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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 정도의 그 약간 무게감만큼 뿌듯하면서

침착맨 채널 [공LP]에서

by 영감핀 pin insight

물성이란 단어가 낯간지러워서 그동안 외면했지만 나도 물건이 좋다. 전자책보다 책이 더 좋고, 휴대폰 사진보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더 좋다. 물건이 참 재미있는 점이, 하나만 있으면 아주 특별한 무언가처럼 느껴지고 여러 개가 있으면 이 물건들이 채운 공간만큼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물건은 필연적으로 공간을 차지하니 무한정으로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물건을 들일 때는 어느 정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이런 제한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그 두께감과 딱 그 정도의 그 약간 무게감만큼 뿌듯하면서 만족스러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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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침착맨의 말처럼 물건의 두께감과 무게감이 느낌을 좌우한다. 이 무게감이 주는 효과를 나는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처음 느꼈다. 어느 정도 두껍고 종이 질감이 잘 느껴지는 명함을 받으면 꽤나 신경 쓰는 회사임이 단번에 느껴졌다. 또 한 번은 서류에 서명을 할 때 건네받은 펜에서 느꼈다. 펜이 필기감도 좋았지만 일반적인 펜보다 묵직했다. 묵직한 펜으로 서명을 하니 이건 진짜 중요한 서명이다는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 이처럼 무거울수록 진지하게 느껴진다고 볼 수 있다.


두께감과 무게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하려면 역시 실물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직관적이다. 한 광고회사에서 시리즈 광고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광고 내용을 엮어 만든 책을 꺼내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PPT화면으로 책 시안을 보여준 것보다 확실히 효과적이다. 화면을 보면 실물을 상상하는데서 그치겠지만, 실물을 보면 그다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책이 서점 진열대에 진열된 모습, 반응이 좋아 베스트셀러로 전시된 모습, 책상 위에 놓인 모습, 이 책을 책장에 진열한 채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 여기까지 상상해 보니 역시 화면보다 실물이 더 좋다.


내가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책을 만들겠다 마음먹은 이유도 비슷하다. 저렇게 거창하진 않지만, 내가 모은 문장들을 책 한 권으로 만들어서 그 두께감과 무게감만큼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매년 한 권씩 만들어서 책장 한편을 채워가면 그만큼 더 뿌듯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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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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