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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Feb 18. 2024

240218 남편과 함께 출근하면 좋은 점 세 가지

하루의 첫마디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다는 것.

“여보가 아침에 데려다주니까 진짜 좋더라. 앞으로 계속 같이 출근하는 거 어때?”


얼마 전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주고 출근한 날 밤, 남편이 말했다. 나도 좋았던 지라 한 번 해보자고 했다. 남편은 열 시 출근이 고정되어 있지만, 나는 일곱 시에서 열 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하면 되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전에는 일곱 시에 출근했는데, 남편과 함께 출근하기 위해 아홉 시 이후 출근으로 조정했다.


그렇게 이번 주 내내 함께 출근을 했다. 아침 시간이 이전과 확 달라졌다. 늦어진 출근으로 퇴근도 늦어진 게 아쉽긴 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 오늘은 그 좋은 점을 써보려 한다.


먼저, 아침 안개처럼 깔려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졌다. 함께 출근하기 전에는 혼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혼자 나갔다. 마치 이 집에 나 혼자 산다는 듯이.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그때마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피곤하다로 시작해서, 왜 일찍 못 일어나서 이렇게 쫓기듯이 출근을 하는가의 자책, 출근하기 싫다, 왜 일을 해야 하지, 인생 괴롭네 까지. 현관문을 나서기까지 부정적인 생각은 이어 달리기를 했다. 그런데 패턴이 바뀌어서 그런지 이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내가 먼저 일어나 씻는 것까지는 똑같다. 그 뒤, 남편을 깨우고 남편이 씻는 동안 내 할 일을 하는데 그러나 보니 부정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침에 집에서 잠시라도 무언가를 하게 된 것이 좋다. 남편은 아침에 여유를 많이 부리는 편이고, 씻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라 기다리며 내 할 일을 하기에 딱이다. 요가를 하고, 모닝 페이지를 쓰고,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친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하지는 못하지만 그날그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골라하는 재미가 있다. 삼십 분 좀 안 되는 짧은 시간인데, 꽤나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이 아침이 회사를 위해, 일을 위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시작된다는 감각이 들어서다. 오랫동안 내가 느끼고 싶어 하던 그 감각, 이 아침의 주권이 내게 있다는 감각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하루의 첫마디를 사랑하는 남편과 나눈다는 것이다. 예전에 출근하며 진짜 별로라고 생각한 일이 하나 있다. 운전하며 출근하고 있는데, 어떤 차가 매너 없이 운전을 했다. 나도 모르게 ‘이 미친 새끼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나니 약간의 현타가 왔다. 아침에 제일 먼저 내뱉는 말이 이런 말이라니, 그걸 나 혼자 뱉고 나 혼자 듣고 있다니 정말 별로네,라고 말이다. 지금은 다르다. 남편을 부르고, 잠은 잘 잤는지 지난밤의 안부를 묻는다. 또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얼마나 좋은가. 이따금씩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시답잖은 농담이 대부분이다. 이런 농담으로 웃으며 하루를 즐겁게 시작한다.


생각해 보니 3년간의 결혼 생활동안 남편과 함께 아침을 시작한 적이 거의 없었다. 평일엔 늘 먼저 출근하느라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주말엔 남편을 두고 아침마다 어디론가 나갔다. 무얼 배우거나 놀거나 교회에 가거나 커피숍에 가거나. 그래서 몰랐다. 함께 시작하는 아침이 이렇게 좋다는 걸. 남편의 야근이 잦아지면 이 생활도 또 한 동안 못 즐길터이니 지금 좋은 점을 많이 보면서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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