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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Feb 27. 2023

흔들리는 이땅의 모든 용기들에게

세상에 없던 길을 걷는자의 숙명, 불안에 대하여

주어지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은 압도되는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은 막막하다.  롤모델이 없는 길을 개척 하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던 길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리가 이전 세대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사람들은 자본을 창출 한다. 그래서 이제는 1)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한가 2)기존 체계가 아닌 길을 걸을 만큼 얼마나 담대한가 그리고 3)약간의 현실 감각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갈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감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돈을 만들려면 어떻게 돈이 돈을 만들 수 있는지 그 세상의 로직을 이해하는것은 필요하다. 이 새로운 세상도 역시 세상이 때문에.  세상에는 언제나 그 세상의 로직이 있는 법이기 때문에. 세상이 자뀌며 로직이 바뀌었다는 것이지 로직이 완전 사라졌다는건 아니다.

얼마나 지금 세상의 로직을 잘 파악 하는가, 그 현실 감각은 여전히 굉장히 중요하다.  


돌아와서, 이 세가지 역량만 갖추면 자기가 원하는 최적의 상태로 살수있다고 믿는다.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언제나 가장 우선이 될수있는 삶의 형태 말이다. 이게 곧 내가 정의하는 행복이다.

 행복은 본인이 갖고 있는 가치가 타고난 것이든 만들어진 것이든 그것이 계속 지켜질수 있는것을 말한다. 불행하게도 세상을 살다 보면 그렇게 못살게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공간의 자유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데 풀타임잡이  자본을 창출 하는, 즉 그냥 밥빌어먹고 사는 유일한 방법인 세상에서는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불행이 디폴트인줄 알았다. 다그렇게 사는거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옛날에는 이걸 가능하게 하려면 대단한 능력과 자원이 필요한건줄 알았다. 특히 어릴때 나는 약했고 무지했기에 정말 강해보이고 실제로도 강한 세상의 논리앞에서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되는줄 알았어. 그걸 거스르는 건 정말 큰 일이었던거야. 근데 나는 순응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지.

뭔가 될 것 같은 데 정말 방법이 없나. 想辦法 진짜 안 되는 거야? 의구심을 가지고 일단 go를 외쳤던거야.  그 시작이 교대를 가지 않은 거였어.  내가 생각하는 가치, 기억하기론 성장과 서울라이프 였던것 같다, 그걸 좇아서 타협하지 않고 왔던거지. 물론 항상 그런 선택만 한것은 아니었다. 아까도 말했듯 당시 나는 지금에 비해 겁쟁이었기에 약 60대40의 비율로 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를 좇는 선택을 번갈아가며 해갔다. 그나마 내편을 들어준게 조금더 많아서 다행인건지, 그렇게 하나씩 선택이 쌓이며 내게 확신을 준것같애.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길이 다 있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전혀 불안하지 않느냐?

불안해. 다만 그 빈도와 주기가 약해졌을뿐 가끔씩 압도되는 감정, 턱막히는 막막함, 텅빈 공허함이 물밀듯이 찾아와. 어제 오늘이 그래. 그럴때마다 마법약을 먹은 덤블도어처럼, 지난 각오는 새까맣게 잊고 투정많은 어린아이가 돼. 아 나 뭐하고 있는거지, 겁도없이 여길 어떻게 온거야. 이렇게 형편없이 해서돼? 아 나 못할거 같아. 두려워 무서워 외로워.

이 뿌리는 아마 가슴 깊이 자리한 안정감이라는 버튼과 연결이 되어있는거 같아, 어떤 이유에서인지(현생의 위치 불안정과 같은 실질적인 이유나 아니면 호르몬이나..) 갑자기 한번 버튼이 눌리면 생각과 기조에서 쉽게 벗어나지지가 않네. 그리고 이 안정감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전 남자친구버튼이 같이 울리고 말이야.


이런 불안감은 꽤 불편하다. 그래서 해결하고 싶다. 고민을 해봤는데 어디에도 의지할일은 아니고, 오직 나에대한 믿음을 키우는것, 스스로 더 강해지는것 밖에는 궁극적인 답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지난 선택들과 결국 원하는대로 가고있는 이 결과들을 증거 삼아 말이다. 또 나처럼 흔들리고 있을 세상의 수많은 용기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말이다. 그렇다 이글은 흔들리는 나에게 주는 위로의 말이었다. 기성체계를 걷지 않는 모든이들에게 숙명처럼 다가오는 숙제에 나는 이렇게 임하고 있다, 기록하는 글이었다.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을, 그리고 분명 다시또 흔들릴 미래의 나를 위해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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