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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06. 2024

너무 다른 너와 나의 속도

너는 너무 빠른데 너무 느려

오늘 아침,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제이콥을 만났다. 우연히 만난 우리는 자연스럽게 뒷산으로 올랐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흥분한 무강이는 내리막길에서 내달렸다. 그 바람에 낙엽을 밟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미끄러져 엎어져버렸다. 두 강아지는 내가 괜찮은지 코를 킁킁 거렸다. 별일 없는 걸 확인한 무강이는 내 주변에 떨어진 사료를 주워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럴 때마다 저 얄미운 새끼라는 욕이 안 나올수가 없다.      


오랜만에 산책을 하다 넘어졌다. 무강이는 평소에도 줄을 당기는 편이다. 아무 것도 없는 도시에서도 약간의 흥분을 하는데 산에 가면 흥분이 더 심해진다. 이리저리 갈래길이 나 있고 낙엽도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가파르기까지 하면 더욱 신이 난다. 길이 없는 곳도 만들어서 갈 기세로 산을 오른다. 오르막길에서 내달리면 그나마 나은데 내리막길이면 문제가 달라진다. 무강이는 줄을 잡고 있는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빨리, 더 빨리를 외친다.      


반면 나는 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동네 뒷산도 무강이가 아니라면 한 번도 가지 않았을 곳이다. 나는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한다. 깊이, 더 깊이 잠수하는 걸 좋아하는 나와 더 높이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무강이와의 만남은 어쩌면 상극일 수도 있겠다.      


SNS에 보더콜리를 검색하면 드넓은 초원에서 오토바이보다 더 빨리 달리는 보더콜리의 시원한 질주 영상이 뜬다. 사람들은 그 개를 보며 개는 저렇게 키워야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공감하며 영상을 본다. 무강이와 같은 종이기에 매번 본 영상임에도 스킵하지 않고 끝까지 보곤 했다.     


지금 멈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

 


무강이는 참 빠르다. 밥도 빨리 먹고 간식도 빨리 먹는다. 너무 빨리 먹어 삼키지도 않고 다 해치워버린다. 달리기는 말할 것도 없다. 가끔씩 오프리쉬를 해주면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쉬지 않고 달린다. 계속해서 달리는 무강이를 보고 있자면 자꾸만 멈추라고 줄을 당기는 게 미안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무강이는 모든 면에서 빠른 건 아니다. 숨이 찰 때까지 빠르게 달리는 건 잘하지만 우리와 호흡을 맞추는 데에는 아주 느렸다. 처음 무강이와 산책을 나갔을 때 모든 행동이 다 문제 행동으로만 보이기도 했다. 얼른 그것들을 고쳐야 올바른 견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강이의 속도는 우리의 많이 달랐다.      

개를 교육 또는 훈련을 시킬 때 둔감화라는 말을 많이 쓴다. 자극을 점점 강화하여 마침내 그 자극으로부터 둔감해질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무강이 역시 도시의 모든 것이 고자극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둔감화는 필수였다.      


둔감화는 몇 번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를 잡으려는 무강이가 마침내 오토바이를 얌전히 보낼 수 있을 때까지는 약 2년이 걸렸다. 멀리서 들리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부터 시작해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수십, 수백대의 오토바이를 만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강이는 오토바이를 보면 심장이 뛴다. 가끔 보행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오토바이를 보면 달려들기도 한다.     


예전의 무강이를 본 사람들은 지금의 무강이를 보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속도보다 더 느리게 무강이는 도시와 사람들에게 적응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세상을 보는 기준이 당연하게도 인간에게 맞춰져 있어서, 이런 무강이의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무강이는 이미 본능을 억누르고 우리와 보폭을 맞춰주고 있었다. 도시에 살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무강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고 있는 것이었다. 개에게 이뤄지는 각종 교육과 훈련은 어떻게 보면 개의 본능을 억누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의 본능은 빠르게 달리는 것이고,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도 있어야 하며 자신의 앞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것을 통제할 수도 있어야 한다. 양몰이견으로 태어난 유전자의 본능은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양을 한 군데로 모으고 계속 감시해야 한다. 보더콜리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정 반대로 이뤄져 있었다. 빠르게 달려서도 안 되고 날아가는 새를 잡아서도 안 되었다. 자신의 앞으로 마구잡이로 달리는 오토바이를 잡으려고 하면 호되게 혼이 났다.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양을 모으려고 했지만 모을 양도 없었고 오히려 제발 좀 쉬라며 타박만 받았다.      


무강이와 나의 속도는 매우 달랐다. 무강이가 빨리 달려야 할 순간과 내가 빨리 달려야 할 순간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강이가 항상 본능을 억누르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갑갑하고 좁은 도시 산책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달릴 수 있는 순간이 있으면 최대한 스피드를 만끽하게 도와주고 있다.      


다만 그럴 때에도 콜링을 하면 온다던가, 멀리서 다른 사람이 보이면 바로 줄을 잡는다던가 하며 무강이의 속도를 조절해주고 있다. 나는 완벽한 전문가도 아니며 사고는 언제 생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서 다니고 있다.      


너무 빨라서 안보이는 무강이의 발재간


그래서 오늘 아침처럼 산책을 하다 넘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대자로 엎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줄을 놓지 않았다. 팔에 근육통이 생겨도 줄을 놓지 않는다. 아마 교통사고가 생기는 순간에도 나는 줄을 놓지 않을 것이다.      


무강이는 너무 빠른데 너무 느리다. 달리기는 아주 빠르지만 우리와 발을 맞추는 속도는 아주 느리다. 내 조급함이 무강이를 더욱 느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강이의 줄을 놓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속도를 맞춘다면 줄을 잡은 손에 조금 느슨하게 힘을 뺄 수도 있겠다.     

무강이는 언제나 빠르게 달릴 수만은 없다. 브레이크 없는 8톤 트럭의 결말이 어떤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무강이와 우리의 행복한 공존을 위해 우리는 브레이크를 당겨줘야 한다.      


성격이 급한 무강이는 빠르게 밥을 먹고 얼른 간식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삐약삐약 소리가 구슬프게 우리 주변을 맴돌아도 애써 무시하고 시선을 주지 않는다. 커다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삐약삐약 울어대면 마음이 아프지만 무시해야 한다. 그러면 잠시 후 끙, 소리 내며 자리에 앉는다. 그제야 간식 상자가 열린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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