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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희 Feb 23. 2023

불안한 이차희 컨셉

6:55am

오늘의 꿈은 대강당에서 펼쳐졌다. 우리의 존재와 각각의 성질이 이 세상이 이루어져 온 과정 중 어떤 시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는 대학 강의였다. 다양한 인종이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현대사회를 이루는 역할에 자동으로 몸이 움직였고 춤을 추기도, 연극을 하기도 했다. 나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기대하는 중 아주 오래 전, 세상이 처음 생겨날 때의 필요한 에너지 중 하나가 되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해 과격해지기도 했지만 실상 내 성질에 가까운 에너지는 차분한 오로라같은 에너지였다. 대학 강의인지라 다른 수업도 들었는데, 수학 시간엔 아무 얘기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문제를 풀 수 있었고, 어떤 철학 시간엔 계속해서 학생들과 대화하며 추론을 이끌어내는 친구같은 교수님 덕분에 재밌게 문제를 풀기도 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전체 학생 호출이 있어 우리는 우리의 성질에 따라 자동으로 줄이 세워졌는데 나는 한 열의 끝에 있었다. 끝에 있을수록 극단에 있는 것이었고, 내 열의 극단은 그 철학 수업에 참여한 친구들과 교수님보다도 더 집중하지 못하는 쪽이었다. 나는 그 극단의 성질을 불안으로 인식했고, 너무나도 맞다고 생각해 엄청 크게 웃으며 이 재밌고도 탁월한 상황을 즐거워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삶에 쿨해질 때마다 ‘불안한 이차희 컨셉 어디갔어’라며 대답하던 친한 언니의 말처럼, 나는 불안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만큼 자신이 있다. 엄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어렸을 적 기억에 여전히 흔들리기도 하고, 내 존재에 대한 확신도 없고, 왜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지는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해 줄창 울기만 했던 시절도 있었고, 이유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해명받고 싶은 마음과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것 같아 결국은 텅 비어버린 세상 앞에서 공허한 나날들을 보내기도 했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처럼 언제나 내 말과 삶에 주석을 달면서 변명하고 싶어했고 어떤 이와도 온전한 이해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홀로 선 기분으로 불안에 떨기도 했다. 아주 소소하게는 잠이 안올까봐 불안하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떨어질까봐 불안하고, 갑자기 엄마가 죽을까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사소하고도 숨막히는 불안은 병원을 다니며 조금 나아졌는데, 의사 선생님은 극도로 예민한 감각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처방을 받으면서 점점 둔감해지는(다시 말해 덜 불안해하는) 내 모습에 나는 어이없게도 불안해했다. 내 예민함을 잃어버리는 일이 왠지 억울해서였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기가 힘들어요.” “사람들의 수많은 시선들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그래요.” 나는 내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 자체가 비정상적인 게 아니냐는 대답을 하고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 불안은 정말 고쳐져야 하는 성질인걸까?


우주의 대폭발이 일어나 팽창했다는 세상의 시작 역시 이 불안함으로 시작한 건 아닐까. 예민함과 불안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팽창해버린 거다. 내 에너지의 성질이 세상의 시작에 필요했다고 보여준 꿈의 모습처럼 말이다.



2023년 1월 29일 일요일


불안한 이차희 컨셉, 6:5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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