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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선 바다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by 영감핀 pin insight

요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럭저럭 잘 봤다고 여겼던 시험은 불합격했고, 친구와 준비한 브랜드는 잠시 운영이 중단됐다. 이 얘기를 다른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와 함께 일하기엔 네 시간이 아깝다며 그 친구와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걱정 아닌 조언을 해줬다. 이 말에 화를 냈고, 그 뒤로 기분전환하려고 이 친구와 같이 단풍을 보러 갔다. 이 와중에 친구가 길을 몇 번 잘못 들어서서 짜증이 나는 마음을 애써 감췄다.


단풍을 보고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다음에 꼽을 문장을 곱씹다가 번뜩 이 문장이 떠올리곤 기분이 좋아졌다.


천국에선 바다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대
im Himmel, da reden die über nichts anderes, als über das Meer.

이 문장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초반부에 나오는 대사로, 암에 걸린 루디가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신세를 한탄하자 불치병에 걸린 마틴이 한 말이다. 바다에서 지는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냐며, 천국에선 모두가 바다에 대해서 얘기한다나. 이 말을 계기로 둘을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


(이후는 영화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틴과 루디는 어떻게 되느냐. 우여곡절 끝에 바다에 도착하지만 석양은 보지 못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바다는 찬란한 바다라기보단 황량한 바다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들은 천국에 가면 할 얘기가 있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 은행을 털었고, 어머니에게 엘비스 프레슬리가 타던 차도 사드렸다. 경찰에게 체포됐다가 도주도 하고 갱 보스를 만나기도 했다. 어쩜 이 영화 자체가 우리가 천국에서 그들에게 듣는 이야기라 봐도 된다.


이 문장을 떠올리니 친구와 브랜드를 준비하던 시간도, 단풍을 보러 헤맨 길도 다 즐겁게만 느껴진다. 나중에 이 친구들하고 술 마시면서 "우리 브랜드 준비할 때 너 이딴 의견 냈잖아ㅋㅋㅋ" 하며 웃고, 단풍 보러 갔다가 길 두 번이나 잘못 들었잖아~ 하고 추억하면 된다. 영화에서처럼 삶은 원래 고통과 시행착오를 동반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더 극적인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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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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