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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y 02. 2024

환장의 짝꿍

그래도 우리는 환상의 짝꿍

오후에 제이콥네 한테 급하게 연락이 왔다. 밥과 산책을 챙겨달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와 제이콥은 아주 각별한 사이다. 제이콥의 첫 친구는 우주였다. 우주는 우리가 무강이를 데려오기 전에 키웠던 강아지였다. 허무한 사고로 일찍 하늘의 별이 된 우주를 기억하는 유일한 강아지가 제이콥이었다. 우주가 죽고 나서 제이콥을 만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멀리서 갈색 강아지가 보이면 가슴이 설렐 정도로 우리는 제이콥을 좋아한다.      


나는 이전에도 종종 제이콥을 챙겨주었다. 내가 집에 방문하면 제이콥은 무강이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반겨준다. 무강이는 다짜고짜 만지라고 몸을 들이대고 로켓이 발사하듯 총알처럼 튀어 안기는 반면, 제이콥은 내 품안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동그랗게 몸을 말아 내 손길을 받다가 벌떡 일어나 얼굴을 마구 핥아준다. 포옹을 하듯 두 발로 내 어깨를 잡고 얼굴을 핥다가 가끔 코를 살짝 깨물기도 한다. 아프지 않게 살살 힘을 주는 게 애정의 표시라고 한다.      


귀여운 제이콥


이렇게 밥은 챙겨주었지만 산책은 처음이었다.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돌진하는 무강이와 달리 제이콥은 굉장히 느슨한 산책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가끔 무강이와 둘이 함께 산책을 하면 튀어나가는 무강이 때문에 500미터 이상을 걷지 못하고 끝나곤 했다. 너무 버거워하는 나를 대신에 줄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 때 제이콥과 무강이의 줄을 바꿔 잡았는데, 줄을 놓은 것처럼 너무 느슨한 상태에 감탄이 나왔다.      


그래서 제이콥과 단 둘이 나가는 산책은 얼마나 편할지 기대가 되었다. 튀어나가는 무강이를 잡느라 내 어깨 근육은 항상 빠져있는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이번 산책으로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밥을 먹이고 야심차게 집 밖으로 나갔다. 마킹부터 힘차게 하며 산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무강이와 제이콥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수컷과 암컷이라는 본연적인 차이부터 제이콥과 무강이의 간극이 엄청났다.      


제이콥의 산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몰랐기 때문에 가자는 대로 끌려갔다. 제이콥은 공원으로 나를 끌었다. 다른 강아지가 놀고 있었는데 안면이 있는 친구인 듯 즐겁게 놀았다. 짖기도 하고 잔디에 온 몸을 비비며 지렁이 댄스를 추기도 했다. 무강이는 친구와 놀 때 짖지도 않고 잔디에 몸을 비비지도 않는다. 낯선 강아지와는 대면조차 하지 않는다. 다른 친구와 놀자고 애교를 부리는 제이콥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즐거운 놀이를 마치고 다시 걸었다. 제이콥은 친구와의 만남이 끝나자 나를 카페로 끌었다. 무강이와도 자주 가던 카페였기에 마음 편히 들어갈 수 있었다. 사장님이 놀란 얼굴로 제이콥과 나를 반겨준다. 제이콥은 익숙하게 들어가 간식을 얻어먹었다. 나는 생각도 없었던 커피를 주문했다. 강한 노을 때문에 날이 더워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에겐 해내야 할 미션이 있었다. 실외배변을 하는 제이콥의 배변을 도와줘야 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하염없이 걸어도 제이콥의 엉덩이는 내려앉지 않았다. 곳곳에 마킹만 할 뿐 배변을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저녁 시간대의 노을은 강했다. 눈부신 노을에 땀이 났지만 걸어야 했다. 이리저리 걸으며 동태를 살폈으나 살랑살랑 움직이는 엉덩이는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 나온 지 한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잘하면 두 시간도 걸을 수 있겠는데, 생각하던 순간 드디어 제이콥이 끙, 힘을 주었다.      


숙제같은 배변을 마치고 나서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거의 두 시간을 걸었지만 줄을 한 번도 끌지 않았던 제이콥이 대단했다.      


하지만 나와 제이콥은 그렇게 순탄한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시그널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의 리드가 어색한 제이콥은 시도때도 없이 주저앉아서 자신의 보호자를 기다렸다. 처음엔 그 기다림을 기다려주었던 나는 시간이 지나자 어쩔 수 없이 제이콥을 끌어야 했다. 어르고 달래며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겨우 산책을 마쳤다.      


느슨한 줄의 힘은 대단했지만 나 역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지, 집에 돌아오자 어깨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밤새 이어졌다. 느슨하고 여유로운 산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팔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던 탓이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허공을 두 시간 내내 움켜쥐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니 팔에 저릿저릿한 감각이 돌기 시작했다. 제이콥은 줄을 당기지 않아서 팔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긴장 탓에 뒤늦은 통증이 팔을 감았다.     


 

무강이에게선 절대 볼 수 없는 산책 중 멈추는 강아지


다음 날 다시 무강이와의 산책이 시작되었다. 밖을 나오자마자 팡 튀어나가는 익숙한 감각에 몸의 중심을 뒤로 잡았다. 나를 보며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눈을 마주치며 간식을 주고 다시 출발한다. 익숙한 산책이 다시 펼쳐졌다.      


무강이는 팡팡 튀어나가고 나는 힘을 주며 버텼지만 팔은 아프지 않았다. 나는 무강이가 언제 놀아달라고 보챌지 알고 언제 배변을 할지 알고 있다. 언제 튀어나갈지, 언제 앉자고 나를 끌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시그널을 알면 서로의 산책이 한결 편하다. 이런 걸 우리는 호흡을 맞춘다고 한다.      


힘은 들지만 긴장은 전혀 없었던 산책이었다. 무강이는 내 목소리를 알아차려 돌아보고 내 손짓에 멈춘다. 내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할 줄 안다. 우리는 어느 새 이렇게 죽이 척척 맞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강아지가 말을 잘 듣는다고 웃어주기까지 한다.      


말 안듣는 내 강아지


무강이와 나는 서로 정반대의 성향이며 절대 맞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한 팀으로 만들어주었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나도 무강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강이도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서로의 노력이 힘을 합쳐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말과 뜻이 통하지 않는 이종간의 존재가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완전히 뜻이 잘 맞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몰라 고민하고 공부한다. 이 공부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내향형 인간이 외향형 강아지를 만나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생각을 알아낼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호흡은 더 척척 맞는 환상의 짝꿍이 되어있지 않을까? 물론 그 전까지 우리는 환장의 짝꿍으로 서로 줄을 당기며 산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고뭉치 무강이와 수습하느라 바쁜 우리들의 일상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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