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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13. 2024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하는 짓

기대와 실망의 차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한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잘하라는 것은 못하고 안해도 되는 것은 잘해서 비꼬듯이 터져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무강이가 그런 뉘앙스까지 알아듣진 못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가르치고 기대하고 실망했을까.      


똑똑하다는 보더콜리를 데려오면서 처음 발을 맞추자마자 나에게 걸음을 맞추고 눈을 맞추리라고 기대하고 실망했다. 무강이는 발을 땅에 딛자마자 목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다른 개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조깅하는 사람에게도 달려들었다. 이제 나는 마주오는 무언가가 있으면 나는 반드시 줄을 짧게 잡고 무강이의 눈을 바라보며 통제한다. 


부부와 강아지가 함께 여유롭게 산책하는 광경은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무강이는 자신의 뒤에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있으면 흥분도가 두 배 커진다.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갑자기 튀어나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예민함도 더해져서 주변의 모든 것에 시비를 걸고 우리를 보며 활짝 웃는다. 우리 부부는 거친 호흡에 심장도 콩닥콩닥 뛰는 녀석을 데리고 5분 이상 걸어본 적이 없다. 


단골 카페에 적응하나 싶었는데 이젠 그 카페를 지키겠다고 경비견을 자처한다. 통유리 너머를 가만히 보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눈이라도 마주치면 바로 짖는다. 나는 사람에게 짖는다고 간식을 주거나 칭찬한 적이 없는데도 늘 주변을 경비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진짜로 네가 경비견이었다면 칭찬을 했을테지만 너는 경비견이 아니잖니     


기대와 실망은 일종의 인과관계다.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이 온다. 예상했던 결과가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고 당황하고 좌절한다. 기대를 한다는 건 결과를 예상하기 까지 겪어온 과정에 애정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해봤다. 무강이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기대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무강이에게 좋은 강아지라는 기대를 하기 전에, 나는 무강이에게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을까?     


실망을 하기 전에 기대를 먼저 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니 우리는 무강이에게 실망을 하기 전에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아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강이에 대해, 개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무강이의 말썽을 보고 실망하고 야단을 치기 보다 왜 짖었는지 인과 관계를 열심히 탐색한다.      


문제의 기준을 다르게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의 기준으로 개를 판단하기 전에 개의 인과를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앞뒤 상황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공유했다. 무강이의 모든 행동을 제한하지 않고 관찰부터 해보기로 한다.      


산책하면서 눈을 마주치기까지 2년이 걸렸다


무강이는 운동신경이 매우 좋다. 특히 동체시력이 좋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쫓는다. 공이나 원반은 말할 것도 없고, 여름엔 날아다니는 날벌레를 잡는다고 입이 바쁘다. 노을이 긴 오후엔 집안을 날아다니는 먼지를 잡는다고 털을 날리며 뛰어다닌다. 요즘 공원엔 번식기를 맞은 까치들이 둥지를 지킨다고 낮게 날아다니는데, 이젠 그 까치를 잡겠다고 귀를 쫑긋거리며 씨름 중이다. 네가 아무리 빨라도 날아다니는 새를 잡을 수는 없는데 말이다.      


체력 또한 일품이다. 지치지 않는 보더콜리 답게 언제나 쌩쌩하다. 계단을 만나면 단숨에 꼭대기까지 뛰어오른다. 전혀 나라는 존재를 기다려주지 않아서 줄을 잡고 있는 팔에 근육통이 온다. 가끔 줄을 길게 늘어뜨린 다음 몇 번씩 뺑뺑이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면 자신만 계단을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몇 번 뛰다가 어느 새 내 옆에 붙어서 오른다. 눈치도 참 빠르다.      


성격도 급하다. 급한 성격에 빠른 눈치가 똑똑하고 잔머리 굴리는 강아지를 만들었다. 개인기를 가르치면 성질을 못이겨서 짖기도 하지만, 며칠 내로 금방 배운다. 억양이나 발음이 비슷한 다른 명령어를 입력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린다.      


무강이는 단번에 우리를 의존했다. 우리에게 그렇게 큰 복종을 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백이 누군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무강이를 데려온 다음날 외출을 했는데, 4시간 동안 우릴 찾으며 하울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린 고작 무강이와 단 하루 같이 잤을 뿐이었다. 하룻밤 새에 무강이는 우리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무강이에게 얌전히 산책하는 법, 강아지를 마주쳐도 짖지 않는 법 따위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지만 무강이는 엉뚱한 걸 배우고 있었다. 무강이는 우리 옆에 있는 걸 좋아하고 우리와 노는 게 제일 재밌다는 사실이다.      


무강이는 이미 우리와 사는 법을 스스로 익히고 있었다. 개와 사람이 함께 산다는 건 얌전히 앉아있는 것만이 아니다. 말도 안 통하는 이종의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밥을 나눠먹는 식구가 되었다.      


아기의 옹알이는 부모가 제일 잘 알아듣는 것처럼, 우리도 무강이의 몸짓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역시 무강이의 언어를 배우며 소통하는 법을 익힌다.      


가르치지 않아도 잘하는 짓. 다른 말로 본능이라고 부른다. 움직이는 것을 쫓는 양몰이견의 본능.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의 본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의 기질을 억누르려는 사랑의 본능.      


무강이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며 인간의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부족한 건 오로지 나의 훈련 실력일 뿐이다. 사람만 노력하고 이해하면 우리의 산책은 즐거울 수 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실망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게 만든다. 어쩌면 앞으로의 의욕마저 꺾어버릴 수 있는 무서운 감정이 바로 실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강이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 집중하여 살기로 했다. 한 나절 한 나절의 산책이 쌓여 지금의 무강이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조금씩 쌓으면 될 것이다.      


3살 기념 케이


어느 새 무강이는 세 살이 되었다. 4개월 꼬질꼬질한 강아지를 데려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어엿하게 산책도 하고 단골 카페도 생기고, 여기저기 간식 주는 이웃들도 사귀면서 동네의 유명인사가 되어가고 있다. 차곡차곡 쌓은 산책의 순간이 없었으면 이루지 못했을 일이다.      


기대 이전에 과정을 충분히 쌓으면 실망은 따라오지 않는다. 무강이의 모든 순간은 과정이 된다. 실망하기 이전에 뒤를 돌아보자. 조금씩 변한 나날들이 쌓여 지금을 만들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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