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보내고 무강이를 맞이하면서 들었던 결심 중 하나는, 이번엔 정말로 잘 내해겠다는 다짐이었다.
한 번도 개를 키워보지 않은 내가 무려 보더콜리를 들인 것은 순전한 욕심이었다. 그저 큰 개가 좋았고, 바둑이 스타일의 털을 가진 개를 보다 보니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좋다는 말은 보더콜리의 장점으로만 들려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농장에서 뛰어놀던 우주는 줄산책에 익숙하지 않았다. 차가 많은 도시에선 적응하기 힘든 성격이었다. 우주는 계단도 오르지 못했고 계속 앞으로 당겨 걷기만 했다. 그러나 우주는 분리불안이 없었고 타견반응(공격성)이 없었다.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신나게 놀고, 우주만 혼자 두고 장시간 외출을 해도 멀쩡했다. 우리와 함께 산 지 3개월이 됐을 무렵, 이제야 겨우 손발이 맞아간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일상은 우주와 조금씩 태엽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강이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3개월이었지만 개를 키웠다는 경험이 있으니 수월하게 적응 시킬 거라 생각했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무강이는 집에 온 지 일주일도 안되어 바로 분리불안 증세를 나타냈다. 아직 우리와 충분한 유대감이 생기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다. 무강이를 두고 외출했던 첫 날, 네 시간을 울었던 영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강이는 타견반응도 심했다. 우주와 친하게 지내던 리트리버 친구를 만났던 날, 무강이는 바로 싸움을 걸었다. 지금도 무강이는 리트리버와 놀지 않는다.
줄당김 역시 대단했다. 우주가 지속적으로 줄을 당겼다면 무강이는 갑자기 확 튀어나갔다. 움직임을 쫓는 보더콜리의 특성을 진하게 가진 무강이는 오토바이만 보면 달려나갔다. 한번은 목줄이 끊어져 8차선 도로로 달려나간 적도 있었다. 무강이는 여러모로 컨트롤이 힘든 개였다.
여러차례 진땀을 빼고 난 다음에야 우주와 무강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안일했다. 우주와 무강이의 공통점은 같은 견종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이들이 살아온 환경은 너무나도 달랐는데. 그래서 서로 전혀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무강이에게 우주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우주가 이랬으니 무강이도 이럴거라는 이상한 예상이 나를 지배했다. 예상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무강이는 문제견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이 다 똑같은 개일 뿐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했던 것이다.
우주와 무강이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보아왔던 강아지들은 모두 똑같았다. 크든 작든, 어리든 늙었던 모두 하나의 덩어리였다. 그러니 나는 그 수많은 개들 각각의 사정을 이해할 필요 없이 귀여움만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직접 살을 부대끼며 실감한 개는 엄연히 각자 다른 존재였다. 서울사람은 깍쟁이고 부산사람은 무뚝뚝하다는 말, 다르게 보면 심각한 지역차별이자 성급한 일반화이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종에 따라, 크기에 따라 구분짓고 편견을 가지니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니 무강이를 이해하는 게 훨씬 나아졌다. 우주에 대한 기억에 묶이지 않고 그 상황 그대로를 바라보려 애썼다. 우리의 의도를 알아차리길 기다려주었고 필요 이상의 통제를 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속도는 굉장히 느리지만 무강이와 함께 산 지 2년이 지나는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이 방법을 택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우주와 무강이를 만나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나는 동물은 물론 아이들, 노인들 등 나와 다른 무리를 보고 쉽게 일반화하며 거리를 두었다. 짖는 개는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는 아이는 당장 자리를 떠야 매너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짖는 개는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간 걸 수도 있고, 우는 아이는 보호자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전혀 다른 존재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반경이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존재의 개별성을 받아들인 순간 생긴 기적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모든 생명체에게 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그동안 수많은 세계를 만나왔고, 그 중에 우주와 무강이의 세계도 만난 셈이다.
개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밥과 잠만 해결해준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과 말도 통하지 않는, 온전히 다른 존재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 뜻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보는 그 존재와 함께 살 준비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무강이의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매순간 위기와 궁금중의 연속이지만, 개를 키우지 않았다면 겪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무궁무진한 세계를 가지고 있는 무강이와의 탐험은 계속될 것이다. 아마 나는 영원히 너의 세계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겠지. 우리가 더할나위 없는 파트너가 될 때까지, 나는 무강이의 손을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