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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바름 Oct 30. 2022

목소리

약간은 동화, 조금은 에세이

*사진출처: @Fliker


목소리     


 일하는 엄마는 사납고 무서웠다. 준비물을 사야 하는 날은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엄마는 어떤 날은 기분 좋게 동전을 내밀었고 어떤 날은 십 원도 없다며 화를 냈다. 마분지와 원고지, 삼각자와 작은 북까지 별별 준비물이 많아 엄마에게 길게 설명이라도 해야 하는 날은 정말 학교 가기 싫었다. 언니들은 무슨 비밀이 그리 많은지 몰려다니며 나를 어리다고 놀이든 뭐든 잘 끼워주지 않았다. 더 어릴 때도 혼자 놀았던 기억이 난다. 주산 두 개를 뒤집어 놓고 기차처럼 만든 후 못난이 인형 삼총사를 태우고 집안을 뱅뱅 돌았다. 칙칙폭폭 기차 소리를 내며 이불로 터널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한참 놀고 나면 답답증이 가셨다. 조금 더 자란 나는 야뇨증이 생겨 엄마의 걱정과 원망을 동시에 샀다.     


 미야는 내 목소리가 곱다고 했다. 사실 빌라 공터에서 우리끼리 노래자랑을 할 때 나는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노래를 꽤 잘했다. ‘연가’, ‘모닥불’ 등 친구들이 미래소년 코난이나 들장미 소녀 캔디 따위를 부를 때 나는 언니들에게 배운 세련된 멜로디의 노래를 불렀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노래를 부를 때면 바람찬 동해 바다에 갔다가, 모닥불이 활활 타는 캠핑장에도 갔다가 잠깐 넓고도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끼리 노래자랑에서는 나는 각별한 선곡으로 늘 1등을 했지만, 학교에서는 한없이

부끄럽고 고개 숙일 일 많은, 제 목소리를 듣고 끔쩍 놀라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국어 시간, 문단 나누기 수업에서 발표하면 담임 선생님은 땅콩 캐러멜을 주셨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목에 돌멩이가 걸린 듯 소리가 나오지 않더니 ‘파르르’ 캐러멜 비닐 껍질 소리에 군침이 돌았다.     


 “제가 한 번 발표해 보겠습니다...”     


 학급 아이들 앞에서 생전 처음 내 목소리가 울렸다. 개미만큼 작은 소리긴 했지만, 선생님께서 잘했다며 크게 칭찬해 주셨다. 그날은 학교가 파할 때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발표 순간은 몹시 짧았지만, 여파는 길고 길어, 그날은 꿈나라까지 떨리는 마음이 따라왔다. 달콤한 땅콩 카라멜과 함께 나는 목소리를 되찾은 인어공주가 되었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인어 공주 이야기, 본래 비극인 동화와 달리 나는 해피엔딩을 꿈꿨다. 하지만 무서운 엄마가 갑자기 다정해질 리도 없고, 한없는 부끄럼쟁이가 하루아침에 씩씩해질 리 없다. 그래도 나는 미야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 목소리는 작지만 참 곱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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