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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un 30. 2022

너의 당황과 창피함에

나아지지 않는 엄마의 의연함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오전에는 핸드폰의 작은 진동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별일 없이 지나는 무수한 날들 중에 하루였다. 똑같은 진동인데도 다급한 전화는 진동 값이 다른지 느슨한 촉을 바짝 당긴다. 결국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는 담임의 전화를 받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이성을 붙든 채로 전화를 받으며 아이의 옷가지를 본능적으로 챙겼다. 담임의 사설이 길다. 상황 파악을 끝내고 십 분이면 도착한다는 말을 남기고 출발했다. 달리기를 잘하는 건 이럴 때 제 몫을 한다. 숨이 차는지도 모르고 달렸다. 아이의 당혹스러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서 폐가 아주 작정을 하고 도왔다. 


아이가 혼자서 대변 처리를 하겠다고 호언을 했는데 집과 달리 유치원 변기는 작아서 깔끔하게 하지 못했나 보다. 변기에만 묻었다면 다행이겠지만 미숙한 손짓으로 애를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휴지에 살이 쓸리는 것을 싫어하니까 야무지게 닦아내지 못했을 거다. 결국 팬티에도 변이 다 묻어서 도우미 선생님께서 버리셨다고 한다. 그럼 아이는 바지만 입고 있는 상태. 정해진 안정감을 벗어나면 아이의 예민함은 극에 달한다. 달리면서 아이의 예민함이 불러올 여러 심리적인 단어들만 생각났다. 불안, 초조, 자괴감, 짜증, 위축, 당황, 창피, 부끄러움, 수치심, 화, 실패감, 좌절 등.



다행히 유치원 현관을 정리하시느라 문은 열려있었고 복도를 지나는 도우미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아이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아이가 나를 본다면 스스로 진정시키던 마음이 울음이 되어 터질 것을 안다. 결국 담임만 만나 당장의 아이 상태를 듣고 옷만 전해주고 나왔다. 그제야 폐가 요동을 친다.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겠지... 이것도 경험이니... 너의 실패와 좌절이 또 너를 얼마나 일어서게 할지... 


다급한 목소리의 담임 전화를 상기하면서 오히려 담임을 진정시키던 내 말들이 스친다. "네, 선생님 방학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 집과 다른 환경 이어서요. / 나름 스스로 해보려 용기 냈네요." 똥만 싸도, 밥만 잘 먹어도, 늘어지게 하품을 해도 칭찬을 받는 시기다. 내년 초등 입학을 두고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시기다. 그렇다고 학교는 지금과 달라서 도와줄 사람이 곁에 없기에 너 혼자 해야 한다는 불안으로 아이를 밀수는 없다.


아이의 성향이 조심과 예민에 아주 밀접하기 때문에 평균 집단의 아이들처럼 대할 수 없는 다른 수고가 더 필요하기는 하다. 하원을 하면 시간이 얼마가 되든 스스로 시도했다던 그 용기를 격려하고 아이의 당시 마음을 차근히 위로해줘야겠다. 넘어지지 않고 걷는 아이는 없기에 얼마든지 넘어지고 털어내는 건 일상이라는 말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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