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 해변의 카운트다운

지친 하루 끝에 마주한 밤하늘, 해가 바뀌는 10초, 뒤섞인 언어들...

by 백수쟁이

12월 31일 밤이면 남편은 꼭 카운트 다운을 챙긴다. 연애할 때도 그랬다. 그에게 카운트 다운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마중하는 그만의 의식 같다. 그렇다고 거창하지는 않다. TV 화면으로 챙기기도 하고, 집 근처 호수에서 챙기기도 했다. 태국에서의 연말연시는 처음이라 그는 며칠 전부터 특별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2025년 12월 31일 저녁, 우리는 파타야로 향했다.


애매한 시각에 파타야에 도착했다. 저녁 먹고 동네 구경도 실컷 했는데, 카운트 다운까지는 한참 남았고, 몸은 고단했다.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나가기로 했지만, 몸과 마음이 자꾸만 늘어졌다. 카운트 다운, 그게 뭐라고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새해인데, 그냥 잘까. 스르륵 눈이 감기려 하는데, 남편이 나가자고 했다.


해변에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하얗고, 까맣고, 노란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여긴 마치 전 세계인들이 함께 모인 축제 같았다. 이상하게도, 아까 터미널에서 느꼈던 피곤함과 짜증이 없었다. 대신 설렜다. 해변 무대 쪽으로 천천히 걸으니 어느덧 23시 59분. 2025년도 2026년도 1분 남았다.


10, 9, 8, 7 ... 태국어를 배우는 남편은 태국어로, 나는 한국어로, 어떤 사람은 영어로 외쳤다. 언어는 달랐지만, 숫자를 세는 템포와 그 속의 설렘은 같았다. 그리고 0. 하늘 위로 거대한 불꽃이 터졌다. 그 순간, 모두가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웃고, 환호하며 감탄하며 2026년을 맞았다.


지친 하루 끝에 마주한 밤하늘, 해가 바뀌는 10초, 세상의 언어가 뒤섞인 채로 세던 숫자들. 그리고 그 끝에 터진 불꽃.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카운트 다운이 뭐 별거냐 싶지만, 정말 별거다. 2026년의 시작이 유난히 벅차고 마음에 든다. 좋은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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