일도 못 가서 쓰레기가 돼버렸다.
그날 엄마는 그 박살 난 휴대폰을 들고 슬픈 얼굴로 퇴근했다. 집전화로 이모한테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양손으로 집전화를 꼭 쥐고서 무릎을 꿇은 채 크게 소리 내 울던 엄마의 뒷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나 지금 돈도 없는데, 그래서 여동생한테 부탁해서 바꾼 휴대폰인데, 하필 그날 입은 외투는 주머니가 얕았고 하필 떨어져도 통근버스 바퀴 바로 앞에 떨어졌고 눈치도 없는 거대한 통근버스는 그대로 휴대폰을 밟고 지나가버렸다. 며칠도 채 못 쓰고 쓰레기가 된 휴대폰이 우리 엄마를 울렸다. 속상한 감정 그 이상으로 내가 처한 이 상황이 평소보다 더욱 원망스러운 하루였으리라…. 그때 우리 엄마 나이 30대 초반쯤.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있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만난 중국인 아저씨였다. 나랑 동생도 같이 만나서 가끔 밥도 먹고 선물도 사주셨다. 나는 그냥 엄마가 좋다면 좋았고 엄마가 외롭지 않아 보여서 좋았다. 어릴 때여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가끔 만나면 대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 정도? 엄마가 그 아저씨를 얼마나 만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외노자 한국 불법체류 문제로 급하게 중국으로 들어갔었고 그때 당시 한국으로 다시 올 수 없게 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저씨는 그렇게 헤어지게 됐다. 그날 밤 엄마는 방에서 그 아저씨와 통화하면서 엄청 울었다. 불도 안 켠 채로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한참을 울었다. 엄마도 참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그 후 20년 뒤 새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2013년 6월 7일 금요일 맑은 초여름날 오후에 우리 가족을 한 곳에 모은 건 갑작스러운 아빠의 부고소식이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그날은 울다 못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고 우리 가족 모두가 슬픔에 빠진 날이었다.
늘 그렇듯이, 당연하게, 언제나 옆에 있을 줄 알았던 누군가를 하루아침에 잃는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일이다. 아빠는 엄마와 결혼하고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하루도 빠짐없이 혼자서라도 매일 새벽기도를 나갔고 6월 7일 그날 새벽에도 늘 그랬듯이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나갔다. 목사님도 얼마나 놀라셨을지. 그날 새벽에 봤는데 몇 시간 뒤 오후에 영정사진으로 마주했을 때 기분은 어떠셨을까?
이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도무지 정신이 없었고 왜 엄마가 또 이런 슬픔을 겪어야 하는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한테 아빠는 필요 없지만 엄마에게 남편은 필요하지 않나? 왜 자꾸 우리 엄마는 혼자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엄마가 재혼하고 새아빠와 같이 부부로서 지낸 시간은 고작 4년. 엄마가 혼자서 외롭게 지냈던 시간보다 현저히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엄마는 아빠를 만나 그동안 받지 못했던 사랑 충분히 받았다고 말한다. 그래. 엄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