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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ul 13. 2023

[내가 살고 싶은 삶] 돌멩이처럼 살고 싶다.

오늘의 글이 앞으로의 이정표가 되어주면 좋겠다.

알람 없이 눈을 떴다. 선풍기 바람이 선선하다. 여름 이불의 촉감, 선풍기 바람이 좋아 한참 누워있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불 정리를 한 뒤 잠옷을 갈아입고 양치,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면 하루가 시작된다. 오랫동안 써온 요가 매트를 펼친다. 스트레칭 수준의 가벼운 요가를 하곤 마당 텃밭으로 나간다. 쑥쑥 자라라, 채소들의 성장을 응원하며 듬뿍 물을 준다. 그리고 외출 준비를 한다. 오늘은 베이킹 클래스를 듣는 날이다. 뒤늦게 빵의 매력에 빠져 이번 여름엔 베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낮잠도 자고 요리를 하고 책도 본다. 가끔은 글쓰기 프로젝트도 하고, 동네 사람들과 모임을 갖는다. 저녁엔 남편과 느긋하게 식사를 하곤 산책에 나선다. 여름밤 특유의 습기 짙은 냄새, 밝은 듯 어두운 하늘, 어둠 속에서도 자기의 색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나무의 초록을 좋아한다. 한참을 걷다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작업실로 들어간다. 일기를 쓰고, 못다 한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때로는 재봉틀로 이것저것 만든다. 너무 늦지 않게 침실로 들어가 선풍기를 켜고 잠을 청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하다 막연해서 내가 보내고 싶은 하루를 상상했다. 그제야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좀 그려졌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이렇다.


먼저는 단정하게 살고 싶다. 내 어깨나 목이 뻐근할 정도로 무리하고 싶지 않다. 내 손에 쥘 수 없을 정도의 욕심도 부리고 싶지 않다. 유행을 따르고 싶지도 않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며 더 좋은 것을 좇고 싶지 않다. 여행지에서 사 온 파자마, 함께 늙어가고 있는 요가 매트, 글을 쓰거나 영상을 볼 때 사용하는 아이패드, 소음이 거의 없는 선풍기까지 사실 지금도 나는 내게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애플워치 갖고 싶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늘리기보다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잘 관리하며 단정한 일상을 꾸리고 싶다.


여름을 좋아한다. 초록색을 좋아하는데 여름만큼 초록이 예쁜 계절이 없는 것 같아 여름의 풍경을 감상하는 게 즐겁다. 길어진 해 덕분에 하루가 길어진 기분이 들어 여름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피아노를 시작한 것도 작년 여름의 일. 올여름엔 재봉틀을 배우고, 매 여름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며 살고 싶다.


여름뿐만 아니라 매 계절을 즐기며 살고 싶다. 겨울에는 추워서 봄에는 나른해서 여름에는 더워서 가을은 울적해서, 생각해 보면 매 계절마다 여러 핑계를 대며 다른 계절을 기다리며 산 것 같다. 그보다는 지금의 계절을 만끽하는 게 좋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제철 음식을 챙기는 것도 좋겠고, 그 계절에만 할 수 있는 활동을 해도 좋겠다. 봄에는 나물을 캐러 가거나 꽃구경을 가고, 여름에는 서핑을 하거나 수상 레저를, 가을에는 캠핑이나 능산, 겨울에는 보드를 타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다른 것들을 기다리기보다는 현재를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마음에 쏙 드는 커피숍에 다녀왔다. 인테리어나 커피도 훌륭했지만 계속해서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커피숍 사장님. 직접 만든 소품과 가구들, 벽 한쪽을 가득 메운 CD와 LP, 핑크빛 셔츠와 멋쟁이 안경까지 자기 취향이 뚜렷해 보였다. 저런 사람은 왠지 외골수일 것 같았는데, 손님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나의 편견이었다. 손님의 성향을 존중하며 거리를 유지하고 어울리는 모습이 <심야식당>의 주인장 같기도 하고, 뜬금없이 돌멩이가 떠올랐다. 홀로 놓고 보면 단단한 자기만의 모습이 있지만 다른 돌멩이들과 구를 때는 나를 깎으며 부드럽게 다듬어가는 돌멩이. 그 커피숍에서 나는 그 사장님처럼, 돌멩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취향이 있지만 강요하지도 으스대지도 않고, 저마다의 모습을 존중하고 어울리는 것 말이다.




지난날을 논하는 것보다 앞 날을 상상하는 일이 더 어렵다. 여전히 미래는 막막하고 불안하다. 미래의 일에 내가 정하거나 알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떠한 삶을 살지 삶의 태도를 정하는 것 말고는. 오늘의 글이 앞으로의 이정표가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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