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안올줄로만 알았던 그분이, 내게도 오셨다
절대 안올줄로만 알았던 그분이, 내게도 오셨다.
지난 주말, 극심한 피로와 인후통이 생겼다. 요즘 너무 무리했나보다, 별대수롭지 않은 목감기라고 여기다가
또 엊그제 다녀온 페스티벌에서 설마? 하는생각에 닿으니 그분일 수 도있겠다 싶었다. 열이 나고, 두통이 시작되면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다다음날 오전, 회사가기전 내과에 가서 신속항원검사 양성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일주일간 꼬박 14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서 홀로 격리를 하게 되었다.
사실 코로나에 걸리는 상상?은 이미 수차례 해봤다. 일종의 원치않았던 시뮬레이션인데,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며 번민을 일으키는 시기에 특히 그러했고,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조금이라도 바이러스에 접촉된 행적이 있었다 하면 설마병이 돋곤 했다. '설마 나 코로나?' 지난 2020년부터 간헐적으로 앓던 병의 2년반만의 종착지에 드디어? 도달한 것이다. 진짜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그동안 많은 데이터를 통해 '코로나에는 쉽게 걸리지 않는다'라는 가설이 설립된 탓, 그만큼 운이 좋았던 탓에 이번 유행때도 (아니 어쩌면 영영) 코로나 확진 위험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닿지 못했다. 사람이 와글와글한, 온갖곳에 습기가 가득한 그런 페스티벌을 가면서도 말이다. 마스크만 잘 끼면 큰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나중에 진료를 볼때도 도움이 된다고 하고, 당장 엊그제 증상이 잘 기억나지 않길래 기록용으로 남겨본 증상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 일지
7/15 금
지하철타고 집오니 12시. 딱히 춥지도 힘들지도(조금) 않앗고 목을 너무 써서 조금 걸걸하게 아프다 정도. 할일 다하고 3-4시쯤 잠.
7/16 토
전날 거의 4시에 자고 다음날 수업때매 7시반에 일어남. 그렇게 수업을 3시반까지 내리함. 몸이 특별히 힘들진 않앗고 목은 좀 걸걸하게 아팠음. 그냥 쉬었나보다함. 그러다 엄마랑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중간중간 이동하며 계속 졸음. 그뒤로 씻고 매트에서 요가하다 살짝 잠들엇는데 그때부터 몸살이 약간 든 느낌.
7/17 일
-오전에 일어나니 목이 너무 아픔. 목감기 비슷. 목도 잠김. 기상하는것 도 너무 어려웠음. 그래도 10시에 수업은 진행함. 클라이밍 약속 취소. 수업끝나고 단백질위주 밥먹고 한 3-6시 잔듯. 여전히 목은 아팠고 열은 없엇음. 두통도 없던듯.
7/18 월
-오전 : 목이 아프고(어제보단 덜했나..?) 몸살기가 슬슬 생기는 느낌. 열이 처음으로 나고 두통도 좀 생김. 오전에 자가키트 햇는데 음성뜸. 고민하다가 일단 출근했는데 에어컨때매 너무 춥고 두통 미세하게 계속됨. 불안해서 밥은 혼자 먹음. 약간의 마른 기침 동반. 오후쯤 두통심하고 몸살기가 심해짐. 5시쯤 퇴근했으나 병원에서 서류 떼야해서 지하철, 버스, 병원에서 계속 에어컨 쐬느라 진짜 추웠고 몸살기에 고생함. 코엑스에서는 심지어 뛰어다님. 그렇게 집도착하니 11시인데 몸살기 너무 심하고 잘때쯤 되서는 두통도 심하고 열도남. 목이 막 아프진 않음
12-1시쯤 되서 잤음
7/19 화 - 확진판정
-오전 : 7시쯤 깼고 10시까지 다시잠.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심한 발열, 두통, 몸살/근육통때문에 움직이기가 힘듦, 몸에 힘이 없어서 걷기도 힘듬, 약간의 마른 기침, 입맛도 딱히 없어서 치즈떡 반 먹고 약먹고 잠
-약처방받고 한숨 자고 나서 2시 : 에어컨 안틀고 잤더니 땀 뻘뻘흘리며 자고 인남, 열 잡힘, 두통잡힘, 목아픈거 잡힘, 약간의 기침 계속남, 목소리는 계속 잠김. 치즈떡 남은 반 먹고 약먹고 또 잠
-한번더 자고 인나니 6시-9시 : 약 두통,열, 인후통, 근육통 없음. 기침은 좀 있음. 목 엄청 잠김. 아마 오래 자서 인듯. 헌데 일어나서 수업하려니 엄청 어지러움, 현기증, 식은땀 나서 바로 눕고 수업 취소함. 뭐 안먹고 약 독해서 인듯. 겨우갸우 인나서 죽먹으니 좀 나아서 죽먹고 닭가슴살 먹고 차가운 수박먹고 시원한 사과주스 먹음. 비타민 자양강장제도 먹음. 그라고 12쯤 넘어가니까 인후통 기침은 좀 생김. 찬거 먹으면 안되나봄. 약기운은 심한느낌이라 일단 오늘 저녁은 스킵
지금(새벽2시)은 목조금 답답하게 아픈거랑 기침나옴. 가래는 가끔 잇긴한데 심하지 않음
폐쪽 통증이 오후에 한번 정도, 지금 한번 느껴지긴 했는데 전혀 심하진 않고 그냥 어 이게 뭔느낌이지? 하고 찰나에 지나가는 정도.
