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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Apr 17. 2024

지치지 않는 강아지

많이 놀기 위해선 쉬는 법도 알아야지

무강이와 산책을 나가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견종 관련 내용이다. 보더콜리라는 답을 말하면 사람들은 아이고, 탄식하며 나를 향해 위로의 눈빛을 보낸다. 보더콜리는 지치지 않는다면서요. 맞아요?     


네. 맞아요. 나는 웃으며 무강이의 줄을 잡는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나를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헤어진다. 중간에서 무강이만 잔뜩 꼬리를 흔들고 있을 뿐이다.      


예전엔 보더콜리라는 견종 자체가 생소했는데 지금은 보더콜리가 지치지 않는 무한체력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각종 미디어에서 똑똑한 강아지로 이름을 알린 것도 있지만 그와 비례하는 체력 역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똑똑한 건 그만큼 하하고 싶은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이유는 체력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라는 걸, 무강이와 함께 살기 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달리는 무강이 찾기


무강이는 정말 지치지 않았다. 다른 강아지와 비교해도 얘는 쉽게 지치지 않았다. 다른 강아지들은 함께 어울려 놀면 보통 30여분이 지나면 하나둘 지쳐 엎드리기 시작한다. 숨을 고르다가 다시 한번 뛰어놀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져 마침내 놀기를 그만두는 때가 온다. 그러나 무강이는 다른 친구들이 지쳐 엎드리면 혼자서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쉬지 않고,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계속 뛰었다. 사람들이 무강이를 보며 대단하다며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무강이는 혼자도 잘 뛰었다. 어느 정도 원반을 하고 지겨워지면 혼자서 빙글빙글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 30분을 혼자서 뛰다 집에 들어온다.      


카페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놀러 나간 산책에선 뛰는 게 당연했지만 카페에선 행동반경이 극도로 좁아진다. 그러면 보통의 강아지들은 10분 정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엎드려 잠을 청한다. 속 편하게 누워 자는 녀석도 있다. 무강이는 달랐다. 무강이는 카페에 있는 시간 내내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계속 사장님의 동태를 살피고, 카페 바깥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카페 안의 손님들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을 받았다.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눈은 아주 바쁘게 돌아갔다.      


이런 걸 우리는 보더콜리의 종특이라 부르기로 했다. 양몰이견의 본능이 워낙 강한 무강이는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흥분을 쉬이 가라앉히지 못해 몇 시간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좁은 집안을 계속 돌아다니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베란다와 창문을 번갈아 살펴보며 계속 확인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야 겨우 엎드려 잠을 청할 정도였다.      


토끼 : 죽여줘... 


이렇게 쉬지 않는 무강이도 무한 체력은 아니다. 무강이는 지쳐도 쉬지 않았다. 무강이가 어렸을 때 반려견 수영장에 간 적이 있었다. 수영은 사람에게도 개에게도 높은 체력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제대로 산책을 못하던 무강이에게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어 데려간 수영장이었다.      


그러나 무강이는 수영장에서 논 다음 날 혈뇨를 봤다. 양도 꽤 많았고 색깔도 진해서 너무 놀랐다. 알고 보니 급격하게 체력을 쓴 개는 종종 그런 일이 있다고 했다. 만약 반려견이 콜라색 소변을 봤다면 전날 많이 놀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무강이는 혈뇨를 보고서도 멀쩡하게 산책을 했다. 밥도 잘 먹었다. 만수무강하라고 지은 이름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가 싶었다. 한편으론 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 보여 걱정이 됐다. 건강하게 뛰어노는 모습은 언제 봐도 뿌듯하지만, 쉬고 싶어도 쉬는 법을 몰라 뛰기만 하는 강아지는 걱정이 된다.      


나는 무강이에게 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유전자에 새겨진 일만 하는 워킹독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릴 순 없겠지만, 지치면 쉬어도 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우리는 너를 계속 안아줄 거라고,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우연히 강아지와 함께 가만히 있는 연습을 해준다는 원데이 클래스를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강아지와 함께 가만히 앉아있는 게 수업의 내용이었다. 수업을 들은 무강이는 정말 얌전히 엎드려 30분 이상을 가만히 있었다. 주변에 자동차가 시끄럽게 지나가고,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눈빛을 주는데도 흥분하거나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무강이가 벌떡 일어나면 다시 엎드리라는 정도의 신호만 주었을 뿐이었다.      


포인트는 무강이에게 너무 가까운 자극들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다녔던 카페, 수영장, 친구들과 함께 했던 잔디밭 등등은 무강이를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부터 우리는 조금씩 쉬는 연습을 했다. 산책을 하면 내리 걷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 앉아서 5분 이상은 쉬었다. 왜 앞으로 가지 않는지 갸우뚱하던 무강이도 이제는 벤치에서 익숙하게 시간을 보낸다. 아직 스스로 앉지는 못하지만...      


터그맛을 보여주는 무강이


무강이는 어제도 오늘도 계속 달린다. 무강이는 앞으로도 쉬이 지치진 않을 것 같다. 도대체 언제 지치냐고 죽상을 하다가도 막상 지친 모습을 보이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지치지 않는 강아지는 무강이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었다. 쉬는 건 우리가 알아서 조절해 줄 테니 너는 언제까지고 신나게 달리며 놀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하나의 행사였던 나는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유산소만 하다가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아서 헬스클럽까지 끊었다. 적어도 너보다는 오래 버티기 위한 체력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너랑 오래오래 놀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무강이와 함께 반려견 수영장이나 반려견 운동장에 가지 않는다. 혼자서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제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천천히 걸어도 좋으니 무강이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같이 걷는 법을 배우는 게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무강이와의 호흡은 전보다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무강이와 갈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예전보다 더욱 스스럼없이 새로운 곳의 문을 두드리는 나를 발견한다.      


만수무강하라고 이름도 무강이라고 지은 무강이는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나는 그 뒤에서 열심히 줄을 잡고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중이다. 네가 지치지 않고 더 많이 놀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브레이크를 잡아줄 각오가 되어 있다. 많이 놀기 위해선 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무강이는 알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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