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굉장히 조용했다. 하도 울지 않아서 엄마는 내가 언제까지 조용한지 보려고 하루 종일 우유를 주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나는 울지 않았고, 엄마는 이러다가 애 죽겠다 싶어서 얼른 젖병을 물려줬다고 한다.
이러한 나의 기질은 성인이 되자 더욱 견고해졌다. 지금도 주변의 친구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나서지 않는다. 그게 편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삶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
내 인생에 우주와 무강이가 들어오자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사라진 단어 이웃사촌.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동네는 어떤지 나에겐 전혀 신경 쓸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에 두 번씩 산책을 나가게 되자 길을 가며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개를 키우기 전,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며 특별한 모임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마치 동호회처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만나는 정모가 매일 있는 걸로 보였다. 그러나 내가 개를 키우게 되자 오로지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만나는 것이라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산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우연한 모임은 장점이 아주 크다. 일단 산책의 목적은 개들의 사회성 향상도 있지만 집에만 있었던 녀석들의 체력을 빼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그럴 때 개친구의 역할이 매우 톡톡하다. 개들끼리 노는 건 사람이 놀아주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체력 소모가 매우 컸다. 공원에서 만나서 30분 정도만 뒹굴고 놀아도 집에서 꿀잠을 잘 수 있다. 이 모임은 사람과 개 모두에게 행복한 산책을 만들어 주었다.
서로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어느 새 지금은 다같이 운동장을 대관해서 놀러 갔다 올 정도로 사이가 끈끈해졌다. 개를 키운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우리는 언제나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는 운이 좋았다. 바로 뒷 건물에 우리와 똑같은 보더콜리를 키우는 신혼부부를 만난 것이다. 이사 온 시기도, 결혼을 한 시기도 비슷한 우리는 나이도 비슷한 보더콜리를 키운다는 공통점이 만나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주가 견생 첫 친구였던 강아지, 제이콥은 무강이의 유일한 남자친구가 되었다. (커버 사진의 갈색 보더콜리가 바로 제이콥이다)
강아지들끼리 인사하는 산책길도 나에겐 충분히 큰 변화였지만, 개가 없어도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번 앞을 지나치는 카센터 사장님, 만날 때마다 큰 소리로 인사하는 공사장 인부 아저씨, 갈 때마다 간식을 한가득 얻어먹는 반려견 동반 카페 사장님. 모두 우주와 무강이 덕분에 이웃이 된 사람들이다.
산책은 개에게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나가는 일은 나의 일상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1년이 지나도 정이 붙지 않았던 동네를 이제 구석구석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동네에 정이 생긴다는 건, 내가 그 경계선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남이 아닌 우리가 되고 내 것이라는 시선으로 좀 더 깊은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눈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세세한 변화를 알아볼 수 있기도 하다.
같은 길을 걷다가도 새롭게 바뀐 가게나 공원의 어느 조경을 발견할 수 있고, 가끔씩 다른 길을 걷는 재미도 겪을 수 있다. 집에서만 틀어박힌 낯선 자의 입장에선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계절을 따지지 않고 걸어야 하는 나는 한 여름 땡볕에도 몸을 던져야 한다. 그 때문에 까맣게 탄 얼굴을 못 알아보는 친구도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피부가 탔다고 속이 상했겠지만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 내리는 비보다 내 몸에서 나는 땀이 더 많으니 우산을 쓰기보다 차라리 맞는 게 더 시원할 때도 있었다. 내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풀밭에 코를 박는 무강이의 뒷모습이 있다면, 이 고생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전혀 조용하지 않다. 멀리서 무강이를 보고 반겨주는 이웃들과 그들을 보고 반가운 내 발걸음이 동네를 채운다. 무강이와 다니는 산책은 나에게 두려움을 덜어내주고 설레임을 안겨주었다. 조용한 이방인에서 시끄러운 동네 사람으로. 일상의 변화가 유쾌하게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