7/20 수
하씨 기억이 잘 안나긴 하는데 갠차나졋음
김치찜 시켜먹음 와씨 핵존맛. 그라고 저녁은 고구마에 초당옥수수로
7/21 목
아침에 일어날때 야악간 목아픔 있음. 하루종일 전반적으로 기침이 좀 남. 누울때 코막힘 좀 잇음. 목소리는 계속 잠겨있음.
두통 열 몸살 없어서 약은 아침, 밤(거의 새벽2시?)에 먹음. 먼가 약 안먹으니 머리 아플락 말락 한거같아서?
7/22 금
일어났더니 상쾌. 어제 밤에 먹고잔 약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약간 맹한감은 있음. 목도 딱히 안아프고 기침 안나고 열,두통 없음. 몸살 없는지는 한참 됐고. 코막힘이 좀 심하고 냄새를 못맡는듯? 코막힘은 어제부터 조금씩 잇엇는데 누웠을때 콧물 코이는 정도지 이렇게 왼쪽이 꽉막힌적은 없는듯 ?
에어컨 쐬서 그런지 약간 머리가 아플락 말락 하는건 있음. 에어컨을 쐬지 말아야할 문제인가.. 흠
저녁쯤에는 기침ㅇ 자주 나옴. 수업때는 기침 참느라 애좀 먹음. 근질근질!
7/23 토
아침에 일어나니까 갠찬음. 어제 밤에 약먹고 자긴함. 오전내내 수업할때 목소리 계속 잠겨있음. 가래같은거 좀 나왔고 8시수업시에는 기침도 좀 나오려고 함. 그 이후론 갠춘. 하루종일 약 안먹엇는데 이렇다할 증상은 없음.
다만 점심부터 밥먹엇는데 맛이 안느껴짐. 코가 막혀서 근가.. 단맛밖에 모르겠음. 증상
그이후로 지금(7/27 화)까지 후각,미각 상실 증상외에는 모두 회복.
그럼 후회가 남느냐?
남는다. 걸려보니까 안걸리는게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걸리기 전에는 '언젠가 한번은 걸리니까, 걸리드래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헌데 우선 확진 후 최소 3일은 꽤 고통스러웠고, 여러 신박한 후유증이 나오는 것을 보며 웬지 모르게 두려운 감정이 살짝이지만 일었다.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접한 기분이 이런것일까. 물론 실제로라면 아마 이것의 몇배는 더 압도되겠지만. 아직 인류가 접하지 못한 코로나의 휴유증 최종_최종_최종 ver. 이 남아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기저질환자다.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어 다른이들보다 더 조심했어야했다. 사실 그런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왔고, 지난 시간 1년이 넘도록 백신을 맞지 않았던 이유다. 남들보다 조금더 유난을 떨며 모임을 피했고, 그과정에서 친구도 여럿 잃었더랬다. 그런데 이리도 허무하게 걸려버리고 말다니!
