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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Aug 10. 2018

아이와의 식사, 지옥과 천국! 그 한 끗 차이는?

아이 주도 식사 솔루션 #03


어떻게 밥을 먹여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끼니마다 전쟁을 치르듯 밥을 먹인 첫째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방법을 나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질문 하시는 분들이 원하시는 건 따로 있더라고요. 먹이는 노력이 어렵고 힘들다는 공감대 형성을 잘 먹이는 해법만큼 중요하게 여기시는 거였어요. 저도 그 마음 이해해요. 절대 공감하고요.     


저는 당시 제 아이의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방법을 생각해보고 시도해보면서 반복을 통한 교정을 했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아이 주도 식사의 의미를 생각하며 밥을 차리고 먹이고를 행하고 있습니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느꼈어요. 엄마의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이기에 둘째 식사는 그저 수월하다는 느낌 정도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영유아 건강검진 문진표의 아래 문항에 "예"라고 표시하면서 희미한 미소를 흘렸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이 즐겁습니까?

  

첫째 때도 영유아 건강검진 문진표에 같은 물음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설령 있었다 해도 정직하게 '아니오'에 체크를 했을지, 보이기 위한 속임으로 '예'에 체크를 했을지 혼자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둘째도 안 먹을 땐 정말 안 먹어요. 세 숟가락 열심히 먹고는 엉덩이 들고 돌아다닙니다. 그래도 더 먹으라는 재촉을 하지 않아요. 그냥 두었다가 다 먹은 거냐 확인만 하고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은 후에는 치워요. 아무리 많이 남아있어도요. 첫째 아이 때도 남겨지는 밥의 양은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한 끼니를 해결한 후 돌아서면 다가와 있는 식사 시간이 지옥 같았어요.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성장기 아이에게 하루 세끼에 간식 두 번을 먹여야 한다는 말이 감당하기 어려운 족쇄처럼 여겨질 정도였어요. 속이 답답해지면서 칼을 들고 음식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무서울 정도였으니까요.      


두 아이 모두 잘 안 먹는 시기, 잘 안 먹는 끼니가 있는 건 매 마찬가지인데 무슨 차이인 걸까요?     


입으로 먹기보다는 눈으로 먹고 손으로 장난만 치던 둘째 아이의 어느 끼니


 아이를 낳는 순간, 숨 쉬는 것만 빼고는 뭐든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면 부족과 피로감이 쌓입니다. 그러다 이유식 시기가 와요. 먹여야죠. 그런데 아이는 거부해요. 우리 자존심은 상합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애를 써요. 아이의 상태를 보기보다는 어떻게든 먹여야 한다는 엄마의 의무에 사로잡혀서 무엇이 중요한지 놓친 것 같더라고요. 그때 누군가 말을 해요. "애 입이 짧다." 흘려듣고 싶습니다. 애 입이 짧은 탓을 어디다 돌리고 싶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은근히 부정적인 기운으로 다가왔거든요. 반드시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주변의 아이들은 너무 잘 먹어요. 부럽죠. 잘 먹는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질투심이 생깁니다. 애 거저 키우는 복을 받았다며 속으로 빈정대기도 했어요. 참 못난 마음입니다.      

첫 아이를 키우는 저의 어설픔을 탓해봤어요. 그러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아이 탓을 했지요. (곧 못난 엄마라며 자책이 따르는 건 덤입니다) 둘째를 낳은 덕분에 하나만 키울 땐 잘 보이지 않던 밥에 대한 제 마음 상태가 보이더라고요. 거기에 더해 아이의 다양성의 한 측면인 '먹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들어왔습니다.     


SNS를 보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아이 음식 사진들이 많아요. 딴 세상 음식처럼 보이는 차림들입니다. 그리고 해시태그에는 어김없이 ‘#잘먹는아이’라는 것이 붙습니다. 화면 속에는 아이 스스로 수저를 들고 곧 떠먹는 사진이나 잘 먹는 영상이 있습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솜씨를 발휘해서 맛깔난 음식들을 차립니다. 화려함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엄마 마음이 깃든 정성 가득한 아이 밥상은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엄마 정성의 문제일까요? 화려함의 문제일까요? 결코 이 두 가지는 큰 영향이 없어요. 화려한 차림이라도 아이가 안 먹으면 낭패입니다. 완벽한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이라 해도 이 또한 아이가 안 먹으면 소용이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화려한 차림이나 요리법들 보다는 아이에게 어떻게 먹일지 고민하는 그 방법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첫째 아이는 상대적으로 먹성이 없어요.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거의 없습니다. 비타민 구미 두 알이면 배를 채울 수가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제가 직접 만든 음식들로 먹이려 방법을 찾으며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조금이라도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재료들로 차렸어요. 엄마가 먹는 음식에는 아예 관심이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조금 편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둘째는 먹성이 강해요. 뭐든 먹어보려고 해요. 아무리 매운 거라도, 아무리 짜더라도, 몸에 해로운 것이라도 덤벼듭니다. 먹성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에요. 넘치게 먹지는 않더라도 몸에 해로운 것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둘째와 밥을 먹을 땐 마음대로 먹기 힘들었습니다. 첫째 때와는 다르게 되려 가려서 음식을 차려야 했고 너는 아직 어려서 못 먹는 것이라며 맵고 짠 것을 멀리하도록 했어요.     

둘째 아이가 호기심에 먹은 엄마 반찬, 고추. 맵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이 주도 식사로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고 구강기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우선 살펴보아야 하는 건, 수유 때부터 아이의 먹성이 어떤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먹성이 없는 아이와 먹성이 있는 아이는 차별을 두고 먹이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게 되거든요. 아이 주도 이유식이 마법은 아니라서 타고난 없는 먹성이 생기지 않아요. 먹성이 없는 아이는 깨작대며 욕구를 채우기 때문에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만 들 뿐입니다. 우리 애는 입이 짧다! 라는 부정적인 인정보다는 그냥 먹성이 없는 거다! 라고 생각을 바꿔보세요.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져요.     


먹성이 없다고 아이 주도 식사가 소용이 없다? 제대로 안 먹는 것 같고 안 클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으로 엄마가 먹여주는 스푼피딩으로 돌아서기보다는 병행을 해보세요. 세 번의 끼니는 숟가락으로 먹이고 간식은 주도적으로 먹게 한다든지, 간신 두 번과 가장 활발한 시간대의 식사를 아이에게 맡겨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이 주도 식사(이유식, 유아식)는 아이에게 열린 상태로 음식을 대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이점이 있지요. 그러니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아이 스스로 자신을 믿을 기회를 주려는데 초점을 맞추세요. 그러면서 식사를 같이하는 어른이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아이와 즐겁고 편안한 식사를 하고 싶으시다면 아이의 식사를 이끌어 가시는 게 아니라 도와주셔야 합니다. 아이의 먹성은 타고 납니다. 잘 먹으면 그야말로 복을 얻은 것이고 잘 먹지 않는다면 길러줘야지요. 아이의 다양성 중의 하나인 먹성도 주변에서 노력하면 길러질 수 있습니다. 

     



먹성을 먼저 점검하세요.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지 않고 밥을 다 비우게 하려는 마음으로 식사를 할 때는 속이 터집니다. 반면, 아이의 기분에 맞추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는 몸짓을 격려해주면 편안한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식사의 주체는 절대적으로 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는 것도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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