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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바름 Oct 30. 2022

부레옥잠

약간은 동화, 조금은 에세이                       

*사진출처:@Flickr


부레옥잠     


 공교롭게도 담임이었던 공 선생님은 훌륭하지 않았다. 세상에 공 씨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존재, 호기심으로 다가가 볼까 했던 선생님은 학생들을 심하게 차별했다. 시장에서 빵집을 하는 덕에 살림이 꽤 넉넉했던 아이는 보란 듯이 반장이 됐고, 미화부장이나 도서부장 등 학급 임원을 하려면 부모님의 상담이 필수였다. 나도 임원을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요지부동, 미야 네 엄마가 학교에 다녀간 후 미야는 드디어 미화부 차장이 되었다. 왜 미야는 부장이 아닌가? 아예 학교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엄마의 딸로 나는 그저 시무룩할 뿐 이런 질문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옆 반 경민이는 봉사부 차장, 강민이는 심지어 부반장, 임원 아닌 아이는 나 혼자라 씁쓸했던 날, 놀랍게도 아이들은 우리 담임인 공 선생님에 대한 소문을 쏟아냈다. 눈에 차는 아이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미운털 박힌 아이에겐 이상한 심부름을 시킨다는 거였다.     


 앗 혹시 내가 소문의 주인공인 걸까? 그날 공 선생님은 나에게 학급 아이들이 함께 쓰는 컵을 씻어 오라고 했다. 컵 하나만 가리키며 씻어 오라기에 시킨 대로 했더니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들어야 한다나. 나머지 컵을 다 씻지 않았다고 뭐라한거였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뭐 이렇게 면박당한 아이가 나만은 아니었기에 특별히 내가 미운털이 박혔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이 더 심각했다. 담임을 못 하게 투표를 하자 느니 엄마에게 일러 주자 느니, 마치 자기가 당한 일처럼 열을 올렸다.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 다 났네. 돈만 밝힌다고”     


엄마들 사이란 미야 엄마와 경민이 엄마일 거다. 두 사람은 화투 칠 때 빼고는 둘도 없는 단짝이다.     


“빽도 없는 애들끼리 말해봤자, 공 선생님이 꿈쩍이라도 하겠냐?”     


어른스러운 강민이의 말, 강민의 말 이라기보다는 어른스럽다 못해 약아빠지기까지 한 강민이 누나 깡미의 일갈일 테지.  몇 마디 나누다 우리는 그냥 시들해졌다.     


 공 선생님은 자연 과목을 좋아했다. 부레옥잠에 대한 설명은 흥미로웠다. 물에 뜨는 식물이라니, 공기주머니가 가득한 식물이라니, 설명만으로 부족했던지 선생님은 분단 별로 어항 한 개씩을 꾸미도록 했다. 대부분 주황색 금붕어를 준비했지만 어떤 분단은 파랑 빛깔 나는 희귀한 물고기나 자동으로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장치, 금붕어들의 놀이터로 물레방아처럼 생긴 물체를 넣기도 했다. 아이들 보다는 부모들의 취향에 따라 어항이 꾸며졌을 거다. 초록 부레옥잠이 둥둥 뜬 모습은 마치 바닷가에 튜브를 끼고 노는 아이들 같았다. 자그마한 어항이 좁아 보여 나는 영 마음이 쓰였다.     

 

 어린이날이 낀 꽤 긴 연휴를 보낸 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어항에 물고기들이 다 죽었다는 거였다. 누군가 어항에 아까징끼라 부르던 빨간 상처 약을 타고, 어떤 어항은 아예 산산조각 났으며 물과 유리 파편으로 교실이 엉망이 됐다는 거였다. 빨간색이 번진 어항에 널브러진 초록 부레옥잠, 죽은 금붕어들, 소문을 듣고 상상만 해봐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공 선생님에게 싫은 마음을 품은 졸업생들이 몰래 한 일이라고도 하고, 도둑이 교실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다가 별다른 것이 없자 해코지한 거라고도 했다.

     

 소문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우리는 여러 개의 어항이 놓여있던 빈자리를 어색하게 살피며, 공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기에 우리는 너무 어린 건가?  속으로 물으며 뭔가 찌릿하게 아픈 순간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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