정말이지 위기는 방심할 때 찾아오는게 맞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어쨌을건데?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니, 하고싶은것 가고싶은곳 다시 꾹꾹 누르고 조심했어야했을까. 팬데믹이 끝나니 뭐하니 하는 이 시국에! 그렇다면 언제까지 했어야하는 걸까? 이 또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조심은 하되, 내게도 찾아오면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더 강력해질 이후의 내 모습을 기대하며 묵묵히 이겨내는게 가장 좋은 전략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게 나의 방식이었고.
빗겨가지 못한 코로나 블루
무엇보다 곤란했던건 일주일이었지만 잠시 찾아왔던 코로나 블루였다.
코로나 걸리기 전 나의 인생을 짤막하게 소개해보자면, 정말이지 그 어느때보다도 밀도있게, 한편으로는 체력을 몰아붙이며 살고 있었더랬다. 어떠한 불안이나 부정적 생각이 파고틀 틈이 없게. 사고와 루틴이 그야말로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하루하루를 만들어냈다고 보는편이 맞겠다.
헌데 코로나에 걸리고 우선 루틴이 무너졌고, 주의를 환기시킬 외출이 부재했다. 해야할 일이 있는데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게끔 무기력이 온몸을 감쌌고, 실제로 힘이 딸리기도 했다. 어찌나 그렇게 졸리던지.. 틈나는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다보니 마음의 부채감은 늘어나는데 정작 하지는 않고, 눈만 껌뻑이며 생각만 많은 괴로운 상태에 도달하고 말았다. '할일 있는데 안하는 상태'가 정말이지 무기력과 우울을 낳는 최적의 밭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나도 취약한.. 바로 그 상태.
그러면서 생각이 감정에 까지 미치게 되었다. 아 무기력하다. 아 자신이 없다. 나 목표 이루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내 몸 하나건사할 수 있을까? 안정감을 포기하고 도전을 택한게 잘한 선택이 맞았을까. 잘 헤어진게 맞을까 .
그렇게 안갔으면 하는데까지 결국 닿고 말았다.
밭이 축축하고 서늘하니, 부정적 생각과 감정은 곰팡이 마냥 순식간에 덮쳐버린다. 그렇게도 건강하게 살던 나였는데 단 일주일만에 시들한 파김치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래도 이게 일시적이고, 다시 루틴을 회복하면 건설적 기조도 돌아올거라는 콘크리트 층 믿음이 그동안 단단히 쌓였나보다. 전파력이 강한 곰팡이도 영혼의 뿌리에 까지는 닿지 못하는걸 느꼈다. 역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자신감은 강력하다. 경험은 배신하지 않아.
이때 강력하게 떠오른 대만에서 만난 태국 친구의 말이 있다.
'시관 회 바오츠 니 쯔지'= '습관이 너를 보호해줄거야'
리듬을 놓치고 잠시 허둥대다가도 습관이 든 생각, 행동, 태도들이 나를 다시 원래 기조대로 돌려놓는다는 것. 하니 좋은 습관을 많이 길러두면 좋겠지. 그렇게 좋은 행동과 사고로 점철된 하루하루가 내 인생을 만들것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 모든 좋은게 매번 대단한 의지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공짜'라는 것이다. 따로 신경쓰지 않아도 좋은 행동들이 자동화되어 이루어지니, 이것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싶다.
격리 해제 후
어제 격리가 해제되었다. 해제일은 곧 출근을 재게하는 날이였다. 더 쉬라그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몸도 회복했고 무엇보다 환기가 절실했다.
해제일 아침 눈을 떠 볕이 쏴 내리는 큰 창을 봤다. 여전히 멜랑꼴리한 기분은 남아있었다. 몸을 일으켜세우고 씻고, 화장을 하고, 어제 골라놓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날이 너무 좋았다. 적당히 더웠는데 오히려 따뜻했다.
햇살가득한 널찍한 뷰를 보며 점심으로 카페에서 맛있(었을거라 생각되)는 빵과 아인슈페너를 먹으며 짧은 글을 썼다. '다시 채워지고 있다' 에너지가 차는것을 느꼈다.
사람들을 만나고, 스케줄을 소화하고, 한바탕 운동을 하고,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니 하루가 금새 가있었다. 마음의 푸르댕댕함도 발그스름한 색을 띄었다.
이리도 빨리 다시 회복할거면서, 지난 1주간 고뇌한 시간들이 새삼스럽다.
그 또한 소위의 쓸모는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