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부터 첫만남의 순간까지
공원에 나오면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내가 아닌 개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개의 이름을 물어보지만 내 대답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네? 무광이요?
아니요. 만수무강 하라고 무강이예요.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들은 강아지는 그제서야 낯선 사람에게 제 머리통을 내밀어준다.
가끔은 강아지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름은 아주 중요한 지표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 꽃이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가장 먼저 기준이 되는 표식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강이의 뜻은 만수무강하라는 우리의 소망이 깃들어있다. 덕분에 아직까지 큰 병 없이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부터 무강이가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건 아니었다. 무강이는 우리의 두 번째 강아지다. 우리 마음속엔 첫 번째 강아지, 우주가 자리 잡고 있다.
우주는 나와 남편의 이름을 하나씩 떼어 만든 이름이다. 염소농장에서 태어난 우주는 우리 곁을 3개월 정도 머물고 금방 떠나버렸다. 너무 짧은 생이었다. 건강했던 우주는 중성화 수술 중 쇼크로 짧은 생을 끝냈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우주의 중성화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하게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상담 없이 수술을 진행시켰고, 섣부른 우리의 판단 아래 우주의 짧은 생은 막을 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수술을 마친 우주에게 줄 간식을 사던 도중 병원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채 1km도 안되던 짧은 거리가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우주의 귀에 가장 많이 불러준 단어는 “가자” 였다. 우주는 가자는 말을 가장 좋아했다. 몸이 굳은 우주를 붙잡고 가자고 울었지만 우주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 뒤로 한동안 강아지를 들이지 않았다.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울면서 일어나고, 우주와 걷던 길에서도 울음이 터졌다. 고작 3개월 남짓의 기간동안 참 많은 존재감을 남기고 간 우주였다.
나는 우주의 빈자리를 되새기며 슬픔을 보내는 타입이었지만, 남편은 그런 빈자리를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슬슬 다른 강아지의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기꺼이 그 행동에 동참하기 싫었다.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슬픔에 취해 남편의 슬픔까지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강이를 만났다. 사실 보기만 하고 안 데려올 생각이었다. 이미 한 녀석을 퇴짜놓고 난 다음이었다. 나는 이번에 만날 아이 역시 퇴짜를 놓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무강이를 처음 보자마자 안되겠다는 생각 먼저 들어버렸다.
동물을 좋아한다던 무강이의 주인은 개발 예정 지역에 작은 농장을 꾸려놓고 있었다. 그 좁은 농장 안에 동물이 참 많이도 있었다. 커다란 말 두 필, 진도 두 마리, 프렌치 불독 두 마리와 새끼들, 포메라니언 두 마리와 새끼들, 구석 켄넬에 갇혀 있던 커다란 맹견, 아마 구석엔 닭도 있었던 것 같았다. 무강이는 그 개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말똥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철창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눈을 굴리는 무강이를 우악스럽게 쳐들어 차에 넣는 주인은 환하게 웃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개를 선물 받아서 새끼 치려고 했는데 너무 사고를 쳐서 안되겠다면서. 좋은 개니까 잘 키우라고 말이다.
그렇게 집에 온 무강이. 우리는 무강이라는 이름을 며칠을 고민해서 지었다. 다시는 너를 일찍 보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조금은 촌스럽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무강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이 이름은 우주의 소망까지 더해져 오랜 세월 동안 마음껏 건강하라는 바람이 담긴 뜻이다.
언젠가 무강이도 우리보다 먼저 지구별을 떠나가겠지만, 그 이별이 마냥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가 있는 우주와 볼 수 있으니 그렇게 외롭진 않을테니 말이다. 물론 여기 있는 동안은 우리와 신나게 놀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서도 우주 언니와 함께 놀 수 있으니 무강이의 평생은 결코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까지만 만수무강하자, 무강이. 말도 좀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