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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마진국 Jul 02. 2024

서울의 고시원들

  잠시 미뤄졌던 독립영화의 촬영 일정이 재개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무실에서 지낼 수 없었다. 20대 초반에 허리디스크를 얻기는 싫었고, 겁먹은 채 샤워를 하는 자전거인을 보기도 괴로웠으며,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티를 내는 감독님에게 눈치도 보였다. 그렇다고 보증금을 낼 돈은 없었으니 내가 갈 곳은 고시원뿐이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인터넷으로 사무실과 가까운 고시원 한 곳을 찾았다. 어차피 잠만 자고 대부분의 시간은 사무실에 있을 테니 시설은 중요하지 않았다. 월세는 30만 원. 월급 50만 원을 받는데 고시원 월세로 나가는 돈이 절반을 넘었다. 돈 쓸 시간도 없을 테니 이것 역시 상관없었다. 


  이모의 차를 얻어 타고 엄마와 함께 서울의 고시원까지 갔다.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낡은 외관에 이모와 엄마 모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방을 보지 않는 편이 엄마의 건강에 이로울 거 같아 절대 차에서 내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모는 조카가 걱정됐는지 고시원 건물 1층의 청과물 마트에서 바나나도 사주고 용돈 20만 원도 건넸다. 아니에요 아 괜찮다니까요 저 일하잖아요 이모 에이 그럼 어쩔 수 없죠 감사합니다! 예의상 거절을 하면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내가 강아지였다면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꼬리가 팽팽 돌았을 거다. 20만 원이면 내 월급의 40%가 아닌가!


  동글동글한 인상의 고시원 총무 아저씨를 따라가 방문을 열자 나를 반겨주는 건 담배냄새였다. 이토록 저렴한 가격에 니코틴과 타르까지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었다니 감격스러웠다. 양팔을 벌리면 양쪽 벽에 손이 닿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직사각형 방엔 침대와 책상 그리고 웬만한 노트북 화면보다 작은 사이즈의 브라운관 TV가 있었다. 다행인 건 창문이 있었다. 이 창문을 고시원의 간판으로 쓰는 터라 노란색 코팅지에 ‘정석고시원’의 ‘정’ 자가 박혀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담배 냄새가 나는 비흡연자가 되었지만 DMC 사무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담배 냄새 따위 별거 아니다. 흡연자들이 내 냄새를 맡고 담배를 권하면 ‘나는 노담!’이라 말하면 그만 아닌가. 

표시된 부분이 내가 머물렀던 방의 창문이다

  이후 독립영화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다른 작품에서 일을 하게 된 나는 여러 고시원을 전전했다. 내가 찾는 조건은 언제나 같았다. 사무실과 가까울 것, 가격은 언제나 30만 원 이하. 시설은 별로 따지지 않았다. 이 정도 가격이면 어디나 비슷했으니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고시원의 경우 영화 설국열차와 비슷한 세팅이다. 꼬리칸에 해당하는 가장 아래층은 가격이 제일 저렴한 대신 시설이 좋지 않았다. 방 크기가 작고 같은 층에 있는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방의 크기가 작다는 건 한 층에 지내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뜻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아침마다 욕실 앞에 줄을 설 확률도 더 높다. 


한 층 더 올라가면 가격이 10만 원 더 비싸졌다. 방 크기는 아래층보다 약간 더 넓고 공용 주방도 있다. 물론 이 주방은 꼬리칸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지만 한 층을 올라가야 하니 조금 더 불편하다. 여전히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을 사용하지만 더 적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머리칸에 가면 꼬리칸보다 20만 원이 더 비싸진다. 방의 크기는 중간층과 비슷하지만 샤워부스와 화장실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나만의 욕실! 공용 욕실의 설움을 겪어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나 혼자 욕실을 쓰는 게 얼마나 쾌적한지. 너무 신이 나서 씻을 때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바퀴벌레로 만든 양갱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남궁민수(설국열차의 주인공, 송강호가 연기했다)처럼 난 언제나 꼬리칸에 머물렀다. 머리칸에서 호화(?)롭게 지내는 것보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얼른 보증금을 마련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시원 생활이 힘들어질 때마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던 생활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고시원이 한 곳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강남이었다. 


  새로 일하게 된 웹드라마 제작사의 사무실이 강남에 있어 별 수 없었다.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월세 20만 원짜리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짐을 풀고 보니 방이 직사각형이 아니라 정사각형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조금 작다고 생각은 했는데 자려고 누워보니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방의 한 변의 길이가 175cm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옆으로 돌아누워 새우잠을 잤다. 웅크리고 자면 별로 불편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그렇게 많이 자니까. 근데 다리를 펼 수 있는 상황에서 웅크리고 자는 것과 다리를 펴지 못해 웅크리고 자는 건 완전히 다르다. 불편해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는 한 변의 길이보다 길다. 


중학교 땐 몰랐다. 수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렇게 활용하게 될 줄은. 나는 침대에서 몸을 살짝 비틀어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잠을 잤다. 아주 조금 편해졌다. 그런 줄 알았는데 다시 불편해졌다. 결국 다시 모로 누워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가 불편해지면 책상에 발을 올려놓았다. 이 두 자세를 반복하며 잠을 잤다. 수면의 질이 좋을 리가 없었기에 나는 늘 피곤했다. 


그리고 추웠다. 고시원은 중앙난방시스템이라 내가 직접 온도를 조절할 수 없었다. 난방이 시원찮아서 자기 전마다 헤어드라이기를 틀어 방을 덥혔다. 이때는 방이 작은 게 장점으로 작용했다. 헤어드라이기 하나로 5분 만에 방이 훈훈해졌다. 


게다가 샤워실과 화장실이 남녀공용이었다. 화장실엔 여느 공중화장실처럼 좌변기 칸 두 개와 소변기 하나가 있었고 남녀가 함께 이용했다. 샤워실도 같은 방식이다. 변기 대신 샤워기가 있는 부스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었다. 아침이면 샤워 부스 앞에 남녀가 섞여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내가 여자였다면 불편한 정도를 넘어서 위협감마저 느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고시원 생활은 궁핍했지만 재밌었다. 지금은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아서 그렇다. 만약 내가 아직 그곳에 살고 있다면 재밌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못할 거다. 좁은 방에 갇힌 채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나는 그 누구도 고시원 같은 곳에 살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나만의 안락한 공간을 제공받아야 마땅하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매사에 노력하면 되지 않냐고? 좋다. 하지만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노력과 긍정에도 총량이 있다. 노력할 에너지를 보증금 모으는 데에 써버린 사람과 그런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처음부터 에너지를 쏟는 사람 사이엔 분명한 격차가 있다. 가시화되지 않는 이 격차는 여러 가지 차이를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이런 차이가 만들어 낸 결과를 부끄러워하거나 우쭐해한다.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해지려면 개인이 아닌 사회가 이런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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